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즌 10위, 두 번째 시즌 5위, 세 번째 시즌은 2일 현재 2위.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녔던 이상민 감독이 삼성 지휘봉을 잡은 이후의 성적표다.

현역 시절 이상민 감독은 모든 업적을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한국 농구사에 위대한 획을 그었다. ‘산소 같은 남자’, ‘컴퓨터 가드’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는 지난 1일 출범 20주년을 맞아 KBL이 선정한 ‘KBL 레전드12’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스타 플레이어는 좋은 감독이 될 수 없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상민 감독은 초반 시행착오를 거친 뒤 지도자로서도 점차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나가고 있다. 매 시즌 순위를 수직 상승시키며 삼성을 ‘농구 명가’로 재건해나가고 있는 이상민 감독을 만났다.

서울 삼성 제공
▶감독 이상민을 말하다

Q. 올 시즌은 삼성 성적이 좋아서 걱정이 없으시겠어요.
A. 에이, 왜 걱정이 없겠어요. 물론 주변에서 얼굴이 좋아졌다고 하시는데 팀 성적이 좋아서 받는 스트레스가 또 따로 있더라고요.

Q. 감독직을 수락하고 팀을 맡게 됐는데 첫 시즌은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그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A. 제가 농구를 시작하고 나서 주로 이기는 경기만 했는데 처음으로 그렇게 져봤어요. 정말 처참한 기분이었죠. 물론 프로 때도 팀이 9위를 해본적은 있어요. 그런데 내가 경기를 뛰어서 지는 것과 가르쳐서 지는 건 또 다른 기분이더라고요.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게 아무도 제 욕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게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도력이 문제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기자 분들도 ‘극한직업’이라는 표현을 쓰시더라고요. 그걸 제가 견디기 어려워서 그만둔다는 얘기도 여러 번 꺼냈는데 어쩌다보니 지금까지 이렇게 팀을 이끌고 있네요.

'패스 받고 공 피하고' 감독 첫 시즌부터 이상민 감독의 얼굴에는 깊은 수심이 가득했다. KBL 제공
Q. 감독이 되고 나서 애로사항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점이 가장 어렵나요?
A. 저는 선수들한테 편하게 해준다고 하는데 선수들이 저를 어려워해요. (주)희정이 같은 경우도 예전에는 형,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냈는데 같은팀 감독과 선수로 만나니까 저를 불편해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허재 형이랑 10년 정도 대표팀에서 같이 지내다가 나중에 팀에서 감독님으로 만났는데 그냥 형이라고 했거든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감독님이라고 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형이라고 했기 때문에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 말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선수들은 아무리 편하게 하라고 해도 그렇게 안하더라고요.

Q. 감독이 되어보니 선수들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드실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생각이 가장 많이 드시나요.
A. 선수들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지적 받는 아이들을 보면 늘 같은 부분을 지적받아요. 확실히 선수들마다 기량의 차이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정말 모든 선수들이 엄청 노력해요. 게임을 못 뛰는 선수들은 11시까지도 운동을 해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출전을 시켜주고 싶죠. 그런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선수가 있는 것 같긴 하더라고요. 그런 선수들을 보면 너무 안타까운 마음뿐이죠. 그리고 확실히 운도 따라줘야 하는 것 같아요. 궁합이 맞는 지도자를 만나고 동료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죠.

Q. 감독들 사이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A. 저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외국처럼 백발의 감독님들도 계시잖아요. 나이 드신 분들도 많이 감독을 하시는데 우리나라는 아무리 오랫동안 좋은 성적을 내도 한해 못하면 그 책임을 감독들이 너무 짊어지는 것 같아요. 타 종목에서도 보면 몇 년을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도 한번 우승 못했다는 이유로 그만 두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런 것을 보면 마음이 안 좋아요. 옛날 감독님들을 보면 원칙을 강조하시면서도 각자의 노하우도 가지고 계신데 그런 부분들이 그냥 없어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죠.

