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팀 리더의 존재와 부재가 시리즈 운명을 한 쪽으로 기울였다.

삼성은 지난 13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오리온과의 2016~17 KCC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84-77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삼성은 1차전에 이어 2차전까지 내리 승리를 따내며 챔피언결정전 진출까지 단 1승만 남겨놓게 됐다. 역대 4강 플레이오프 1, 2차전을 모두 따낸 팀이 챔프전에 진출한 확률은 무려 100%(19/19). 특히 적지에서 2연승을 챙긴 만큼 안방에서 강한 삼성이 챔프전에 오를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반대로 오리온은 남은 3경기를 모두 승리해야하는 벼랑 끝에 몰렸다.

이번 시리즈는 양 팀의 리더의 존재 여부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KBL 제공
삼성의 경우 주희정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사실 주희정은 올시즌 정규리그에서 51경기를 뛰었고, 시즌 도중 사상 최초로 통산 1000경기 출전의 금자탑을 쌓기도 했지만 단 9분55초를 소화하며 평균 1.47점 1.0리바운드 1.3어시스트 0.4스틸의 미미한 존재감만 남긴 것이 사실이다. 데뷔 이후 어시스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록에서 커리어 로우에 해당되는 수치다.

하지만 주희정은 플레이오프 6강부터 총 7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평균 21분42초로 출전 시간이 두 배 이상 늘었고, 평균 5.86점 3.7어시스트 2.1리바운드 0.4스틸을 기록하며 알짜 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특히 오리온과의 2차전에서는 8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 1스틸을 기록했는데 결정적인 순간 그의 손에서 흐름이 삼성 쪽으로 넘어오는 장면이 많았다.

주희정은 2차전 종료 후 “정규리그와 달리 단기전이기 때문에 더 디테일한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분명 전자랜드나 오리온보다 훨씬 강한 점이 있기에 외곽으로 파생되는 공격을 하려고 했다”며 “인사이드도 강하기 때문에 라틀리프와 크레익을 디테일하게 활용한 것이 주효했다. 볼도 많이 끌지 않고 아웃사이드에서 원활하게 돌았다”고 승리 소감과 활약의 요인을 밝혔다.

그는 이어 “6강에서 전자랜드의 압박이 4강에서도 도움이 됐다기보다는 좀 더 여유가 생긴 것 같다”며 “포스트에 볼을 넣어주기가 수월하고, 오리온의 경우 라틀리프나 크레익에게 도움 수비를 자주 가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골밑 요원들이 리딩 가드의 말을 너무 잘 들어주기 때문에 공격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동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대한 간절함도 밝혔다. 주희정이 올시즌 챔프전에 진출할 경우 SK 소속이었던 지난 2012~13시즌 이후 4년, ‘테크노 가드’라는 별명 속에 삼성 유니폼을 입고 챔프전 MVP에 등극했던 2000~01시즌 이후 16년 만에 또 한 번 최후의 무대를 밟게 된다. 1977년생으로 한국 나이로는 어느덧 41세가 됐지만 여전히 삼성 우승의 키를 쥐고 있는 주희정이다.

주희정은 “4강 직행을 못했지만 정규리그를 3위로 마감한 뒤 어렵게 전자랜드를 꺾고 올라왔다. 사실 나 뿐만 아니라 팀 동료들도 간절함이 크다. (김)준일이와 (임)동섭이도 챔피언전에서 경기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아야 다음에 군대를 다녀오더라도 그런 능력치가 향상될 수 있다. 나도 간절히 원하지만 젊은 선수들이 큰 무대에서 해봐야 농구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올시즌이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1승이 남았지만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오리온전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챔프전에 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출전 시간을 비롯해 비중이 크게 늘어났지만 주희정은 벤치에서도 끊임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왔다.

그는 “플레이오프에 가서 기회가 올지 장담하기 어려웠지만 만약 기회가 온다면 어떻게 리딩을 해야 할지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하고 있었다”며 “준비한 것이 플레이오프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비디오를 통해 우리팀 선수의 단점을 최대한 줄이고 장점을 부각시키려 나름 생각을 많이 했다”며 선수들과의 소통 부분에서도 노력을 해왔다고 언급했다.

포인트 가드 김태술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올시즌 삼성으로 팀을 옮긴 김태술은 정규리그 1라운드 MVP에 오르는 등 최고의 출발을 했으나 일정을 거듭할수록 내리막을 걸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2.86점 2.1어시스트 1.9리바운드 0.9스틸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주희정은 “태술이와 미팅을 했다.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한 번 했기 때문에 여러 차례 하면 사실 선수도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챔프전도 경험해본 선수이고, 본인만의 자존심도 있기에 최대한 존중을 해주려고 한다. 많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챔프전에 올라가면 능력치가 있는 선수이기에 반드시 터질 것이라 생각한다. 동료들도 모두 믿고 있다. 터질 때까지 내가 팀을 최대한 잘 이끌려고 생각하고 있다”며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준비를 한 만큼 팀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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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정이 삼성 리더로서 맹활약을 펼치는 동안 오리온은 리더 김동욱의 부재가 뼈아프다. 사실 무릎 부상을 당한 김동욱의 공백은 1차전에서 더욱 크게 드러났는데 추일승 감독은 “상대가 지역방어를 섰을 때 동욱이가 적절히 역할을 수행해 줄 수 있는 선수다. 하지만 존에서 헤매고 있다. 수비 역시 동욱이가 없기 때문에 큰 틀에서의 변화를 주기는 어렵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상민 감독 역시 “존 수비 때 동욱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며 비슷한 의견을 드러냈다.

김동욱은 올시즌 정규리그 43경기에서 평균 10.0점 4.2어시스트 2.5리바운드 1.0스틸을 기록했으며 특히 삼성과의 4차례 맞대결에서 평균 17.3점(2점슛 성공률 57.1%, 3점슛 성공률 61.1%, 자유투 성공률 92.3%) 6어시스트 4리바운드를 기록할 만큼 존재감이 컸다. 또한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이승현, 조 잭슨의 활약에 다소 가려져 있었을 뿐 평균 12.7점 3.8리바운드 2.8어시스트 1.2스틸로 우승의 숨은 주역이나 다름없었다.

큰 무대에서는 베테랑의 오랜 경험이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삼성과 오리온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이같은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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