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겨울스포츠의 꽃’ 프로배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격돌한 OK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의 맞대결로 15일 성대한 막을 올렸다. 프로배구는 내년 4월 챔피언결정전까지 장장 7개월여의 대장정에 나선다.

그런데 시즌 초반, 코트 분위기가 예년과는 사뭇 달라졌다. 외국인선수의 파워풀한 공격에 의존하던 이른바 ‘몰빵배구’가 줄어들고, 국내 선수들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심지어 공격보다 수비에 더 특화된 외국인선수마저 등장했다. OK저축은행의 로버트랜디 시몬(29·쿠바)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국내에 남기 어렵도록 바뀐 제도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삼성화재에서 뛰던 가빈 슈미트. 스포츠코리아 제공
몰빵배구가 좌우해온 프로배구 패권

그동안 프로배구는 외국인선수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승부처 상황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세트(토스)가 외국인선수에게 향하는 일편단률적인 공격이 주를 이뤄온 까닭이다. 물론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가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얻는 것은 당연했지만, 도를 넘어섰다는 반응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몰빵배구’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이러한 배구가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신치용(61) 삼성화재 단장이 삼성화재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2006~2007시즌부터다.

당시 삼성화재는 레안드로 다 실바(33·브라질)에게 공격을 몰아주는 배구를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안젤코 추크(33·크로아티아) 가빈 슈미트(30·캐나다) 레오나르도 레이바(26·쿠바) 등 새로운 외국인선수들 역시 삼성화재의 공격을 도맡았다.

이 과정에서 삼성화재는 챔피언결정전 7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신치용 감독은 “몰빵배구가 아니라 분업배구다. 시합이란 가장 잘 하는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2014~2015시즌 삼성화재의 아성이 무너졌다. 김세진(42) 감독이 이끄는 OK저축은행이 창단 2년 만에 정상에 섰다. 그 중심에는 물론 세계적인 센터 출신인 시몬이 있었다. 공격수인 라이트 역할까지 소화한 그는 프로배구를 흔들며 OK저축은행의 2연패를 이끌었다. 물론 OK저축은행 역시 ‘몰빵배구’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다른 팀들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OK저축은행 로버트랜디 시몬. 스포츠코리아 제공
‘연봉 제한’ 트라이아웃 도입, 변화의 시작

몰빵배구가 트렌드로 자리 잡자 논란이 불거졌다. 외국인선수에게만 향하는 공격 패턴이 경기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장의 승리를 위한 플레이 때문에 국내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2015~2016시즌 현대캐피탈의 이른바 ‘스피드배구’가 팬들의 찬사를 받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최태웅(40) 감독은 외국인선수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대신 국내 선수들의 공격 등 다양한 패턴을 앞세웠다. 비록 챔피언결정전에서는 OK저축은행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정규리그에서는 역사상 최다인 18연승을 달성하며 신바람을 냈다.

결국 한국배구연맹(KOVO)이 결단을 내렸다. 2016~2017시즌부터 외국인선수를 트라이아웃으로 선발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꿨다. 막대한 연봉을 주고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었던 기존 제도에 제동을 건 것이다. 연봉을 30만달러(약 3억4000만원)로 제한하고, 각종 수당도 규정화하는 것이 바뀐 규정의 골자였다.

그동안 자유롭게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던 팀들은 트라이아웃을 신청한 선수들의 연습경기를 지켜본 뒤, 그들 중 1명을 선발하게 됐다. 물론 연봉이 제한되면서 세계적인 선수들은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 어려웠다. 시몬을 비롯해 현대캐피탈의 18연승 주역이었던 오레올 까메호(30·쿠바) 등이 국내 배구코트를 떠난 이유였다.

대전충무체육관에서 `NH농협 2015-2016 V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 2차전 삼성화재와 OK저축은행의 경기가 열렸다. 삼성화재 그로저가 스파이크 공격을 한 후 오른쪽 어깨를 잡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수비형 용병’도 등장, 달라진 코트 분위기

자연스레 새 시즌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국인선수들의 존재감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전술적인 색채에 변화를 준 팀들도 있었다. 몰빵배구의 비중이 주는 대신, 국내 공격수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스피드배구 등 노선을 바꾸는 팀들이 나왔다. 예년과는 경기내용 자체가 달라졌다.

급기야 공격이 아닌 수비에 보다 특화된 외국인선수도 등장했다. 현대캐피탈의 톤 밴 랭크벨트(32·캐나다)가 대표적이었다. 레프트인 그는 화려한 공격보다는 안정적인 리시브로 팀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태웅 감독은 물론 동료들도 “톤이 안정적으로 수비를 해주고 있어 든든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신 현대캐피탈의 공격은 문성민 신영석(이상 30) 최민호(28) 등 국내 선수들의 비중이 늘었다.

현대캐피탈 제공
OK저축은행은 시몬이 떠난 직후 흔들리고 있다. 당초 트라이아웃에서 지명한 쿠바 출신의 롤란도 세페다(27)가 성폭행 혐의에 연루되면서 마르코 보이치(28·몬테네그로)를 영입했는데, 아직 활약이 신통치 않다.

김세진 감독은 “예전에는 시몬이 어려운 공을 때려줬다면 이제는 그것을 못 한다. 아직 그러한 부분들에 젖어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2년 연속 왕좌에 오른 OK저축은행이 시즌 초반 추락하고 있는 것은, 외국인선수 제도의 개편으로 달라진 프로배구 풍경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물론 바뀐 제도 속에서도 여전히 몰빵배구에 무게를 두는 팀도 있다. 신치용 감독을 이어 지휘봉을 넘겨받은 임도헌(44) 감독의 삼성화재다. 새 외국인선수 타이스 덜 호스트(25·네덜란드)는 21일 현대캐피탈전에서 홀로 51점(점유율 58.2%)을 책임지는 등 삼성화재 특유의 색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팀의 성적은, 타이스의 높은 점수와는 여전히 비례하지 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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