Q. 감독으로서 목표가 무엇인가요.
A. 감독으로서의 목표가 뭐냐는 말을 참 많이 듣는데 당연히 우승이죠. 그런데 그것보다도 저는 선수들이 매년 하나씩만이라도 발전했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어떤 플레이가 멋있다’라고 생각만 하지 말고 그걸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의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희 팀의 모든 선수들을 지금보다 더 나은 선수로 만들어 주는 것이 제 목표에요.

Q. 그렇다면 올 시즌 삼성이라는 팀의 목표는요.
A. 일단 4강으로 직행을 해서 우승을 한번 해보는 게 목표죠. 저희 팀은 그래도 올해 운이 참 좋았어요. 임동섭을 제외하면 큰 부상 없이 전반기를 마쳤고요. 선수들이 잘한 것도 있고 운도 좀 따라주는 것 같아서 올해는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선수들이 지금처럼만 부상 없이 뛰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한 시즌을 풀로 뛰어 본적이 없거든요. 큰 수술을 해본적은 없어도 근육이 찢어지거나 늘 잔병치례를 많이 해서 부상 선수들의 마음을 진짜 이해해요. 성적보다도 중요한 게 부상 조심이에요.

이상민 감독은 선수시절 입은 부상의 후유증을 여전히 겪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도 최대한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만 하고, 최근엔 그마저도 힘이 들어 사우나를 하며 땀을 빼는 게 제일 편하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선수들의 부상을 가장 염려 하는 이상민 감독의 마음은 진심이 가득했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제일 잘 안다는 말이 있듯 부상도 당해본 사람이 그 서러움을 제일 잘 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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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오빠' 이상민의 과거와 현재

감독이 된 이후 코트에서 이상민 감독은 늘 정장을 입고 있다. 선수였을 때는 유니폼을 입은 모습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실제로 이번 인터뷰를 통해 트레이닝복을 입은 이상민 감독의 모습을 처음 봤는데 그 모습을 보니 왜 아직도 오빠부대를 형성하며 팬들을 몰고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트레이닝복만 걸쳤을 뿐인데 이상민 감독은 여전히 멋있었다.

Q. 여전히 감독님은 멋있으세요. 요즘도 운동을 계속 하시는 건가요. 혹시 몸매 관리를 따로 하시나요.
A. 아니요. 좀 살이 붙었다 싶으면 그때부터 운동을 해요. 74~75kg을 유지하려고 하죠. 몸이 마른편인데 배만 나오면 보기 싫잖아요. 그래서 배가 좀 나왔다 싶으면 헬스장으로 가요. 사실 시즌 중에는 스트레스 때문에 살 찔 시간도 없어요.

Q. 선수 시절에는 운동 하느라 살이 안찌고 감독이 되니 스트레스 때문에 살이 안찌는 셈이네요.
A. 선수 때는 사실 잠을 잘 안자서 살이 안 쪘어요. 평균 3~4시간 정도 밖에 잠을 안 잤어요. 낮잠도 안 잤고요. 지금도 잠자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해요. 예민한 편이라 잠을 많이 못자죠. 살이 찌려야 찔 수 없는 것 같아요.

Q. 와, 선수들이 낮잠을 못 잔다는 건 정말 처음 들어봤는데요. 그럼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A. 술을 안 좋아해서 술로 스트레스 푸는 스타일도 아니에요. 선수 때는 게임을 하기도 했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농구 생각을 하게 되니까 TV를 즐겨봤죠. 재작년 같은 경우에는 드라마 다시 보기를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봤던 드라마도 다시 보면서 최대한 농구 생각을 안하는 게 목표였죠. 최근엔 ‘도깨비’를 재미있게 봤어요.

Q. 대학교 때 농구 인기가 정말 어마어마했잖아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저는 사실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게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이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요즘 선수들이 더 잘 놀고, 더 잘생기고, 더 끼가 많아요. 물론 그때 당시 마지막 승부, 슬램덩크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잘 맞아 떨어졌고,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가 아니라 SNS도 없었고 볼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대학 시절 뿐 아니라 프로에서도 이상민 감독의 인기는 여전했다. 그를 '영원한 오빠'라 부르는 이유다. KBL 제공
Q. 당시에 인기를 증명하는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주세요.
A. 한번은 선배들을 따라서 술집에 갔어요,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더군요. 그래서 도대체 무슨 줄인지 궁금해서 따라가다 보니까 우리 테이블 인거에요.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까 ‘너희들을 보고 싶어서 기다린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더라고요. 그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아이들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상상을 못하더라고요. 그때 아마 우리들이 지금 선수들만큼 끼가 많았더라면 더 인기가 많았을 것 같아요.

