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BBNews = News1
[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지난달 29일(이하 한국시각) 이탈리아 밀라노 산 시로 스타디움.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레알 마드리드)의 킥이 골망을 세차게 흔들자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레알 마드리드의 통산 11번째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대미를 장식한 호날두는 유니폼을 벗어 던졌고, 다른 선수들 역시 두 손을 번쩍 들며 ‘유럽 최강의 팀’으로 우뚝 선 것을 자축했다. 그리고 이내 선수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뛰어갔다. 선수들의 헹가래로 높이 솟아 오른 주인공은 팀을 우승으로 이끈 사령탑 지네딘 지단(44)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트사커’의 창시자

지단은 한 시대를 풍미한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였다.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도 세 번이나 받았다. 화려한 드리블과 볼 컨트롤,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스 등으로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그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1998년 자국에서 열린 프랑스 월드컵이었다. 지단이 중심이 된 프랑스는 승승장구하며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백미는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대회 결승전이었다.

ⓒAFPBBNews = News1
지단은 전반전에만 2골을 터뜨리며 프랑스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2년 뒤인 2000년에는 UEFA 유럽선수권대회까지 제패했다. 그는 ‘레 블뢰 군단’ 프랑스 축구의 상징적인 인물로 우뚝 섰다.

동시에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이기도 했다. 2001년 그는 세계 최고 이적료인 7500만 유로(당시 약 840억원)로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었다. 이적 첫 시즌 그는 바이어 레버쿠젠(독일)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우승의 주역이 됐다. 이듬해에는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우승까지 이끌었다.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이 모인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그는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끝으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현역 마지막 경기였던 이탈리아와의 대회 결승전에서는 상대 선수(마르코 마테라치)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는 파울로 퇴장을 당하면서 다시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축구화 벗은 지단, 지휘봉을 잡다

은퇴한 뒤에도 그는 레알 마드리드와 인연을 놓지 않았다. 기술고문, 단장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그리고 2013년 카를로 안첼로티(57)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 역할을 맡아 현장으로 복귀했다. 당시 지단은 후배들에게 다양한 경험들을 전수하며 선수단 기강 관리에 힘썼고, 덕분에 레알 마드리드는 2013~2014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섰다. 지단이 선수에 이어 코치로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시즌이기도 했다.

ⓒAFPBBNews = News1
이듬해 그는 구단 산하 2군 팀인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지휘봉을 잡으며 본격적으로 감독의 길을 걸었다. 부임 초반에는 적지 않은 부침을 겪었다. 무자격 논란 속에 뒤늦게 UEFA 프로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고, 팀의 2부리그 승격도 일궈내지 못했다.

그러나 2015~2016시즌, 그는 지도자로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10승7무2패의 성적을 거두며 팀의 3부리그 2조 2위 등극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6년 1월, 라파 베니테스(56) 감독이 경질되고 그는 레알 마드리드 지휘봉을 잡았다.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짧은 3부리그 팀 감독 경력이 전부인 그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부호가 잇따랐다. 더구나 레알 마드리드는 당장의 성과가 필요한 팀이었다. 일각에서는 곧 한계를 드러내고 선수 시절의 명예마저 흔들릴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의문부호 지운 리더십, 5개월 만에 유럽 정상 ‘우뚝’

그러나 지단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리더십이었다. 팀에는 스타급 플레이어가 즐비했지만, 선수 시절 세계와 유럽을 호령했던 그의 존재감은 팀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호날두를 비롯해 세계적인 선수들이 지단을 향해 “존경한다”고 입을 모았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AFPBBNews = News1
선수기용이나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찬사가 이어졌다. 중용을 받지 못하던 카세미루(24)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역삼각형 중원으로 수비적인 불안을 해소했고, 호날두와 카림 벤제마(29) 가레스 베일(27) 등 공격진의 화력까지 극대화시키며 팀의 전력을 빠르게 정상화시켰다.

탄탄했던 전력에 지단의 리더십, 그리고 그만의 전술적인 색채가 더해지자 레알 마드리드의 고공비행이 펼쳐졌다. 결과적으로 리그 우승은 놓쳤지만 한때 10점 이상 벌어졌던 바르셀로나와의 격차는 1점까지 좁히는데 성공하는 저력도 선보였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유럽 최강의 팀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지단 감독은 팀의 우승을 이끌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레알 마드리드 부임 5개월여 만에 일궈낸 대업적이었다.

우승이 확정된 직후 지단은 “선수 시절 때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기분이다. 부임 이후 팀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덕분에 우리는 훌륭한 일을 해냈다. 레알 마드리드는 내 인생 최고의 팀”이라며 벅찬 소감을 전했다. 선수와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서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는 순간, 또 다른 ‘지단시대’의 서막도 함께 올라갔다.

ⓒAFPBBNews = News1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