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양으로 밀어붙였던 한국 메이저리거들 가운데서도 가장 빛났다. 모두가 오승환이 뛰어났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대체 얼마나 대단한 시즌을 보냈는지를 세세하게 살펴볼 기회는 없었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물론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지만 올시즌의 오승환은 기록을 찬찬히 뜯어보면 우리가 알던 그 이상 뛰어난 시즌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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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 오승환을 넘다

누구도 한국이나 일본리그가 메이저리그보다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 일본리그에서의 성적이 메이저리그보다 더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오승환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2016시즌 오승환 : 76경기 79.2이닝 6승3패 평균자책점 1.92 탈삼진 103 WHIP 0.92

기본 기록만 살펴봐도 대단하다. 평균자책점 1.92는 일본리그에서 뛴 2년간의 평균자책점 2.25보다 훌륭하다. 단순히 평균자책점으로 봐도 일본에서 뛴 오승환을 미국에서 뛴 오승환이 넘은셈이다.

WHIP(이닝당 출루허용)에서도 일본에서 2년간 0.99를 기록했는데 미국에서 0.92를 기록했다. 9이닝당 탈삼진 숫자가 일본에서 9.7개였지만 미국에서는 11.6개로 확 늘었다. 국내에서 탈삼진율이 11.09개였는데 미국에서 더 많은 11.6개를 잡아냈다는 점도 놀랍다.

1년 사이 기량이 갑자기 좋아지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스타일이 일본보다 오승환에게는 적응이 더 쉬웠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압도적 1위의 팀내 성적… 메이저리그 전체 6위

올시즌 세인트루이스에서는 20이닝 이상을 던진 불펜투수가 총 9명이 있었다. 이중 오승환은 이닝(79.2), 경기수(79), 승리(6), 세이브(19), 탈삼진(103), 9이닝당 볼넷허용(2.03), WAR(2.6) 등 모든 지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팀내 다른 불펜투수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는 오승환이 혼자 기록한 WAR(대체선수 이상의 승수)은 2.6인데 나머지 8명의 선수 전원이 합쳐도 1.7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하나로 정리된다.

메이저리그 전체로 확대하면 더 놀랍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20이닝 이상을 던진 불펜투수는 284명. 여기에서 오승환은 79이닝 이상을 던진 7위였으며(79.2이닝), 76경기 출전은 전체 8위였다. 103개의 탈삼진은 전체 6위, WAR에서는 전체 5위(2.6)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불펜의 모든 투수를 서열화한다면 6~7위다. 메이저리그 총 30개팀, 그리고 불펜투수는 한 팀에 기본 7명 정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승환의 순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알 수 있다.

오승환의 세인트루이스 입단식 모습. 세인트루이스 공식 SNS
▶구속으로 설명되지 않은 돌직구+슬라이더 조합의 성공

오승환하면 역시 돌직구다. 이 묵직한 패스트볼은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속도 경쟁력도 있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경쟁력을 잃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불펜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3.4마일(150km)이지만 오승환의 패스트볼은 평균 이하인 92.8마일(149km)에 그쳤다.

하지만 구속이 다가 아니다. 팬그래프가 제공하는 구종가치(Pitch Value: 기대 득점을 막아낸 것으로 평가)에 따르면 오승환의 패스트볼은 구종가치 13.3으로 불펜투수 전체를 통틀어도 8위였다. 슬라이더 역시 13위(9.0)로 고순위였다.

오승환은 전체 구종의 91.9%를 담당한(패스트볼 60.6%, 슬라이더 31.3%) 돌직구+슬라이더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상급으로 통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 배운 포크볼(스플리터)도 13명 중 4위의 구종가치(0.6)를 보인 것도 쏠쏠했다.

▶진짜 '알고도 못 친' 오승환의 공

그렇다면 이렇게 모든 구종에서 구종가치가 높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타자들은 오승환의 공을 ‘알고도 못 친다’고 했다. 이게 국내에만 한정된게 아니다. 아마 오승환을 한시즌 상대해본 메이저리그 타자들도 똑같이 말할 것이 틀림없음은 기록을 통해 드러난다.

오승환의 공은 일단 굉장히 치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공이었다. 스트라이크존 안에 들어왔을 때 스윙한 비율(Z-Swing%)이 불펜투수 전체 중 7위(74.1%)로 많았다. 공을 던질 때마다 스윙한 비율(Swing%)도 7위(53%)였다. 즉 오승환은 상위 7위 수준으로 타자들의 방망이를 많이 이끌어낸 투수이며 방망이를 쉽게 냈다는 것은 그만큼 오승환의 공이 만만해보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건 방망이를 내도 못 맞추면 허사라는 점. 스트라이크존 안에 들어왔을 때 타자가 공을 맞춘 비율(Z-Contact%)에서 하위 3위였다. 하위 1위는 평균 100마일을 던지는 아롤디스 채프먼(69.2%). 채프먼의 공은 존안에 들어와도 너무 빨라서 못 친 것이라면 오승환의 공은 평균보다 느린데도 스트라이큰 존 안에 들어왔을 때 방망이에 갖다 대지 못한 것이다. 오승환의 투구가 그만큼 스트라이크존 구석에 제대로 꽂히면서 공의 움직임이 변화무쌍했음을 나타낸다.

전체 던진 공에 대해 배트에 맞춘 비율(Contact%)에서도 하위 8등인 65.7%를 기록했고 헛스윙 스트라이크 비율이 18%로 전체 5위였다는 기록 역시 주목해야한다. 이는 스윙을 상위 7번째 수준으로 많이 이끌어낸 투수가 방망이에는 8번째로 덜 맞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오승환의 공에 대해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스윙을 하고 싶게 만드는데 정작 치지는 못하는’ 타격에 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보다 뛰어난 찬사는 투수에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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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차,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올해만 같아라'

워낙 대단한 시즌을 보낸 오승환이기에 2년차인 내년 시즌 목표는 ‘더 잘하기’가 아닌 ‘지키기’에 초점이 맞춰져야한다. 더 잘하기는 결코 쉽지 않고 더 오를 곳도 별로 없다. 일단 오승환은 후반기부터 따냈던 마무리 투수 자리를 수성해야한다. 스프링캠프면 기존의 세인트루이스 마무리 터줏대감이었던 트레버 로젠탈(통산 110세이브)과 마무리 경쟁을 펼쳐야한다.

오승환이 유지만한다면 그 자리는 오승환 것 일테지만 조금만 흔들려도 로젠탈은 빈틈을 파고들 수 있다. KBO리그 역사상 세이브 1위(277세이브)이자 일본 2년만에 80세이브를 거둔 ‘마무리’ 오승환은 올시즌 거둔 19세이브를 포함해 내년 24세이브만 더하면 한미일 통산 400세이라는 대업을 달성한다.

결국 이 대기록도 올 시즌만큼의 활약을 유지하고 마무리 투수자리를 지킨다는 보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오승환이 바래야할 것은 추석이면 늘 듣는 덕담과 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올해만 같아라.’

-이재호의 스탯볼 : 스탯볼은 기록(Statistic)의 준말인 스탯(Stat)과 볼(Ball)의 합성어로 '이재호의 스탯볼'은 경기를 통해 드러난 각종 기록을 분석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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