Q. 당시 엄청난 인기 때문에 TV출연도 심심찮게 하셨잖아요.
A. 대학생 때 한 달에 방송 출연을 5~6곳을 했어요. 그 때 당시 ‘일요일 일요일 밤에’ 라는 프로그램이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었는데 저희 연세대 농구부가 2주 연속 출연을 했을 정도니까요. ‘체험 삶의 현장’ 등등 당시 인기 있는 프로그램들을 다 나갔었던 것 같아요. 문경은, 서장훈, 우지원, 김훈, 그리고 저까지 ‘독수리 5형제‘로 늘 불려 다녔는데 그 당시에는 (문)경은이 형이나 (우)지원이가 말을 재치 있게 잘하고 끼도 많아서 편하게 방송했어요.

Q. 당시 인기투표를 하면 늘 1등을 도맡아 하셨죠.
A. 옛날에는 하이틴이라던지, 주니어, 뷰 이런 잡지들이 인기가 한참 많았는데요. 그런 잡지에서 인기투표를 하던 시절이거든요. 스포츠 선수들 인기순위에서는 농구 선수들이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죠.

Q. 그때 당시에 선수들끼리 인기 경쟁도 심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선수가 인기가 제일 많았나요.
A. 그때 당시에 편지 누가 제일 많이 받나 그런 내기는 했었죠. 편지를 세다가 지칠 정도로 팬레터를 많이 받았어요. 저희는 서대문 우체국에서 따로 우편물을 받아줄 정도로 편지나 선물이 많이 왔고요. 특히 밸런타인데이나 기념일 같은 때에는 정말 대단했어요. 그래도 생각해보면 (우)지원이가 제일 인기가 많았던 것 같아요.

Q. 그때 농구의 인기가 지금의 야구 정도라고 봐도 될까요.
A. 당시에는 농구가 야구보다 훨씬 인기가 있었고요. 지금의 야구보다도 아마 당시의 농구 인기가 더 많았던 것 같은데요? 지금은 농구가 왜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어요. 요즘 아이들은 끼도 많고 농구도 잘 하는데... (김)선형이, (김)태술이, (양)희종이, (함)지훈이, (김)종규 이런 아이들이 방송에 나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서)장훈이나 (현)주엽이처럼 우리 세대 농구인들이 방송에 많이 출연하니까 그런 부분이 좀 아쉬워요.

Q. 아직도 감독님 인기가 많으신데 요즘 KBL에서 가장 핫한 허웅 선수와 인기투표를 한다면 이길 자신 있으세요.
A. 에이, 제가 안 되죠. 제 팬들은 이제 바빠서 컴퓨터 앞에서 투표할 시간도 없어요.

Q. 이상민 감독의 열정적인 팬으로 유명한 빨간 추리닝 아저씨, 감독님도 알고 계세요.
A. ‘빨츄’ 아저씨요? 그럼요. 당연히 알죠. 옛날 대전에 연고지가 있던 시절부터 저를 보러 오시더니 전주에 있을 때도 늘 원정 응원을 와주셨어요. 그리고 삼성으로 오니까 매일 오시더라고요. 요즘엔 체육관에 안 오시면 어디 편찮으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에요. 그 분이 저한테 와서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는 극성팬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감사하죠. 저는 극성팬들만 아니면 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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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감독의 농구이야기

