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잘한다. 그냥 잘한다기보다 메이저리그 내에서도 수준급으로 잘하고 있다.

1일까지(이하 한국시각) 수준급 불펜투수의 척도인 1점대 평균자책점(1.95)을 유지하고 있으며 WAR(대체선수이상의 승수)에서는 0.7로 내셔널리그 전체 불펜 투수 84명 중 4위에 오를 정도다. FIP(수비무관평균자책점) 역시 4위(1.78) 9이닝당 탈삼진율 11위(12.04), 최다이닝 6위(27.2이닝), 출전 경기수 4위(26경기), 삼진수 2위(37개) 등 불펜투수가 기록할 수 있는 대부분의 지표에서 최상위권을 내달리고 있다.

오승환이 잘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로 여겨지는 메이저리그에서조차 이 정도로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왜 오승환은 이리도 메이저리그에서 잘하고 있는 것일까. 5가지 이유를 꼽아봤다.

오승환의 다소 특이한 투구동작. ⓒAFPBBNews = News1
1.이중 동작? 특이한 투구 동작이 부른 생소함

오승환이 다소 특이한 투구동작은 한국에서부터 유명했다. 오승환은 공을 던지기 직전 발을 내딛을 때 왼발이 착지 직전 한 번 멈추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오승환의 왼발이 착지하는 듯 하다가 발을 조금 더 뻗어 착지한 뒤 공을 던지는 것. 이 때문에 타자들이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

이 투구동작은 한국에서도 간혹 문제가 됐다가 2014년 일본 진출 당시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일본야구에서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큰 문제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올해 미국 진출 후 스프링캠프에서 오승환의 이중 동작에 미국 중계진은 특별히 발 부분만 클로즈업해서 찍을 정도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투구 이중 동작으로 인해 오승환은 상대의 타이밍을 완전히 뺏고 있다. 신인 타자보다 신인 투수가 좀 더 적응하는데 유리한 야구의 특성상 오승환은 분명 ‘생소함’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초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2. 한국-일본보다 딱딱한 마운드, 오승환에 제격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덮고 있는 흙은 한국과 일본보다 딱딱하다. 오승환은 그동안 다소 물렁한 마운드 위에서 던져왔다. 늘 아시아 투수가 메이저리그에 가면 공인구와 마운드 문제가 불거지는데 오승환이 뛰었던 일본의 마운드는 부드러워 내딛는 발의 충격을 흡수해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미국은 마운드가 단단해 일본에서처럼 던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오승환은 미국식 마운드를 더 만족해했다. 올 시즌 스프링캠프에서 “내게는 미국 마운드가 더 좋다. 한국이나 일본에선 경기 후반 나가면 마운드 상태가 안 좋은 경우가 많았다. 앞에 투수들이 한 창 던지고 난 후 마운드에 올랐기 때문에 마운드가 많이 파여 있곤 했다”며 다소 무른 마운드가 불펜투수로서는 힘들었음을 언급했다.

그는 “매일매일 다른 마운드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메이저리그 마운드는 앞에서 투수들이 많이 던져도 상태가 그대로 유지가 된다. 뒤에 나오는 투수로서 메이저리그 마운드가 더 편하다”고 설명했다.

투수는 예민하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기도 한다. 투수가 활동하는 공간인 마운드가 편안하다보니 더 좋은 기량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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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도박파문 후 자숙의 괌 전훈, 도리어 득 됐다

지난 겨울 오승환은 도박파문으로 인해 제대로 한국에서 쉴 수도 없었다. 공식석상에 얼굴을 내비치는 것은 불가능했고 당연히 방송 활동 등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 자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오승환이 택한 것은 괌 전지훈련이었다. 일본에서 시즌이 끝나자마자 약간의 휴식만 취한 후 곧바로 괌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오승환은 대외노출을 피한채 오로지 훈련에만 몰입했다. 세인트루이스와의 계약을 위해 1월 중순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오승환의 얼굴은 상당히 검게 그을려있었다. 그전까지 그가 그 정도로 얼굴이 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만큼 오승환은 괌의 햇살아래서 동계훈련에만 전념했던 것이다.

‘야구에서 성적은 겨울에 어떻게 하는지로 결판난다’는 말이 있다. 오승환은 의도치 않은 자숙 덕분에 동계훈련에만 매진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는 메이저리그 적응에는 득이 됐다.

4.살아난 돌직구, 메이저리그도 놀란 회전수

자연스레 동계훈련이 착실히 잘되다보니 오승환의 주무기인 ‘돌직구’도 전성기 모습을 되찾았다. 오승환은 일본에서 다소 혹사를 당하며 패스트볼 구위가 많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찰나였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진출 후 돌직구는 더 꿈틀거렸고 ‘두 번 살아 움직인다’는 표현이 걸맞은 모습을 되찾았다.

오승환은 아롤디스 채프먼처럼 100마일을 매번 던지는 선수는 아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3마일. 오승환의 평균구속은 92.3마일이다. 오히려 평균보다 떨어진다.

그럼에도 패스트볼이 위협적인 것은 바로 엄청난 회전수를 기록하며 건드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오승환의 분당 회전수는 메이저리그 평균보다 100회는 더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평균 2240여회, 오승환 2330여회). 자연스레 패스트볼은 건드려도 범타 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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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전성기로 평가 받는 변화구, 몰리나와 조합 의한 코스 공략 주효

오승환은 현재 패스트볼 64%, 슬라이더 26%, 체인지업 10%정도를 섞어 던지는 유형을 가져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패스트볼-슬라이더 투피치 투수였지만 일본 진출 후 체인지업까지 장착해 떨어지는 공을 장착했다.

빠른공-휘는공(슬라이더)-떨어지는공(체인지업)이 갖춰지고 동계훈련을 통해 이 공들이 더욱 가다듬어졌다. 최근 한 방송에서 메이저리거 출신의 최희섭은 “오승환의 제구력이 왜 이렇게 좋아졌나”라며 놀라움을 표시한 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은 특히 더 좋아진 것 같다. 원래 직구가 좋은 투수가 슬라이더에 체인지업까지 떨어지니 메이저리그 타자도 감당키 힘들 수밖에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게다가 오승환의 공을 받는 포수는 현존 세계 최고라는 야디어 몰리나다. 몰리나가 공을 잡을 때와 안 잡을 때의 팀 승률 자체가 확연히 다를 정도로 몰리나가 볼을 잡는 것만으로 투수의 능력이 달라진다. 세계 최고의 포수와 함께하다보니 오승환은 구석 구석 코스 공략이 더 주효되고 있고 특히 슬라이더는 피안타율이 6푼9리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먹히고 있다.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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