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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디펜딩 챔피언이 벼랑 끝까지 몰렸다.

오리온은 지난 13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삼성과의 2016~17 KCC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77-84로 패했다.

이로써 오리온은 안방에서 열린 1, 2차전을 모두 내주며 남은 3경기를 모두 승리해야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할 수 있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특히 3, 4차전은 삼성이 개막 홈 12연승을 비롯해 20승7패, 승률 7할4푼1리를 자랑하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리기 때문에 전망은 더욱 어둡다. 역대 4강 플레이오프에서 1, 2차전을 내준 팀이 리버스 스윕을 따낸 사례 역시 단 한 번도 없었다.

무릎 부상을 당한 김동욱의 부재가 뼈아픈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팀 훈련조차 소화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남아있는 현재 멤버들이 빈 자리를 채워야만 한다. 하지만 타짜 역할을 수행해줘야 할 선수들이 1, 2차전과 같은 모습을 반복한다면 대역전 드라마도 결코 작성할 수 없다. 애런 헤인즈와 문태종을 일컫는 말이다.

헤인즈는 올시즌까지 KBL 무대에서만 무려 9년을 뛴 최장수 외국인 선수다. 기량이 떨어지면 여지없이 짐을 꾸려야 하는 외국인 선수만의 비애 속에서도 이처럼 오랜 기간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가 뛰어난 선수임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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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난해 오리온을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끌었던 헤인즈는 올시즌에도 41경기에서 평균 23.9점 8.6리바운드 4.6어시스트 1.5스틸 1.1블록의 만능 활약을 펼쳤다. 비록 외국인 선수상은 이번 4강 플레이오프에서 격돌 중인 리카르도 라틀리프(삼성)에게 넘겨줬지만 외국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베스트5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투표 방식상 다소 행운이 따른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헤인즈가 펼친 활약을 폄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는 헤인즈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1, 2차전에서 헤인즈는 평균 32분을 소화하며 14.5점 5.5리바운드 4.5어시스트 2.0스틸 1.5블록에 그쳤다. 득점력이 급감한 가운데 삼성이 자랑하는 골밑 앞에서 제공권 싸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헤인즈는 2차전에서 13점에 그쳤으며 총 16번의 2점 야투 가운데 림을 통과한 것은 4차례뿐이었다. 한 차례 3점슛 시도 역시 무위에 그쳤고, 8번의 자유투 중 3개를 놓쳤다. 정규시즌 53.6%의 필드골 성공률을 기록했던 헤인즈였기에 현재의 실속 없는 모습이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추일승 감독도 2차전을 마친 뒤 헤인즈 부진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추 감독은 “우리의 장점이 안 나온다. 외곽이 살아줘야 하는데 오히려 삼성의 외곽이 좀 더 사는 모습이다”고 운을 뗀 뒤 “전체적으로 지난 경기보다는 보완은 된 것 같은데 수비에서 꼬집어 말한다면 문태영에게 점수를 내주고 있다. 공격에서는 헤인즈의 확률이 너무 떨어진다. 무리한 플레이가 나오고 있다”며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히 경기 막판 손쉬운 슛을 놓치는 등 헤인즈의 체력이 떨어져 보인다는 취재진의 지적에 추 감독은 “그러게 말이다”는 말과 함께 허탈한 웃음을 지은 뒤 “볼 핸들링 시간을 줄이고 패스를 받아먹는 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내 선수의 공격 비중을 높여야 할 것 같다”며 공격 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문태종 역시 동생 문태영과의 자존심 대결에서 철저히 밀리고 있다. 사실 1975년생인 나이를 감안하면 노쇠화가 찾아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실제 정규리그 52경기에서도 6.9점 2.9리바운드에 머문 것은 사실이지만 클러치 순간마다 늘 해결사 역할을 수행해 온 선수이기 때문에 현재의 활약은 다소 아쉽다.

플레이오프에서 출전 시간이 5분 이상 증가했지만 평균 기록은 5.0점 3.5리바운드에 그쳐 있으며 2차전에서는 21분 이상을 소화하고도 단 2점을 넣는데 그쳤다. 무엇보다 2경기 도합 9번의 3점슛 가운데 림을 가른 것은 두 차례 뿐이다. 2점슛 성공률 역시 28.6%(2/7)에 머물러 있다.

동생 문태영도 1차전에서 무득점의 수모를 겪었으나 2차전에서는 3점슛 4방을 포함해 18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오히려 형이 그동안 보여줬던 강점을 제대로 뽐냈다. 과거 플레이오프에서만 3차례나 형제 대결을 펼쳐 모두 동생에게 시리즈 승리를 내줬던 문태종으로서는 3차전에서 반드시 설욕에 나설 필요가 있다.

삼성은 동생 뿐 아니라 최고참인 주희정이 노장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문태종에게 에이스의 역할을 더 이상 기대할 순 없다. 하지만 주희정처럼 승부처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어주길 바라는 게 오리온 팬들의 소망이다.

자칫 3차전이 문태종에게는 농구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일말의 후회도 남지 않도록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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