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후반기 시작과 함께 뜨거운 순위 싸움 및 최다 관중을 향한 순항을 예고했던 2016 KBO리그가 승부조작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반기에도 몇몇 선수들의 일탈 행위가 있었지만 이번 승부조작 사건은 정정당당한 경쟁이라는 스포츠의 핵심 가치를 깨고 야구계의 뿌리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스케일 자체부터가 다른 사건이다. 이미 축구, 배구, 농구 등 다른 프로스포츠 역시 승부조작으로 극심한 타격을 입은 바 있으며, 프로야구의 경우 2012년 박현준, 김성현의 가담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져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상태에서 또 한 번 최악의 사건이 터졌다.

4년 뒤 더욱 은밀하고 치밀하게 진행된 승부조작 과정들이 밝혀지면서 이제는 예방 및 재발 방지는 물론 추락한 리그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2012년 승부조작 가담 사실이 드러나 야구계를 충격에 빠뜨린 박현준. 스포츠코리아 제공
▶검은 유혹,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2012년 김성현은 조사 과정에서 대학야구 선수 출신의 브로커와 짜고 두 차례에 걸쳐 1회 의도적인 볼넷을 던지는 방식으로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을 시인했다. 박현준 역시 김성현에 이끌려 브로커와 접촉, 동일한 방법으로 검은 유혹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적발된 문우람의 경우 브로커에게 본인이 먼저 승부조작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으며, 이태양은 일부 승부조작이 실패로 돌아가자 브로커에게 구타 및 협박까지 당한 정황이 밝혀졌다. 조작 방법 역시 단순한 1회 고의4구 외에도 ‘1회 1실점’, ‘4이닝 양팀 합계 6점’ 등 더욱 복잡한 형태로 이뤄졌다.

승부 조작 사건에 브로커가 개입돼 있다는 자체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다만 단순히 아는 지인으로서 개인적 친분을 활용하는 것 뿐 아니라 조직 폭력배가 개입된 경우, 심지어 야구인 출신 등 늘어나는 브로커의 숫자만큼이나 대상 역시 광범위해졌다.

이들은 대부분 젊은 유망주들을 타깃으로 향응 접대를 통해 선수의 환심을 사는 것에서 설계를 시작했으며, 딱한 사정을 언급하며 이른바 “도와달라”는 동정 호소에서부터 “딱 한 번 뿐이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방법이다” “목돈을 쥘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이르기까지 선수의 판단 능력을 흐리는 온갖 방법들을 자행했다.

하지만 첫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브로커들은 이른바 ‘아는 형님’에서 ‘무서운 형님’으로 돌변했고, “승부조작 사실을 공개하겠다”는 협박 등을 통해 한 번 걸려든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선수를 압박했다.

승부조작 실패로 폭행까지 당한 것으로 진술한 이태양과 브로커에게 먼저 승부조작을 제안해 더 큰 충격을 안긴 문우람. 스포츠코리아 제공
▶모두의 노력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

선수의 집안 환경 및 성격까지 상세히 파악한 뒤 브로커의 의도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설계는 점점 치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구단 및 리그 차원에서 이같은 실태를 모두 파악하고 예방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제 아무리 주요 타깃이 젊은 선수라고 하더라도 이들 역시 프로에 입단한 엄연한 성인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교육시킬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통제는 결국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선수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며 손을 놓고 있어서도 곤란하다. 승부조작은 이미 진화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문제 인식과 해결 의지가 멈춰있다면 승부조작 사태는 절대 뿌리를 뽑을 수 없다.

보다 넓게 봐야 할 문제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운동에만 모든 것을 올인하도록 강요해왔고, 공정한 스포츠 정신의 중요성과 윤리 교육을 등한시한 것은 아닌지 사회적인 관점에서우선 문제의 원인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기 교육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미 늦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재출발해야한다는 것이다.

승부조작 혐의에 연루된 선수의 구단 뿐 아니라 KBO, 프로야구선수협의회 등 각종 단체들 역시 사과문과 성명서를 연달아 발표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저마다의 대책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그동안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터졌을 때 몇 차례 본 듯한 낯익은 해결책을 다시 꺼내든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구단 및 단체들이 더 이상 추가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이 마땅치 않은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대안 내놓기가 아닌 ‘진정한 변화’를 가져가기 위한 지속적인 의지를 보이고, 선수 눈높이에 맞춘 좀 더 실용적인 교육을 확립시키는 일이다.

제 아무리 거창한 이름의 시스템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이를 정기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유명무실한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태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닌 이상 반복되는 주입은 결국 선수들에게 잔소리 혹은 귀찮은 일 등으로 느껴질 수 있다.

가령 타 종목의 경우 자정결의대회가 열린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특강이 진행되는 동안 하품을 늘어놓거나 반입한 음식물을 먹고 있는 등 마치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 행사와 동 떨어지는 태도를 보였던 선수가 믿기 힘들겠지만 실제로 있었다.

이는 결국 선수 개인에게 훨씬 더 큰 문제가 있는 일이지만 선수들의 집중도를 불러올 수 없는 특강 등은 사태 예방에 별다른 도움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구단이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나”와 같은 푸념을 늘어놓기에 앞서 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도 신경을 썼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분명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지만 단 하나의 예방책을 내놓더라도 제대로 된 예방책이 훨씬 더 중요하다.

최초로 승부조작 가담을 자진 신고했지만 유창식 역시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구단에 밝혔던 최초의 진술을 번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리그 차원에서도 보다 강력한 제재를 통해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확실하게 일깨우고 승부조작 선수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를 실천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이미 2012년 승부조작 파문 당시에도 걷잡을 수 없을 파장을 우려해 뿌리를 제대로 뽑지 않고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던 것이 사실이다.

KBO는 이번 사태가 벌어진 뒤 “어떠한 고통과 희생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아픈 상처가 더 깊어지고 만연하기 전에 말끔히 소독하고 도려내 프로야구가 더욱 깨끗하고 공정하고 신뢰받는 리그로 거듭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5개 항목에 걸쳐 내놓은 대안을 바탕으로 이번만큼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승부조작 사태가 터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수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미 이태양, 문우람, 유창식의 경우 2012년 승부조작이 터진 당시 프로에 입단한 선수임에도 사태의 중요성을 망각, 또 한 번 모두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본인의 철없는 행동 하나가 주변의 모든 동료들과 선수단, 상대팀, 나아가 리그 전체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졌을 때에도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아끼지 않는 팬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면 언제든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프로의 책임감을 느끼고 또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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