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그동안 한국 불펜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김병현, 구대성, 봉중근, 김선우, 박찬호 등이 '구원투수로' 뛴 적은 있지만 장기적 성공을 거뒀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나마 김병현은 단기간동안(2001~2003) 엄청난 임팩트를 보이며 현재까지도 회자될만한 활약을 보여준 바 있다. 그 단기 임팩트 중에서도 최고로 여겨지는 2002년의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알아주는 선수였음이 틀림없다.

바로 이 2002시즌의 김병현에 근접 혹은 넘어서는 선수가 등장했다. 바로 2016년의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다. 걸어온 길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지만 ‘메이저리그 구원투수’라는 단 하나의 접점만을 놓고 봤을 때 최고 시즌 활약도는 누가 더 뛰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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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김병현, 처음이자 마지막 韓올스타

2001년 김병현은 월드시리즈 역사에 길이 회자되는 연속 블론세이브로 우승에도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김병현은 특유의 낙천적 성격으로 이 아픔을 모두 씻어냈고 2002년을 불펜투수 역사에도 입지적인 시즌을 만든다.

2002 김병현 : 72경기 84이닝 8승 3패 36세이브 평균자책점 2.04 FIP 2.69 92탈삼진 WHIP 1.07 WAR 2.5

2002년의 김병현은 풀타임 마무리 투수로 첫 발을 내딛었고 무려 36세이브를 거두며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까지 선정된다. 이 올스타 선정은 15년이 지난 현재에도 더 이상 한국선수로서는 나오고 있지 않다.

무려 불펜투수로 2.5의 fWAR을 기록했고 이는 ML 공동 5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성적이었다. 프리즈비 슬라이더와 잠수함 투수로서는 말도 안되는 최고 구속 96마일에 다하는 구위는 ‘BK의 슬라이더는 사무국 차원에서 금지시켜야한다’는 말까지 나오게 할 정도였던 2002시즌이었다.

▶2016 오승환, 바닥부터 정상까지 치고 올라간 놀라운 데뷔

2016시즌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한 오승환에게 주어진 첫 역할은 좋게 말하면 추격조, 나쁘게 말하면 패전처리였다. 불펜투수의 역할 중 가장 바닥단계.

하지만 오승환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작은 역할에도 실망하지 않고 실력을 보여주는데만 집중했다. 그러자 서서히 오승환에게 동점 상황에 버티는 역할이 주어지고, 8회 셋업맨 역할도 부여됐다. 결국 후반기에는 트레버 로젠탈의 부진과 부상이 겹치자 집단 마무리 체재의 일원 중 하나로 격상됐다 결국 단독 마무리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 했다. 그야말로 바닥에서부터 정상까지,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던 오승환이었다.

2016 오승환 : 76경기 79.2이닝 6승 3패 19세이브 평균자책점 1.92 FIP 2.13 103탈삼진 WHIP 0.92 WAR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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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자책점 1.92는 일본리그에서 뛴 2년간의 평균자책점 2.25보다 훌륭하다. 단순히 평균자책점으로 봐도 일본에서 뛴 오승환을 미국에서 뛴 오승환이 넘은셈이다.

WHIP(이닝당 출루허용)에서도 일본에서 2년간 0.99를 기록했는데 미국에서 0.92를 기록했다. 9이닝당 탈삼진 숫자가 일본에서 9.7개였지만 미국에서는 11.6개로 확 늘었다. 국내에서 탈삼진율이 11.09개였는데 미국에서 더 많은 11.6개를 잡아냈다는 점도 놀랍다.

올시즌 세인트루이스에서는 20이닝 이상을 던진 불펜투수가 총 9명이 있었다. 이중 오승환은 이닝(79.2), 경기수(79), 승리(6), 세이브(19), 탈삼진(103), 9이닝당 볼넷허용(2.03), WAR(2.6) 등 모든 지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팀내 다른 불펜투수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는 오승환이 혼자 기록한 WAR(대체선수 이상의 승수)은 2.6인데 나머지 8명의 선수 전원이 합쳐도 1.7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하나로 정리된다.

▶비등한 2002 김병현과 2016 오승환, 저평가 되기 아쉬운 성적

평균자책점이나 삼진 숫자, 세이브 숫자 등은 맡은 역할이나 당시 리그 상황에 따라 변동이 가능하기에 다른 시대를 보낸 두 선수를 비교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하지만 세부 지표 중 WAR과 조정 평균자책점(시대를 불문, 타자/투수 친화적인 구장 등 많은 요소를 같은 값으로 변환한 평균자책점, ERA+ 혹은 ERA-)은 시대를 떠나 직접적 비교가 가능하다.

일단 FIP(수비무관 평균자책점)를 기반으로 한 팬그래프 fWAR에서는 2016년의 오승환이 2.6을 2002년의 김병현은 2.5를 기록했다. 간발의 차이로 오승환이 앞선 것. 반면 실점을 기반으로 한 베이스볼 레퍼런스 bWAR에서는 김병현이 4.1로 2.8의 오승환을 압도적으로 앞선다. fWAR이 조금 더 대세로 인정받고 있지만 bWAR에서 김병현이 보인 차이가 1.3이나 된다는 점은 분명 놀랍다.

팬그래프의 조정 평균자책점인 ERA-(100을 기본으로 낮을수록 뛰어남)에서도 두 선수는 동일했다. 김병현과 오승환 모두 47을 기록한 것. 반면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ERA+(100을 기본으로 높을수록 뛰어남)에서는 2002년 김병현은 223을 기록했고 2016년의 오승환은 214를 기록했다. 근소한 차로 김병현이 앞선 것.

결국 오승환은 일반 지표에서는 2002년의 김병현보다 앞섰다. 또한 fWAR에서도 김병현을 넘어 한국 불펜투수 역대 최고를 경신했다는 점에서 박수 받을만한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김병현은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에서 전체적으로 오승환을 앞섰고 이는 약물의 시대로 역대 최고 ‘타고투저’시즌을 관통하면서도 기록한 성적임을 인정받은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분명한 것은 2002년의 김병현은 당시 한일월드컵으로 인해 사람들의 뇌리 속에 크게 박히지 않았고 2016년의 오승환은 마무리를 꿰찬 것이 시즌 막판이었기에 임팩트가 약했다는 저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두 선수의 시즌은 분명 한국 불펜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기록할 수 있는 최고점이 어디인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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