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서귀포=이재호 기자] 최순호(55).

어느 순간부터 그 이름은 한국축구사의 전설이 됐다. 혹자는 ‘대한민국 축구 100여년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차범근, 박지성보다도 먼저 꼽기도 한다.

1979 FIFA 청소년 월드컵을 시작으로 1980 AFC아시안컵 득점왕(7골 · 현재까지도 최연소(18세) 득점왕), 1986월드컵 이탈리아전 골, 포항제철에서의 눈부신 활약 등 빛나는 업적은 차고도 넘친다.

감독으로 포항과 현대 미포조선, 강원 등을 거치며 K리그 준우승(2004), 내셔널리그 2연패, 강원 창단 초대 사령탑 등을 역임하며 지도자로도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행정가로 변신해서는 FC서울 미래기획단장,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한국 유소년 축구의 기틀이 된 ‘골든 에이지’와 ‘디비전 시스템’이라는 뼈대를 세웠다.

이처럼 축구를 통해 존경과 업적 등 모든 것을 이룬 최순호가 지난해 9월 현역 축구판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2004년을 끝으로 무려 12년간 떠나있었던 포항으로 말이다.

서귀포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 중인 포항 최순호 감독
▶이제야 밝히는 포항 복귀 이유 “못 견딜 것 같았다”

당시 현장을 떠난 지 5년이나 됐던 최순호의 복귀에 환영보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컸었다. 2004년 팀을 떠날 당시 워낙 수비축구 등으로 비난이 많았기에 여전히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는 팬들이 많았기 때문.

이런 비난 여론을 알고서도 최순호는 포항 지휘봉을 잡았다. 전임 최진철 감독 체제하에 성적이 추락하면서 ‘축구명가’ 포항의 명성은 사라졌고 고작 시즌 종료까지 6경기 남은 시점에서 자칫하면 강등까지도 당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솔직히 걱정은 있었죠. 괜히 지휘봉을 잡았다가 강등이라도 당하면 모든 책임을 제가 쓸 수도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전 포항의 제의를 거절 할 수 없었어요”라며 전지훈련 중인 서귀포의 한 호텔에서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저라는 사람은 중학교까지는 그저 축구가 좋아서 했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들어가자마자 제 인생의 목표는 남들이 원하는 연·고대 가는 게 아닌 ‘포항제철 축구팀’에 들어가는게 목표였어요. 포항제철 실업팀에 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포항과 연을 맺은 지 30년이 지났죠. 포항으로 다시온 건 내 축구인생 마지막 일이자 봉사라고 여겼기 때문이예요. 만약 포항이 아닌 다른팀이 6경기 강등위험이 있지만 감독으로 와달라고 했다면 바로 ‘됐습니다’라고 했을 겁니다. 솔직히 다른 구단의 제의도 있었어요. 하지만 포항을 거절하면 제 스스로가 못 견딜 것 같았어요. 그만큼 포항은 제 인생을 함께한 구단입니다.”

최순호 감독은 1980년 실업팀 포항제철 축구단 입단 이후 1983년 포항 아톰즈로 프로 전환 때도 함께하는 등 선수로서 약 8년여를 포항에서 몸담았다. 선수 은퇴 이후에는 1992년부터 포항의 코치로서 지도자생활을 시작했고 자신의 첫 감독 데뷔도 1999년 포항에서 했다. 최순호에게 포항은 평생을 함께해온 팀인 셈이다.

그동안 행정가로서 유소년 축구발전에 힘을 기울였던 그라고 해도 현역 축구에 관심을 끊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팀과 상대팀만 보던 감독을 벗어나니 더 다양하게 여러 축구를 보며 현대축구 흐름을 읽어왔다”며 “여러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요즘 포항이 참 어렵네요’라는 말들을 많이 하더라. 저 역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다 제의가 왔을 때 마지막 축구인생을 쏟고 싶었다”고 말하는 최순호 감독의 눈은 결의에 차있었다.

