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스포츠한국 이재현 기자]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성지중고등학교는 대안학교다. 대안학교라는 고정된 이미지만 떠올리면 뭔가 부족할 것만 같다.

그러나 사정은 딴판이다. 일반 고등학교도 갖추기 힘든 야구부가 있다. 왜곡된 인식에 선수수급에 애를 먹을 때도 있지만 편견에 맞서 국내 대안학교로는 최초로 야구부를 창단했고,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굴러가고 있다. 이를테면 고교야구의 `외인구단' 성지고의 성공시나리오는 한창 진행중인 셈이다.

  • 성지고 야구단.
지난 20일 오후 1시 김포시 월곶면에 위치한 송일야구장. 오는 29일부터 시작하는 서울시고교야구 추계리그를 목표로 하는 성지고 야구부 선수들은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직접 베팅케이지를 설치한 뒤 코치의 지도 아래 스트레칭을 했다. 송일야구장은 학교에 야구장이 없어 임대한 성지고의 훈련장이다.

약 30분간의 스트레칭이 끝난 뒤, 선수들은 직접 배팅 케이지를 설치한 뒤 강도높은 타격훈련에 들어갔다. 3시간이나 방망이를 돌려 얼굴에 땀범벅이 된 뒤 비로서 타격훈련은 끝났다.

같은 시각 투수조는 경기장 구석에서 러닝과 투구 훈련을 병행했다.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성지고 야구부 담당 김택현 교사는 "다소 초라해 보일 수는 있지만, 열정적인 감독님의 지도에 따라 선수들 역시 덩달아 훈련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라며 고된 훈련에도 불만 하나 내비치지 않는 선수들을 대견스럽게 생각했다.

그라운드 한켠에 서서 선수들을 훈련을 지휘하던 성지고 한길세 감독은 잠시도 덕아웃에 앉아 있지 않았다. 큰 목소리로 선수들을 지적하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급기야 직접 방망이를 잡고, 선수들의 개인지도까지 나섰다.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한 학부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한 감독은 열정적이고 꼼꼼했다.

지난 1972년 영등포 청소년 직업학교로 시작해 지난 2001년 도시형 대안학교로 지정된 성지고는 지난해 3월 19일 야구부를 창단했다. 국내 고교야구부로는 65번째 팀이다. 비록 창단 2년밖에 안 된 신생팀이지만, 야구부를 향한 학교의 관심과 애정은 이른바 `야구 명문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40년 이상 교육소외계층을 위한 교육에 힘써왔던 김한태 이사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자신이 한평생 추구해온 ‘맞춤 교육’이라는 키워드를 스포츠 분야에도 접목시킨 그는 지난해 야구부를 창단해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철저한 교육철학만큼 꿈도 커 김 이사장의 희망은 국내 고교야구대회 중 가장 오래된 71년 역사의 ‘청룡기고교야구’ 우승이다.

김 이사장은 "각종 이유 등으로 환경이 제한 돼 야구로 빛나고 싶어도 빛날 기회가 주어지지도 못했던 선수들이 여전히 많다”며 “그들의 절실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이들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라고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청룡기 우승'을 목표로 하는 김 이사장의 바람과 달리 성지고는 냉정하게 말해, 최약체로 꼽힌다. 성지고는 창단 이래 1승에 그치고 있다. 지난 4월 주말리그에서 연장 승부치기를 통해 가까스로 1승을 거뒀던 것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창단 2년째를 맞은 성지고는 반등을 모색하고자 지난 9월1일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무려 21년간 신월중학교 감독으로 재직한 바 있는 한길세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영입한 것. 그는 메이저리그에도 진출한 바 있는 김선우(은퇴), 채병용(SK), 김태완(전 한화) 등 유수의 선수들을 길러낸 지도자로, 중·고교 야구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한 감독은 팀에 부임하자마자, 패배 의식에 젖어 다소 나태한 모습을 보이던 성지고 선수단의 체질개선에 착수했다. 그는 하루 평균 2시간 남짓의 훈련 시간을 최소 6시간 이상으로 대폭 늘렸다. 그 덕분에 선수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한 감독은 “패배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못할 것이 무엇인가. 다른 고교팀들과 동등해질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있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승리보다 패배가 익숙할 정도로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얇은 선수층이다. 점점 나아지고 있는 추세이나 여전히 존재하는 학교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들로 인해 진학과 전학 등의 선수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야구부 총 인원은 26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졸업반인 3학년 선수들은 9명이나 된다. 최근 한 선수가 전학을 왔음에도 사실상 15명 남짓한 인원으로 선수단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한 학년당 30명을 훌쩍 넘기는 수도권 다른 고교팀에 비한다면, 절대적으로 선수단의 규모가 작다.

한 감독은 여전히 성지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진학을 꺼리는 학부모와 선수들의 인식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히려 타 학교들에 비해 장점이 많은 학교가 바로 성지고라는 것이 그의 설명.

  • 성지고 한길세 감독.
‘얇은 선수층’이라는 말에 자세를 고쳐 앉은 한길세 감독은 “현행 입시 규정상 고교 무대에서 최소 30이닝 혹은 40타석을 책임져야 대학 진학에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선수단 규모가 80명이나 되는 학교의 경우, 이 중 절반은 대학 입시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다. 덕아웃에만 머물다 자신의 야구 인생을 끝낼 수는 없지 않는가”라며 “지금도 수많은 보석들이 가공되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다. 그 부분이 정말 아쉽다. 우리 팀은 출전 기회에 있어 분명 이점을 가질 수 있다. 게다가 선수단이 적기에, 1대1 맞춤형 지도가 얼마든지 가능한 팀이 바로 성지고다”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그는 “인성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인성이 안 되면 절대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며 “분기별로 인성 시험도 별도로 치르며 기본적 자격을 갖춘 야구선수를 양성하고자 한다”라고 ‘부정적 인식’을 거둬주기를 거듭 당부했다.

지도자는 물론 선수들 역시 내일의 영광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선수단 모두가 야구로 성공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 감독은 이들에게 다른 길을 보여주고 찾아주는 일 역시 지도자의 사명 중 하나로 꼽았다. 선수단 내 어느 누구도 포기 하지 않고, 공생의 길을 도모하겠다는 것.

한 감독은 “그동안 야구계는 야구로 성공하지 못한 선수들의 진로에 대해 무관심했던 경향이 있었다”며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프로 선수가 될 수 없다고 해도 성공의 길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이미 선수단 내에도 야구 선수가 아닌 다른 진로를 결정한 선수들이 있다. 야구에서 실패를 맛봤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인생이란 진짜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야구 경기에서 '9회말 2아웃'은 경기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뒤지는 팀이라고 해도 아직 승부를 뒤집을 기회, 하나의 아웃카운트가 남아 있는 것이다.

전세를 단 번에 뒤집을 역전 만루포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세대를 관통하는 야구계 격언이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지고가 편견을 뚫고 보란 듯이 고교 야구계에 신선한 ‘역전 만루포’를 때려낼 순간을 기대해 본다.

*스포츠한국은 매주 '스한 위클리'라는 주말 특집기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주요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해드립니다. 이 기사는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한국미디어네트워크에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입력시간 : 2016/10/23 06:00:10
AD

오늘의 핫이슈

AD

테마 갤러리 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