역대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불리는 이상민 감독. 화려하게만 기억되는 그의 농구 인생도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선수로서 불리한 신체 조건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농구를 하며 생긴 에피소드들도 많았다. 우아한 백조처럼 보이는 이상민 감독도 물 밑으로 한없이 발길질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존재할 수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던 시절, 이상민 감독의 농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Q. 감독님은 어떻게 농구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A. 초등학교 5학년 가을에 우연치 않게 농구를 시작했어요. 홍대부중, 홍대부고가 창단이 되면서 근교 초등학교에서 선수들을 받아보자고 해서 우리 학교에 농구부가 창단이 됐어요.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한테 관심 있으면 회비 5000원 가지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특별활동인줄만 알고 집에 얘기 했는데 그게 계기가 돼서 농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Q. 농구를 시작하고 애로사항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A. 키가 작아서 고민이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키가 144cm, 6학년 때 149cm, 중학교 1학년 때 154cm, 중학교 2학년 때 159cm 이런식으로 계속 5cm씩만 크더라고요. 왜 이렇게 안자라나 고민이 많았어요. (문)경은이 형이 저를 처음 봤을 때 농구공 보다 작은 녀석이 농구 한다고 놀렸다니까요. 중학생이었을 때 제가 150cm대에 경은이형은 이미 180cm 대였으니까 제가 얼마나 작아보였겠어요.

Q. 지금은 전혀 작아 보이지 않는데요.
A. 중학교 때 제 동기들이 다른 학교에서 스카우트를 해온 친구들이 많았는데 키가 다 170cm대였어요. 저는 150cm대였고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중학교 3학년 때 성장이 멈추면서 키가 180cm쯤까지 밖에 안 크더라고요. 저는 그나마 고3 까지 꾸준히 키가 커서 이 정도까지 됐죠. 정말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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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렸을 때 성격은 어땠나요. 그때도 내성적인 성격이었나요.
A. 그냥 중간정도 했었던 것 같아요. 리더십을 발휘해서 끌고 간다고 하기 보다는 그냥 따라가는 스타일이었죠. 학기 초에 반장 선거 한다고 손들고 하잖아요? 나서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농구는 재미있었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어울리고 하는 게 즐겁더라고요.

Q. 처음에 농구를 시작 할 때부터 농구에 두각을 나타내셨나요?
A. 아니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터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같아요. 키가 너무 작아서 경기를 뛰지도 못했는걸요. 고등학교 은사님께서 체구도 작은 녀석이 운동 안 쉬고 열심히 한다고 기회를 주셨어요. 제가 은사님을 잘 만났죠. 게임을 뛰다 보니까 실력이 점점 늘더라고요.

Q. 요즘 선수들을 보면서 가장 부러운 점이 뭔가요?
A. 농구하는 환경이 좋아졌다는 게 가장 부러워요. 저희는 화장실 물을 퍼먹으면서 운동을 했어요. 그 당시에는 물을 마시면 체력 훈련이 안된다고 해서 물을 못 마시게 했거든요. 에어컨이 어디 있어요. 찜통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것도 힘들었고, 겨울에는 손이 다 찢어졌어요. 공이 오죽 딱딱합니까? 손에 땀 없는 사람들은 딱 공 받는 순간 지문이 결결이 다 찢어져요. 테이핑 하기도 쉽지 않은 상태가 돼버리죠. 그리고 무조건 스트레칭을 할 때는 옷을 다 벗어야 했어요. 지금은 비타민 같은 좋은 보충제들도 많고 농구화도 좋죠. 기능성 타이즈까지 있어요. 농구하기 이렇게 좋은 환경이 또 어디 있겠어요.

Q. 땀을 많이 흘리는 선수들한테 물을 못 마시게 한다니 그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A. 상상도 안 되죠? 당시에는 체력 훈련이라는 이유로 물을 못 마시게 했어요. 이온음료 같은 건 상상도 못했죠. 고등학교를 딱 들어갔는데 선배들이 땀 닦던 수건을 빨아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서 그 수건에 물을 짜서 먹는 모습을 봤어요. 그걸 보면서 ‘와 저걸 더러워서 어떻게 먹지’ 했는데 나중에는 저도 먹게 되더라고요. 제가 고 3때 심부전증이 찾아와서 그때부터는 감독님이 물을 마음껏 마시게 해주셨는데 그 전까지는 진짜 독하게 시킨다는 명목아래 물도 못 마시게 하더라고요. 여름에는 탈진해서 쓰러지는 선수가 부지기수였어요. 지금 선수들은 정말 행복한 상황이에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하는데도 요즘 애들은 매일 아프다고 해요.

