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체육 분야에서 병역특례는 참 난감한 주제다.

선수들이나 국민들 모두 병역특례에 관심을 가지지만 이를 공식석상에서 말하는 것은 터부시된다. 리우올림픽이 임박한 가운데 참으로 ‘홍길동같은’ 병역특례의 역사와 진짜 가치를 짚어본다.

▶병역‘면제’ 아닌, 병역‘특례’

일단 용어정리부터 하고 들어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병역면제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법에 명시된 표현은 병역‘면제’가 아닌 병역‘특례’다.

장현수를 제외한 전원 병역혜택을 노리는 남자축구대표팀. 연합뉴스 제공
4주간 군사훈련을 받으면 민간인이 아닌 예술체육요원으로 분류돼 34개월 동안 해당분야에서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기에 사회인과 다름없지만 일단 ‘신분’은 예술체육요원인 셈이다.

그리고 병역특례는 운동선수들이라 화제가 될 뿐이지 전문연구요원, 예술계 등에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제도다.

▶병역특례의 역사

운동선수의 병역특례 제도가 도입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3년 4월부터로 본다. 당시 정부는 ‘학술·예술 또는 체능의 특기를 가진 자 중 국가이익을 위하여 그 특기의 계발 또는 발휘를 필요로 한다고 인정되어 특기자선발위원회가 선발한 자’를 보충역에 편입시키도록 하며 현역병 징집을 면제시켜줬다. 당시만 해도 선발기준은 현재처럼 명확히 정해져있지 않아 추천제도였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던 1988 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체육특기자에 대해 병역특례가 제대로된 기준을 갖춘다. 당시에는 올림픽, 세계선수권(청소년대회 포함), 유니버시아드, 아시안게임, 아시아 선수권(청소년대회 포함)에서 3위안에만 들면 모두 병역특례가 주어졌다. 지금보다 훨씬 폭이 넓었고, 당시에는 한국체육대학 졸업자 중 상위 10% 성적 우수자에게도 병역특례가 주어진 것이 특이점이었다.

현행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정해진 것은 노태우 정부 때였던 1990년 4월이었다. 이 제도는 잘 지켜져 왔으나 2002 한일월드컵과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좋은 성과가 나자 한시적으로 추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월드컵과 WBC에 대한 규정은 사라지고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지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흥미로운 병역특례의 사례들

아무래도 약 2년간 군입대 시간을 사회에서 보낼 수 있기에 모두의 부러움이 대상이 되고 워낙 군문제는 민감한 사안이기에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일단 가장 흥미로웠던 사례 중 하나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요트 남자 옵티미스트급에서 우승한 박성빈의 당시 나이는 고작 만 14세. 중학교 2학년의 나이에 병역특례를 확정지어버린 것이다.

또한 2012 런던 올림픽 당시의 축구대표팀 김기희도 빠뜨릴 순 없다. 단체종목의 경우 입상을 하더라도 경기에 1초라도 뛴 선수에게만 병역특례가 주어진다. 김기희는 동메달 결정전까지 한 경기도 나오지 못했기에 당시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경기종료를 앞둔 후반 추가시간에 김기희를 투입했고 단 4분만 뛰고 김기희는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었다.

흥미롭지만 개인에게는 참 억울한 사례의 주인공은 은퇴한 농구스타 현주엽이다. 현주엽은 2002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상무 소속으로 아시안게임에 임했고 한국은 중국을 넘어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현주엽은 현역 상무 선수라는 이유로 병역혜택을 받지 못했다. 현주엽의 사례를 없애기 위해 상무 선수들도 혜택이 주어지게 개정됐지만 현주엽 본인은 억울하게도 끝까지 상무에서 복무를 했다.

▶병역특례의 경제적 가치

병역특례는 운동선수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남자축구대표팀 멤버로 출전하는 손흥민의 예를 들어보자.

일반사병들은 2015년 기준으로 이병 월급은 12만9400원(×3개월), 일병은 14만 원(×7개월), 상병은 15만4800원(×7개월), 병장은 17만1400원(×4개월)로 21개월 근무(육군) 시 총 313만7400원을 받는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하지만 손흥민은 현재 EPL의 토트넘 훗스퍼로부터 연봉 312만파운드, 월급 26만파운드를 받는다. 월급이 우리돈 3억9000만원 수준. 이를 21개월로 하면 약 82억원이다. 손흥민이 만약 이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다면 현재 기준으로 봐도 약 81억9700만원 상당의 이득을 보게 된다.

단순히 개인급여에서 차익이 생기는 경제적 가치가 전부가 아니다. 축구의 경우 선수를 사고파는데 이적료가 나오는데 손흥민이 만약 병역특례를 받는다면 이적료의 가치는 더욱 뛸 수밖에 없다.

만약 손흥민이 병역특례를 받고 다시 이적하게 된다면 활약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20대 후반에 다시 한국으로 강제 임대(상주 상무, 안산 경찰청)를 보내야하는 위험성이 사라지기에 가치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

▶병역특례에 대한 찬반여론

리우 올림픽을 통해 병역혜택이 기대되는 선수들은 남자축구대표팀의 장현수(아시안게임 금메달)를 제외한 17명 전원, 유도 대표팀의 곽동한(-90kg급), 김원진(-60kg급), 안바울(-66kg급), 골프 안병훈, 왕정훈, 레슬링 윤준식(-57kg급), 양궁 구본찬, 이승윤 등이다. 아무래도 이미 병역특례를 받고 또 올림픽에 나서는 배드민턴 이용대, 사격 진종오, 수영 박태환 등과는 사정이 다르기에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한 유도대표팀. 유도대표팀에도 대부분의 선수들이 병역특례를 노리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하지만 이같은 병역특례를 둘러싸고도 여전히 찬반여론이 강하다.

운동선수는 직업적 생명이 최대 30대 후반, 적게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데 그 기간 동안 군대를 가야한다는 것은 큰 타격이기에 병역특례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또 예술분야 등에도 국제적 위상을 드높인 이에 대한 병역특례가 있는데 운동 역시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10개를 따더라도 금메달 하나보다 가치가 덜 인정되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물론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남자선수들에게 지나치게 ‘병역혜택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여론도 있다. 또한 특정분야에 대한 혜택으로 인해 일반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역시 빠지지 않고 반대여론에 등장한다.

그러다보니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있을 때마다 남자선수들이 메달에 도전한다고 하면 ‘병역특례’를 떠올릴 수밖에 없고 선수 본인들도 내심 생각은 있어도 정작 공식석상에서는 얘기하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