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시카고 컵스가 1908년 순종 2년 이후 108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한달가량 진행됐던 ‘2016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이 모두 끝났다. 컵스는 1승3패까지 몰렸던 월드시리즈에서 거짓말 같이 3연승을 하며 우승을 맛봤다.

한국 선수와 관련이 없는 팀들이 진출해 다소 주목도가 떨어지는가 했던 이번 포스트시즌은 그럼에도 LA다저스 클레이튼 커쇼의 투혼, 사연 많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시카고 컵스의 격돌 등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강팀의 몰락? 진짜 강한자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8강에 해당하는 디비전시리즈의 결과는 전문가들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무키 베츠와 같은 신성들의 활약에 데이빗 오티즈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타선을 지키고 투수진에서는 22승을 거둔 릭 포셀로에 마무리 크렉 킴브렐까지 있어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평가 받았다. 그러나 보스턴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팀인 클리블랜드에게 3연패를 당하며 허무하게 탈락하고 말았다.

텍사스 역시 무려 95승을 거두며 아메리칸리그 승률 1위에 올라 큰 기대를 받았다. 마침 상대도 와일드카드로 겨우 올라온 토론토 블루제이스였다. 하지만 텍사스는 토론토에게 허무하게도 3연패로 져버렸다. 아메리칸리그는 ‘강팀’이 몰락했고 언더독만 살아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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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내셔널리그에서도 강팀이 떨어질까 관심이 모아졌다. 특히 올 시즌 유일한 100승팀(103승)으로 모든 것이 완벽했던 컵스의 생존여부가 관심이었다. 컵스는 디비전시리즈에서 ‘가을 사나이’ 메디슨 범가너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무너뜨리더니 챔피언십시리즈에서는 현존 최고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를 이겨내며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그리고 월드시리즈에서는 4차전까지 1승3패로 궁지에 몰렸으나 ‘지면 끝’이었던 3경기를 모두 잡아내며 기적같이 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최다승 팀인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116승) 등이 그랬듯 ‘정규시즌 강팀은 우승을 못한다’는 메이저리그내 공식을 깬 것이다. 진짜 강한 컵스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끈끈함 보여준 다저스, 그러나 해결 못한 커쇼의 ‘PS 새가슴’

다저스는 2013년부터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러나 다저스는 늘 포스트시즌에서 무기력했다. 가장 돈을 많이 쓰는 팀이지만 가을야구만 하면 끈끈함은 없었고 지던 경기를 뒤집는 저력도 부족했다. ‘배부른’ 다저스는 ‘끈질김’으로 승부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은 달랐다. 디비전시리즈에서 1,4차전 선발로 나온 커쇼가 무너졌음에도 타선이 힘을 내 승리를 따내자 최종전이었던 5차전에서는 커쇼가 구원등판을 해 세이브를 올렸다.

또한 컵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서도 2차전 1-0 진땀승을 거두는등 투타 모두에서 끈끈함이 돋보였다. 커쇼 역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절박함을 보이며 팔이 빠져라 공을 던졌다.

하지만 커쇼는 끝내 ‘포스트시즌 새가슴’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디비전시리즈 5차전 세이브에 이어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 7이닝 무실점 활약하긴 했지만 6차전 5이닝 5실점(4자책)으로 무너졌다. 결국 커쇼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5경기 평균자책점 4.44, 통산 18경기 4.55에 그치며 정규시즌(통산 2.58)과는 너무 다른 모습을 극복하지 못했다. 가을만 되면 작아지는 ‘포스트시즌의 새가슴’이라는 오명을 끝내 벗지 못한 커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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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승 그친 클리블랜드, 황당 부상·사건만 아니었다면

클리블랜드는 언더독으로 평가를 받았지만 끝내 준우승까지 해냈다. 딱 1승만 더하면 됐지만 월드시리즈 5,6,7차전을 내리 내주며 끝내 패했기 때문. 포스트시즌 있었던 황당한 사건들만 아니었다면 1승을 따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다.

클리블랜드에게 있었던 첫 번째 황당 사건은 바로 선발 투수 트레버 바우어의 부상이다. 팀의 2선발로 핵심 역할을 맡던 바우어는 어이없게도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 등판을 하루 앞두고 부상을 고백했다. 드론을 가지고 놀다 손가락 부상을 당했다는 것.

말도 안되는 실수로 부상을 당한 바우어는 3차전에서 0.2이닝만 던지고 부상 부위를 이기지 못하고 강판됐다. 결국 바우어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5경기 나와 2패 평균자책점 5.27에 그쳤다.

두 번째 황당 부상은 월드시리즈행이 확정된 그 순간 나왔다. 팀의 주전 2루수이자 2번 타자인 제이슨 킵니스는 챔피언십 우승 세리머니를 하다 팀동료가 발을 밟아 부상을 당한 것.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부상이다. 다행히 킵니스는 회복을 해 월드시리즈에 나오긴 했지만 수비에서 평소엔 안하던 어이없는 실책을 범해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마지막 황당 사건은 월드시리즈 5차전이 끝나고 하루 휴식 후 6차전을 가지기 위해 시카고에서 클리블랜드로 돌아가는 길에 생겼다. 5차전 패배를 당한 후 빨리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려했던 선수단은 전세기가 갑자기 고장이 나면서 연착이 되버려 공항에서 발이 묶였다.

결국 새벽 5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던 선수들은 이 연착사건 이후 거짓말처럼 홈에서 6,7차전을 모두 내주며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1년중 한번 일어나기도 힘든 일을 포스트시즌 기간 동안 3차례나 겪은 클리블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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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 던지는 불펜투수를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동안 야구계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가장 뛰어난 불펜투수를 9회 마무리투수로만 활용하는 것. 물론 마무리의 임무가 워낙 중요하기도 하지만 사실 일반적으로 팀의 위기상황은 6,7회에 선발투수가 내려가면서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런 중요한 순간에 최고 불펜 선수가 아닌 2,3번째로 잘하는 투수가 나오는 것이 많았다. 최고 투수는 9회를 위해 아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는 ‘가장 잘 던지는 불펜투수는 가장 중요할 때 쓴다’는 평범한 진리가 자리 잡아 의미가 있다. LA다저스는 마무리 투수 캔리 젠슨을, 클리블랜드는 앤드류 밀러를, 컵스는 아롤디스 채프먼을 7회부터 쓰는 일이 허다했고 심지어는 5회에 쓰기도 했다. 밀러는 불펜투수로서 챔피언십 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마무리 투수는 9회에’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각 팀 감독들은 정말 중요한 순간에 가장 뛰어난 불펜투수를 활용했다. 이는 향후 메이저리그가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탈피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물론 포스트시즌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런 활용이 가능하긴 했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을 계기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불펜투수는 9회가 아닌 6,7회에 나오는 선수가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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