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분명 울리 슈틸리케(62·독일) 감독은 한국대표팀 감독 취임 후 승리를 안겨주고 괜찮은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 칭찬받아 마땅하며 그가 임기 2년 동안 해온 것들은 부정적인 부분보다 긍정적인 것이 더 많다. 오죽하면 ‘갓(GOD)틸리케’라고 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신격화된 슈틸리케에 대해 비판해서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맹신은 이단을 낳을 뿐이며 비판없이는 성장도 없다. 슈틸리케가 이번 9월 A매치를 앞두고 해온 일렬의 결정들은 분명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다소 시끄러운 대표팀을 둘러싼 논란이 어떤 부분이 납득하기 어려웠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언급해본다.

연합뉴스 제공
▶왜 굳이 20인 명단을 꾸렸나

공식적인 대회에서는 23인 명단을 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3명의 골키퍼를 뽑는 것이 규정이며 20명은 필드플레이어로 채워야한다. 더 많게는 안 되지만 적게는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23인을 모두 채워 뽑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20인 명단만으로 이번 9월 A매치에 나섰다. 그 이유를 ‘뽑힌 선수 모두에게 뛸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과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에게 가지는 미안함’이라고 설명했다. 즉 적게 뽑지만 뽑히면 무조건 2경기 중 1경기는 나갈 수 있게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한 나라의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란 소집된 선수를 쓰지 못해 미안함을 갖거나, 꼭 모두에게 출전시간을 보장할 필요가 없는 자리다. 그것은 사적인 감정이다. 만약 소집이 되었는데 뛰지 못한다면 선수는 자신의 부족함을 탓해야한다.

이번 9월 A매치를 앞두고 중국은 아예 23명을 초과하는 25인의 대표팀을 꾸렸다.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경기 당일에서야 23인의 엔트리를 확정할 정도로 마지막까지 경쟁시켰다. 하지만 한국은 ‘뽑히면 경기에 나간다’는 불필요한 확신을 선수에게 심어줬다.

꼭 대표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대표팀에 소집됐다는 것 자체가 선수에게는 영광이며, 그 자체로 경험이 된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굳이 활용하지도 않을 유망주인 최성국과 정조국을 함께 소집해 대표팀 선수들과 훈련을 시킨 바 있다. 어린 선수들에게는 대표급 선수들과 훈련하고 분위기를 익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뛰지 못하더라도 파주 NFC에 다녀간 선수와 안 가본 선수는 경험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현장에서 얘기한다. 대표팀에 선발된지 한참 됐거나 혹은 아예 처음인 선수는 실제로 대표팀이 어떤 곳인지 경험하는 것만으로 이후 리그 경기를 나서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다.

중국전에서 드러났지만 한국은 중국을 좀 더 다양한 루트를 통해 흔들 수 있었다. 장신을 이용한 포스트 플레이, 중거리슛이 좋은 선수를 활용한 원거리 공격, 조금 더 빠른 발을 가진 수비수를 통해 중국의 역습을 저지하는 등이 가능했다.

하지만 20인 명단 안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만약 대기명단에 있는 김신욱, 윤일록과 같은 대표팀 20인 명단에 없는 새로운 유형의 선수가 있었다면 조금 더 다양한 대표팀 활용이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최소한의 명단안에서도 경쟁심을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 어느 감독이든 최대한 많은 선수를 뽑아놓고 그 속에서 다시 옥석을 가리고 싶어 한다. 리그경기에서는 보지 못했던 면을 대표팀 훈련 속에서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굳이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기본 권리인 ‘23인명단 꾸리기’를 포기해야할 이유가 ‘20인명단단 꾸리기’보다 더 당위성이 있었을까.

연합뉴스 제공
▶뽑았다 뺀 석현준, 안 뽑는다했다 뽑은 황의조

애초에 대표팀명단 발표명단에는 석현준(트라브존스포르)도 포함됐었다. 손흥민이 토트넘의 요청에 따라 중국전만 하고 소속팀 복귀를 해야 했기에 20인 명단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석현준을 대신 뽑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리아와의 원정경기 장소가 터키와 가까운 레바논에서 마카오로 바뀌자 슈틸리케 감독은 굳이 석현준 소집을 취소했다. 이유는 ‘석현준이 새로운 소속팀으로 옮겨 적응기간이 필요하고 터키에서 마카오까지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물론 선수를 배려해주는 것은 여태껏 대표팀 감독들에게선 보기 힘든 모습으로 칭찬받을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속팀을 새롭게 옮겼던, 거리가 멀든 대표팀이 부르면 선수는 달려와야 한다. 그것이 5000만 국민 중 가장 축구를 잘한다고 뽑힌 ‘대표선수’의 책무다. 박지성은 결국 잦은 대표팀 호출과 긴 비행거리로 인해 결국 무릎이 문제가 돼 일찍 은퇴해야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대표팀에 부름을 받았던 것에 단 한 번도 불평불만하지 않았다.

그럼 물리적으로 석현준보다 더 멀리에서 날아온 손흥민, 기성용, 이청용 등은 힘들지 않을 것인가. 석현준은 주전이 보장된 상황에서 이적했지만 손흥민은 돌아가면 과연 경기에 얼마나 나올 수 있을지 모를 더 안 좋은 상황이다. ‘소속팀 배려와 물리적 거리’를 언급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한 손흥민이 빠지고 석현준이 소집되지 않으면서 19인 명단으로만 꾸려질 상황이 되자 슈틸리케 감독은 중국전 직후 황의조(성남)를 소집한다고 발표했다. 소집 발표 시기도 너무 늦은데다 굳이 황의조에게 이미 꾸려진 대표팀 중간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황의조는 갑자기 A대표팀에 합류하게돼 곧바로 적응해야하는 힘듦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럴 거면 애초에 황의조를 뽑아서 함께 훈련시켰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사안이었다.

연합뉴스 제공
▶"무실점 기록 깨져 부담감 떨쳐?" 이 무슨 말인가

중국전 직후 열린 공식기자회견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2실점을 한 부분에 대해 “월드컵 예선 무실점 기록이 깨졌으니, 이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내고 앞으로는 승점 3점을 따내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무슨 이상한 말인가. 그동안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이 월드컵 예선을 해나가면서 무실점 기록을 이어온 것에 대해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심지어는 2015년 FIFA 가맹국 중 최소 실점률 기록(20경기 4실점 경기당 0.2실점)을 낸 것에 기뻐했다. 한국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동안 8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로 한국축구사를 새로 쓰기도 했고 이는 슈틸리케 감독도 자랑스러워하는 업적이었다.

그런데 무실점 기록이 정작 깨지니 ‘부담감을 떨쳐 차라리 다행’이라는 논조로 말하는 것은 그저 골을 먹고 나니 자위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는 마치 2010 동아시안컵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에게 패한 후 허정무 당시 감독이 “언젠간 깨질 공한증이 이제 깨진 것 뿐”이라며 차라리 공한증이 깨져 부담을 덜었다는 식으로 말한 것과 다름없는 이상한 논리다.

자랑스러운 역사와 기록이 있다면 최대한 그것을 이어가는 것이 맞다. 그리고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했으면서 그것이 깨지자 별일 아니라는 듯 ‘그건 부담감이고 깨져서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어이없는 말일 수밖에 없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은 그냥 23인 명단으로 뽑고, 솔직하게 2실점을 한 부분에 대해서 아쉽다고 얘기하면 되는 일을 긁어 부스럼으로 만들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