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석현준(26)이 또 다시 적을 옮겼다.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사우디아라비아, 터키를 거쳐 이번에는 헝가리 무대를 밟는다. 새 소속팀은 헝가리 프로축구 1부리그에 속한 데브레첸. 프로 데뷔 이후 석현준이 9번째로 몸담는 팀이다.

지난 2009년 10월 아약스(네덜란드)와 계약한 이래, 그는 한 팀에서 2년 이상 뛴 적이 없다. 지난해 1월부터는 반년 마다 소속팀이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저니맨' 혹은 `떠돌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초반에는 ‘도전’이라는 단어가 그의 행보를 밝게 비췄다. 다만 최근 상황이 점점 꼬이기 시작했다. 포르투(포르투갈) 이적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다. 헝가리에서 시작될 그의 9번째 도전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하향곡선을 반등시킬, 어쩌면 그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시작부터 ‘도전’이었던 축구인생

석현준의 축구인생 키워드는 도전이었다. 프로 데뷔부터 극적이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직접 유럽으로 날아갔다. 마틴 욜(61) 당시 아약스(네덜란드) 감독을 만나 무작정 테스트를 요청했고, 테스트 끝에 계약에 성공했다. 석현준의 도전정신은 팬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다만 1군의 벽이 높았다.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스스로 살 길을 찾았다. 네덜란드 명문팀 소속이라는 명예보다는, 직접 뛸 수 있는 팀을 모색했다. 2011년 6월, 흐로닝언(네덜란드)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입지는 여전히 불안했다. 시야를 넓혔다. 1년 반의 흐로닝언 생활을 마치고 포르투갈 1부리그인 마리티무에 입단했다. 또 다른 도전이었다.

새로운 리그에서 가능성을 보였다. 리그 14경기에 출전해 4골을 넣으며 이름을 알렸다. 그런데 다음 시즌 돌연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아흘리로 이적했다. 도전이라는 그의 키워드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스포츠한국와의 인터뷰를 통해 구단의 반강제적인 이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중동에서는 부상 때문에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한 시즌 만에 팀을 떠났다. 시선은 여전히 유럽으로 향해 있었다. 마리티무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덕분인지, 나시오날(포르투갈) 입단 기회가 찾아왔다. 19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연착륙에 성공했다.

ⓒAFPBBNews = News1
비토리아에서 활짝 편 날개, 포르투에서 꺾이다

반전이 시작됐다. 반년 만에 러브콜을 받았다. 2015년 1월, 비토리아 세투발(포르투갈) 유니폼을 입었다. 자신의 6번째 팀이었다.

도전으로 가득하던 그의 축구인생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첫 시즌 21경기 5골에 이어, 그 다음 시즌 20경기 11골을 터뜨렸다. 한국인 선수로는 6번째로 유럽무대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한 선수가 됐다.

상황이 달라졌다. 비토리아 세투발 이적 후 1년 만에 7번째 팀을 맞이했다. 포르투갈 최고 명문팀으로 손꼽히는 포르투였다.

앞선 이적들과는 의미가 달랐다. 더 많은 경기에 나서기 위해 스스로 다른 팀을 찾다가, 명문팀의 러브콜을 받으며 당당하게 입성했다. 현지 언론들은 약 20억원을 그의 이적료로 추정했다.

다만 주전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출전시간이 제한적이었다. 자연스레 비토리아에서의 상승세마저 뚝 끊겼다. 결국 포르투 이적 후 그는 14경기 2골에 그쳤다. 고심 끝에 또 다른 도전을 택했다. 1년 임대 계약을 통해 터키 트라브존스포르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의 8번째 팀이었다.

자신감이 넘쳤다.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20골을 목표로 내걸었다. 많은 기대도 받았다.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선발 풀타임으로 나섰다. 9월에는 컵대회에서 아마추어 리그 팀을 상대로 마수걸이골을 쏘아 올렸다.

공교롭게도 이 골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골이 됐다. 거듭 골 침묵이 이어졌다. 결국 선발에서 조커로, 조커에서 명단제외로 입지가 급격히 줄었다.

하위리그 팀과의 컵대회에서조차 부진하자 비난 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17경기 1골의 초라한 성적표 속에 시즌 도중 짐을 쌌다. 임대 중도해지, 사실상 방출이었다.

ⓒ데브레첸 홈페이지
헝가리, 명예회복 위한 마지막 무대

이 과정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트라브존스포르의 임대 해지 요청에, 원 소속팀인 포르투가 제동을 걸었다. 남은 임대기간의 급여를 지불하거나, 계약을 승계할 새로운 팀을 직접 물색하라고 답했다. 결국 트라브존스포르도, 포르투도 모두 석현준을 원치 않는 상황이 됐다.

앞서 포르투갈 리그에서 보여줬던 활약 덕분에 이적설이 이어졌다. 톤델라, 벨레넨세스(이상 포르투갈) 바스티아(프랑스) 등이 그를 원한다는 소식이 현지 언론들로부터 전해졌다.

협상은 모두 불발됐다. 울산현대 등 K리그 이적설까지 나왔지만, 20억원에 달하는 이적료와 12억원 가량의 연봉 때문에 이마저도 없던 일이 됐다.

2월 중순에야 가까스로 탈출구를 찾았다. 헝가리의 데브레첸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는 6월까지 단기 임대를 조건으로, 석현준은 유럽 무대를 계속 밟을 수 있게 됐다. 데뷔 이후 7년 3개월 만에 맞이한 9번째 팀이다.

길지 않은 시간, 반전이 절실해졌다. 포르투 이적을 기점으로 그리고 있는 뚜렷한 하향곡선을 반드시 돌려놓아야 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올해 안에 국내 소속팀을 찾아야만 상주상무(군)나 아산무궁화(경찰)에서 병역을 해결할 수 있다. 헝가리가 자신의 꿈을 건 도전의 마지막 무대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만약 헝가리에서조차 고개를 숙인다면, 자칫 꿈을 걸었던 그의 도전마저도 ‘실패’라는 결과에 가려버릴 수도 있다. 9번째 도전을 앞둔 그의 활약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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