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①] ‘축구선수’ 황희찬, 남달랐던 첫 걸음
[단독인터뷰②] 오스트리아 누비는 황희찬, 순풍에 돛 달다
[단독인터뷰③] 황희찬의 목표, EPL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
[단독인터뷰④] ‘국가대표’ 황희찬이 꿈꾸는 ‘AGAIN 2002'

[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한국축구의 재목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2015년 10월, 22세 이하 선수들로 구성된 올림픽대표팀에 10대 선수가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신태용(47) 당시 감독은 “실력만 보고 뽑았다. 세 살 어리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화성에서 열린 호주와의 평가전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돌적인 돌파에 파워풀한 몸싸움까지, 황소 같았던 그의 존재감에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대형급 스트라이커가 나타났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황희찬(21·잘츠부르크)의 등장은 더없이 화려했다.

축구국가대표 공격수 황희찬이 경기도 부천시 한 카페에서 진행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스카우트? 스스로 축구부 찾아간 ‘재능’

축구가 마냥 좋았다. 친구들과 공을 차며 노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대한민국이 들썩였던 2002년 월드컵을 보며 축구선수의 꿈도 키워갔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이 운명처럼 찾아왔다.

”까치울초 1학년 때였어요. 어머니와 크리스마스 씰을 사러 학교에 갔는데, 그날 축구부가 창단된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을 찾아가서 축구부할 수 있냐고 물었죠. 감독님도 한 번 해보라고 하셔서 시작을 했어요. 스카우트가 아니라 제가 직접 찾아간 거죠.“

시작부터 공격수로 뛰었다. 사연이 재미있다. 그는 “감독의 권유로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내가 형들을 다 이겼다”며 “그때부터 공격수로 뛰기 시작했다”고 웃어 보였다. ‘스트라이커’ 황희찬의 시작이었다.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한 것은 6학년 때였다. 까치울초 축구부가 해체되면서 의정부 신곡초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후 전국대회를 평정하며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화랑대기에서는 19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동원컵에서도 팀의 우승과 함께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제21회 차범근축구상 대상의 영예도 그의 몫이었다.

축구국가대표 공격수 황희찬이 경기도 부천시 한 카페에서 진행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포항스틸러스 유스와 함께 ‘전국’을 제패하다

“포항제철중·고에서의 6년은 되게 많은 것을 느꼈던 시기였어요. 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수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였죠.”

신곡초 졸업을 앞두고 많은 중학교 팀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고심 끝에 그는 프로축구 포항스틸러스 유스팀인 포항제철중을 택했다. 공 좀 찬다는 전국 각지의 유망주들이 몰렸다. 초반에는 부침을 겪었다. 특히 2학년 때는 허리와 발목 부상 등으로 고생을 했다. 스스로 “힘든 시기였다. 되게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힘든 시기를 그는 개인운동을 하면서 묵묵히 버텼다. 그리고 3학년이 되면서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당시 포항제철중은 경북리그와 왕중왕전을 모두 제패했다. 황희찬은 왕중왕전에서만 6경기에서 5골을 넣었다. 중학교 이상의 레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한축구협회 중등부 최우수선수상은 그의 몫이었다.

독보적이었던 존재감은 포항제철고 진학 후 더욱 빛났다. 16세 이하(U-16)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돼 2012 AFC(아시아축구연맹) U-16 챔피언십 득점왕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포항제철고의 고등리그 왕중왕전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대회 최우수선수상과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고등부를 평정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만 17세, 고교 2학년이었다.

“고2때 나갔던 2013년 왕중왕전이 가장 기억이 남아요. 너무 큰 대회이기도 했고, 당시 멤버들도 좋았거든요. 축구도 굉장히 재미있게 했었어요. 학창시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죠.”

축구국가대표 공격수 황희찬이 경기도 부천시 한 카페에서 진행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일찌감치 품기 시작한 ‘유럽 진출의 꿈’

남달랐던 재능은, 자연스레 꿈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넘어, 유럽 무대를 누벼보고 싶다는 목표를 품었다. 그는 “유럽에 나가서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거스 히딩크(71)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도 인연이 닿았다. 고3 여름이었다. 지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히딩크 감독이 방한 당시 그를 숙소로 불렀다. 히딩크 감독은 “하루 빨리 재능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며 PSV에인트호번(네덜란드) 이적을 추천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기뻤죠. 다만 시기적으로 시즌 중에 팀(포항제철고)을 떠날 수 없었던 상황이어서, 정중히 입장을 전달해 드렸어요."

황희찬과 거스 히딩크 감독. 황희찬 제공
이후 황희찬은 포항제철고를 이끌고 두 차례의 전국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시즌 말미, 다시금 유럽 진출의 기회가 찾아왔다. 오스트리아 명문 잘츠부르크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다. 빅리그, 빅클럽은 아니더라도 유럽 무대라는 점에서 도전 가치는 충분했다. 결국 그는 2013년 12월 오스트리아로 날아가 계약서에 서명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18세였다.

“빅클럽은 아니지만, 공격지향적인 팀 컬러에 반했어요. 더 큰 무대에서 더 잘 해보고 싶었습니다. 믿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정말 죽도록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각오를 가졌죠.”

'[단독인터뷰②] 오스트리아 누비는 황희찬, 순풍에 돛 달다'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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