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이하 한국시각)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은 올해 헌액할 4명의 인물들을 발표했다. 캔자스 대학 감독 빌 셀프, 시카고 불스의 운영자였던 고 제리 크라우스, 코네티컷 대학 출신 여자농구 스타 레베카 로보, 그리고 NBA 스타로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즉 NBA 선수로서의 활약으로는 유일하게 맥그레이디가 올해 농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헌액 명단 발표 소식을 받은 직후 감격스런 눈물을 흘렸다는 본인의 인터뷰처럼 꽤 파란만장했던 NBA 경력을 보낸 맥그레이디다.

이번 [NBA현미경]은 2000년대 NBA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맥그레이디의 커리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빠르게 찾아온 스타로의 도약

고등학교 졸업 직후 NBA에 입성해 슈퍼스타가 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그 몇 안 되는 인원 중 한 명이 맥그레이디다. 1979년생의 맥그레이디는 18세 나이로 1997~98시즌 NBA 커리어를 시작했다.

대학 1년만 마치고 NBA 경력을 시작하는 형태가 보편화된 최근도 초창기 화려한 기록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주 어린 나이에 시작한 맥그레이디도 첫 3시즌은 토론토 랩터스의 벤치에서 출전하며 큰 기록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 올랜도 매직으로 트레이드돼 보낸 4년차 시즌부터 급격한 기록 증가가 나왔다.

타점 높은 점프슛 연마로 맥그레이디는 정말 막기 힘든 공격수가 됐다. ⓒAFPBBNews = News1
3년차에 평균 31.2분을 뛰면서 15.4득점을 올렸던 맥그레이디는 4년차에 평균 40.1분을 뛰면서 26.8득점을 올렸다. 득점 기회 사용을 2배 가까이 늘렸음에도 상승한 야투율 덕분이었다. 특히 3년차에 27.7%에 그쳤던 3점슛 적중률이 4년차에 35.5%로 급상승했다.

이런 도약의 시즌을 보낸 덕분에 맥그레이디는 2000~01시즌 기량발전상을 차지했다. 그리고 기량발전상을 받은 뒤 헤매는 선수들이 이따금씩 있곤 하지만 맥그레이디는 아니었다.

▶화려했던 전성기

2002~03시즌에 평균 32.1득점, 2003~04시즌에 28.0득점을 기록하며 맥그레이디는 본인의 6,7년차에 걸쳐 시즌 득점왕을 차지했다. 2002~03시즌의 평균 32.1득점은 NBA 역대 개인 시즌 득점들 중 25번째에 달하는 높은 기록이다.

윙 포지션으로서 203cm에 달하는 장신과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겸비했으며 전성기에 들면서 정확도가 늘은 점프슛으로 인해 상대 수비수에게 악몽을 선사하는 경기들이 많았다. 이런 득점력을 통해 맥그레이디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7년 연속 NBA 올스타에 선정됐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득점 기량을 꽃피웠던 코비 브라이언트와의 경쟁구도로 인해 더욱 화제가 됐던 전성기였다. 맥그레이디와 브라이언트를 비롯해 당시 빈스 카터, 앨런 아이버슨, 폴 피어스, 레이 앨런 등, 윙 포지션 득점원들 사이의 비교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었다.

큰 신장이지만 맥그레이디의 돌파 순간은 저지하기 힘들도록 빨랐다. ⓒAFPBBNews = News1
▶빠르게 시들은 전성기

NBA 선수가 30세 근처에 기량이 하락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맥그레이디는 부상까지 겹치며 그 속도가 가속화됐다. 29세에 시작했던 2008~09시즌에는 단 35경기만 출전했고 야투율이 38.8%까지 떨어지며 평균 15.6득점에 그치고 말았다.

사실 부상 문제는 2005~06시즌부터 나타났다. 당시 등 문제로 인해 47경기만 출전했으며 슈팅 정확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보였다. 그리고 등 문제가 계속해 괴롭히면서 기량 자체가 하락하는 결과가 나왔다.

맥그레이디의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에 대해 회의론을 꺼내들 수 있던 가장 큰 요인이 커리어 후반기가 초라했다는 점이다. 30세에 시작한 2009~10시즌 이후로는 평균 10득점도 채우지 못하며 소속을 계속 바꾸는 처지에 빠졌다.

▶빈약한 플레이오프 성과

명예의 전당 가능성을 두고 맥그레이디가 가졌던 또 하나의 약점이 팀 성과다. 특히 전력 외의 멤버였던 2012~13시즌 샌안토니오 스퍼스 시절을 제외하고 맥그레이디가 팀을 플레이오프 2라운드 무대로 이끌었던 적이 없다.

2004~05시즌부터 2009~10시즌 중반까지 몸담았던 휴스턴 로켓츠에서 4번에 걸쳐 6할 이상 승률을 맛보고 2007~08시즌엔 67.1%까지 달하는 승률을 남겼지만 매번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패배를 맛봤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티맥 타임

1994~95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레지 밀러가 경기 막판 9초 동안 8득점을 올리며 짜릿한 2점차 역전승을 거뒀던 일이 있었다. 이런 활약을 두고 밀러 타임이란 말이 NBA에서 많이 쓰이곤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활약이 거의 10년 뒤 맥그레이디의 손에서 나왔다.

2004~05시즌 12월 샌안토니오전에서 맥그레이디는 마지막 35초 동안 홀로 13득점을 올리며 최종 1점차의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었다. 3점슛 4방이 연속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2번째 3점슛은 앤드원도 얻어낸 결과였다. 당시 맥그레이디의 슈팅은 수비와 대치하며 드리블 치다 빠르게 던진 3점슛이었음에도 모두 명중해 놀라움을 줬다.

이 경기를 통해 맥그레이디의 별명 티맥(T-Mac)을 붙여 티맥 타임이란 말이 줄곧 쓰이게 됐다. NBA 팬들의 기억에 깊게 자리 잡은 경기 실황이었다.

▶2000년대 NBA를 수놓았던 NBA 스타에게 어울리는 영예

맥그레이디가 NBA 팬들의 환호를 크게 받았던 시기가 딱 2000년대 10년 안쪽의 기간이었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더불어 스타성까지 갖췄던 맥그레이디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인기만큼 기여도도 컸다. 시즌마다 포지션 별로 최고의 인원을 투표해 뽑는 올NBA팀에 7번 뽑혔으며 2001~02시즌과 2002~03시즌에는 퍼스트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차지했다. 비록 좋았던 때와 안 좋았던 때의 간극이 컸던 아쉬움은 있지만 2000년대 NBA 인기의 한 축을 담당했던 스타에게 충분히 자격이 있는 영예다. 스포츠한국 이호균 객원기자 hg015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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