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미국을 위협하는 스포츠 강국 중국. 하지만 중국 스포츠에 있어 유도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올림픽에서 4번째로 많은 메달 56개가 걸린 종목이지만 중국에게 있어 유도는 남의 집 잔치였다.

특히 남자 유도가 문제였다. 여자 유도는 역대 4번째로 많은 금메달(8개)을 따냈지만 남자 유도는 금메달은커녕 동메달 하나도 따내지 못해왔다. 올림픽에서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중국의 남자 유도 노메달은 수치와 다름없었다.

중국은 한국에게 올림픽 역대 최고성적(금2, 동1)을 안겼던 정훈(47) 감독에게 2014년 지원요청을 했고 이 선택은 '신의 한수'가 돼 돌아왔다.

중국의 청쉰자오와 정훈 감독
▶“속 썩이던 녀석이 동메달 따고 안기는데 왈칵했죠”

정훈 감독은 지난 8월 브라질에서 열렸던 2016 리우 올림픽에서 ‘그래봤자 중국’이라고 여겨지던 남자 유도에서 동메달을 수확했다. 우리에게는 ‘고작 동메달’일 수도 있지만 중국에겐 남몰래 속앓이 해왔던 ‘노메달’ 남자 유도에서 드디어 메달이 나왔으니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입국하는 날 베이징 공항은 환영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을 정도였다.

“정말 엄청났죠. 제 생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둘러싼 건 처음이었다니까요. 솔직히 ‘동메달 하나만 따서 죄송한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중국에서는 절 영웅 취급해주시고 언론에서도 크게 다뤄주시는데 올림픽 끝나고 한동안은 방송 출연에 인터뷰에 뭐다 바빠 죽는줄 알았네요. 하하.”

베이징 거리를 걷다보면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고생했다는 정훈 감독은 다시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와 용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꿈같았던 지난 8월, 남자 90㎏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특히 아끼던 제자였던 청쉰자오가 동메달을 따내고 자신에게 달려왔을 때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녀석이 얼마나 속을 많이 썩였는데요. 힘들면 숙소에서 도망치고, 훈련 못하겠다고 저한테 뭐라하고 말이죠. 마음을 다잡게 하는데 특히 힘들었던 녀석인데 그런 애가 동메달을 따고 가장 먼저 저한테 달려와 안기는데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

정훈 감독이 청쉰자오와 환호하는 사이 중국 유도 협회장 등 고위관계자들도 체통을 잊고 모두 달려 나와 정훈 감독에게 안기며 서로 기쁨을 나눴다고 한다.

정훈 감독은 “동메달을 따니까 자신들도 ‘남자 유도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긴 임원이 되는거잖아요. 저한테 연신 ‘고맙다’면서 중국말로 뭐라고 하는데 너무 빨리 말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라며 동메달 획득 순간을 회상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단순히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에 4강 진출이라는 결과만 안긴 것이 아니다. ‘한국 축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뿌리고 떠났다.

정훈 감독 역시 그동안 패배의식에 드리웠던 중국 남자 유도에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뿌린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분명 정훈 감독은 중국 유도계에 있어 한국 축구가 히딩크 감독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유도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동메달을 기뻐하는 중국의 청쉰자오와 정훈 감독. ⓒAFPBBNews = News1
▶처음엔 막막했던 중국 유도…스파르타식 훈련 가능케한 근면성

2014년 갑작스럽게 중국 남자 유도 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한 정훈 감독은 2년밖에 남지 않은 올림픽을 위해서는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 감독식 스파르타 훈련법이 중국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처음엔 중국 선수들이 기겁을 했죠. 며칠 해보더니 나가떨어지는 선수가 부지기수였고 심지어 어떤 선수들은 야반도주로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더라고요. 제가 직접 비행기 타고 가서 잡아왔죠. 도망간 친구를 보고 타이르기보다 술이라도 한잔 사주면서 진솔한 얘기를 들으며 다가갔죠. 훈련은 그 누구보다 강하게 시키되 다가갈 때는 한없이 인간적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마음을 잡을 수 없더라고요.”

처음엔 코치진들과도 마찰이 심했지만 중국 유도협회장이 나서서 정 감독의 방패막이가 됐다. 정 감독이 런던올림픽에서 보인 성과가 있기 때문이었고 정 감독은 감독생활에서도 특유의 ‘근면성’을 발휘해 지난 2년간 단 한 번도 훈련에 늦지 않는 것은 물론 매 훈련마다 10분씩 일찍 나와 중국 선수들의 모범이 됐다.

결국 이런 고된 과정이 있었기에 1964년 유도가 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무려 52년간 ‘노메달’이었던 중국 남자 유도는 정훈 감독으로부터 그 징크스를 끊었다.

동메달을 딴 유도대표팀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인파들
▶올림픽마다 역사를 쓰는 정훈 감독… 기대되는 향후 행보

정훈 감독은 이미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역사를 썼던 명장이다. 한국 남자 유도가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던 1988 서울올림픽(금메달 2, 동메달 1)은 ‘개최국 프리미엄’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훈 감독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유도대표팀을 이끌고 1988 올림픽과 똑같은 성적을 거뒀다. 24년만에 나온 한국 남자 유도의 최고 성과였다.

그렇기에 2016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유도가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몰락’을 맛본 것이 더 비교될 수밖에 없다.

‘감독님이 계셨더라면 어땠을까’라며 아쉬워하자 그는 “저도 현장에서 한국 남자 대표팀을 지켜보며 참 안타까웠죠. 많은 분들이 제가 이끌던 2012년과는 다르다고 하시는데 제가 했어도 더 나은 성적을 거두기는 쉽지 않았을거예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정훈 감독은 용인대 학생들에게 일주일 먼저 기말고사를 치자고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그를 잊지 못하고 초청을 해 ‘중국 유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중국 전 지역의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부탁했기 때문.

한국 축구 역시 가끔 히딩크 감독에 대한 향수에 젖듯이 중국 역시 정훈 감독에 대한 향수로 꾸준히 초청행사에 대한 문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국 남자 유도에 24년만의 최고 성적을 안기더니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중국 남자 유도 역사상 최초의 메달을 안긴 ‘메달 청부사’ 정훈 감독의 향후 행보가 기대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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