포항 제철 선수시절의 최순호. 인터넷 커뮤니티
▶“전력누수? 이름값을 빼고 봐달라”

한때 K리그 내에서 최고의 ‘큰손’이면서 우승을 휩쓸었던 포항은 현재는 모기업 포스코의 위기와 맞물려 전력 누수가 심각하다. 당장 주전 골키퍼 신화용(수원 삼성), 수비수 김원일(제주), 김준수(전남), 문창진(강원) 등이 이적했다. 아무리 최순호 감독이라도 포항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인정합니다. 많이 나갔죠. 하지만 전 나간 선수보다 들어온 선수를 주목해야한다고 봅니다. 꼭 전력누수라 보지 않습니다. 빠진 선수의 이름값이 더 크지만 실제로 알짜배기 영입이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문창진과 트레이드로 데려온 서보민의 경우 분명 잠재성도 크고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선수라 생각하죠. 다른 포지션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지난해 9월말 부임해 딱 두 달가량만 팀을 지휘했던 최 감독 입장에서는 시즌 준비를 위해 주어진 2달의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욕심같아선 12월 휴식을 안주고 훈련을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옛날식으로 훈련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의 휴식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잘 쉬는 게 중요하죠”라는 최 감독은 “예전에는 감독에게 3년의 시간을 기다려줬는데 요즘에는 3개월 안에 결과물을 내놔야하는 풍토로 바뀌었으니 결과를 보여줘야 감독을 할 수 있겠죠”라며 `최순호식' 축구를 다시 포항에서 보여주겠다고 자신했다.

▶한국 축구, 감독 넘어 매니저가 필요하다

축구에서 감독은 ‘매니저(Manager)’라기보다 ‘헤드코치(Head Coach)’에 가깝다.훈련과 경기에 중점을 두는 헤드코치 개념과 선수단과 재정, 유소년 등을 총괄하는 매니저의 개념은 많이 없는 것이 사실.

그러나 최 감독은 인터뷰 내내 ‘재정 건전성’이나 ‘유소년’, 그리고 ‘모기업 포스코와의 관계’에 대해 자주 얘기했다. 단순히 경기와 선수단만 관장하는 헤드코치가 아닌 매니저로서 포항에 부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도자는 단순히 코칭만 해서는 안됩니다. 프로는 이미 산업화가 된 지 오래예요. 경기만 잘한다고 되는게 아닌거죠. 감독이라면 네가지를 갖춰야해요. 첫째 선수관리를 통한 경기력 유지, 둘째 관중 증대, 셋째 마케팅 참여 통한 수익 창출, 네 번째는 유소년과 인재 육성이죠. 그리고 팀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할 겁니다.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이 전형적인 매니저잖아요. 우리도 이제 그렇게 해야죠. 의무라고 봐요.”

프로축구연맹 제공
▶2017년의 포항, 활발한 축구 기대해달라

행정가로 있으면서 최 감독은 한국축구의 고질적 문제를 두 가지로 결론 내렸다고 한다. ‘활발하지 못한 축구’와 ‘백패스 남발’.

“전 공격적이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면 수비와의 균형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보다는 ‘활발한 축구’가 제 색깔입니다. 밸런스를 잡아놓고 활발하게 뛰면서 팬들이 경기장 왔을 때 90분 동안 시계를 두 세 번만 봤는데 경기가 끝나는 역동적인 축구를 해낼겁니다.”

최 감독은 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같은 축구철학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팬들은 비록 결과가 좋지 못해도 활발하고 긍정적인 경기내용이 있다면 수긍하겠다고 했다. 최 감독 역시 동감이다. 적극적으로 팬들의 의견을 받아들일정도로 스스로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결과보다 중요한 건 내용입니다. 활발한 축구는 결국 안착되면 결과로도 나타나겠죠. 당대 최고였던 포항의 명가재건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2017년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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