Q. 당시 운동하는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네요. 물을 못 마시는 것 외에 또 힘들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A. 힘들었던 에피소드는 정말 많죠. 아! 대학 때는 오전, 오후, 야간 이렇게 하루에 총 3번 훈련을 하는데 저희한테 제공되는 양말이 딱 스무 켤레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오전 운동을 한 다음에 세탁기를 돌려야 해요. 그런 다음에 4학년 형님들 양말을 헤어드라이기로 뽀송뽀송하게 다 말려놓죠. 4학년 형들 것은 따로 챙겨놓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2,3학년 형들이 먼저 가져가 버리거든요. 그런 식으로 하루에 세 번씩 세탁기를 돌리고 헤어드라이기로 양말 말리기를 반복해야했죠. 그렇게 저 대학교 4학년 때까지는 스폰서도 없어서 양말에 고무줄이 늘어나거나 짝짝이여도 버리지도 못하고 신었어요. 팬들도 당연히 양말은 있을 줄 알고 양말은 안 주더라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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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새봄의 비하인드 스토리-이상민 감독이 말하는 방송인 서장훈

우지원, 서장훈, 박광재 등 최근 예능에서 활약하고 있는 농구선수 출신 연예인이 많다. 그 중에서 서장훈은 이상민 감독과 절친한 사이로 잘 알려져 있다. 문득 이상민 감독이 보는 ‘방송인 서장훈’이 궁금해졌다.

Q. 감독님과 방송인 서장훈 씨가 상당히 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감독님도 예능에 섭외가 오면 할 생각이 있으신지.
A. 저는 절대 안 해요. 체질에 안 맞는 것 같아요. 특히 여자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해서 어렸을 때도 소개팅, 미팅 같은 건 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겼어요. 어차피 팬 대부분이 여자들이고 익숙해 지다보니 그래도 적응이 좀 되더라고요. 그런데 카메라는 여전히 부담스럽습니다.

Q. 실제로 이렇게 인터뷰를 할 때는 상당히 말씀을 잘하시는데, 영상 인터뷰는 유독 꺼리시잖아요. 이유가 뭔가요.
A. 제가 대학교 때 처음 방송 인터뷰를 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제 목소리가 별로 안 좋다’라고 그때 처음 느꼈죠. 그날 이후로 제 인터뷰는 안 봐요. 채널 돌려버려요.

Q. 서장훈 전 선수와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A. 고등학교 때 처음 알게 됐어요. 장훈이가 고 1때 같이 방을 썼는데 알고 보니 집도 가까웠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친해지게 됐죠. 장훈이와 저는 성격이 정 반대에요. 주로 장훈이가 이야기를 하면 제가 들어주고, ‘이것은 맞다, 저건 틀리다’ 이렇게 조언해주는 입장이었어요. 대학 때까지 늘 제 옆에는 장훈이가 있었죠.

Q. 서장훈 선수 옛날에는 어떤 동생이었어요. 이렇게 방송인으로 성공할 줄 알고 계셨어요?
A. 정말 장훈이가 예능을 할지는 몰랐어요. 지금은 장훈이가 많이 알려져서 밖에도 막 돌아다니는데 옛날에는 키가 너무 커서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어요. 장훈이랑 만나면 골목만 찾아 돌아다녔을 정도라니까요.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 출연 요청이 왔을 때도 끝까지 안 나간다고 했던 애가 장훈이거든요. 그랬던 애가 지금 방송인이라고 여기저기 나오는걸 보면 참 신기해요. 그런데 요즘은 예능에서의 모습이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

Q. 예능에서 보는 성격이 진짜 성격인가요.
A. 네. 예능에서 드러나는 성격이 정말 100% 장훈이 성격이에요. 처음에 나와서 쭈뼛대고 할 때는 ‘쟤가 왜 저기 나와서 저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히려 자기 성격대로 하니까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본인도 재미있어 하는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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