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경기의 일부일 뿐, 사과는 없다."

지난 1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텍사스 주 알링턴의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서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 경기에서 역대급 벤치클리어링이 나왔다. 토론토의 호세 바티스타는 6-7로 뒤지고 있던 8회, 몸에 맞는 볼로 출루했다. 그리고 바티스타는 후속타자의 내야땅볼이 병살타로 연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 2루로 달려갔다.

상대 수비수 오도어가 1루로 송구했다. 하지만 바티스타의 태클이 깊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신경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오도어는 강렬한 라이트 훅을 바티스타에게 먹였다. 종합격투기나 복싱에서나 나올 법한 완벽한 펀치였다. 이후 상황은 다들 예상할 수 있다. 양 팀 벤치에서 선수들이 모두 뛰어나왔고, 속된 말로 '패싸움'이 벌어졌다.

선수와 코치 포함, 모두 8명이 퇴장을 당한 대대적인 싸움판이었다. 경기 후, 오도어는 벤치클리어링 세계에서 인상깊게 남을 "경기의 일부일 뿐, 사과는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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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져 있던 야구의 또다른 얼굴…'벤치클리어링'

벤치클리어링((Bench-Clearing)은 말 그대로 양 팀 선수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 모두가 나가서 싸우기 때문에 '벤치가 깨끗해진다'는 말에서 나온 용어다. 싸우는 경우도 많지만 일반적으로는 말리기 위해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야구나 아이스하키 같은 경기에서 벤치클리어링이 자주 등장한다. 아이스하키는 아예 싸우는 것을 구경할 정도다.

하지만 사건과 관련된 두 선수만 다투는 것이 아니다. 관례적으로 양 팀의 선수 전원이 그라운드로 뛰쳐 나간다. 심지어 벤치에 남아 있으면 벌금을 주는 팀도 있다. 동료가 당하는 것을 막고, 단단한 팀워크를 보여주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이 바로 벤치 클리어링이다.

보통 야구에서는 몸에 맞는 볼, 즉 사구로 갈등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빈볼 시비가 붙거나 판정에 대한 불만, 상대를 향한 조롱이나 과한 세리머니가 나오는 경우에도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혹자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한 스포츠에서 싸움은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이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일반인에 비해 덩치가 훨씬 커다란 선수들이 주먹을 뻗어가며 몸의 대화를 하는 장면은 팬들 입장에서도 흥미롭다.

마찬가지로 벤치클리어링 자체를 야구의 일부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그 강도는 조금씩 다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달려들고 주먹을 내지르는 경우가 많다. 팀도 많고 선수도 많고 땅덩어리도 크다보니 안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문화 자체도 '우리'가 아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물론 사과도 일절 없다. 위에서 언급한 오도어의 반응처럼 단호하다.

게다가 한 경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즌이 끝나고 다음 해가 되어 만나도 사이가 좋지 못한 경우도 많다. 보복을 위해 일부러 사구를 던지는 경우도 있다. 받은 만큼 확실히 돌려주고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자존심이 강하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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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는 헐크, KBO리그는 호세가 있었다…'헤이, 영수'

하지만 KBO리그는 조금 다르다. 대부분 학교 선후배 사이로 연결된 지인 관계다보니 수위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막상 다투는 것은 당사자다. 그 외의 사람들은 말리기에 바쁘다. 그리고 다음 날에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하고 오해를 푸는 경우가 많다. 손 잡고 화해의 사진도 찍고, 함께 웃으며 동업자 정신을 이야기한다. KBO리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벤치클리어링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설픈 벤치클리어링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KBO리그에서도 화끈한 벤치클리어링은 수없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검은 갈매기'로 불리던 사고뭉치 호세와 삼성 배영수의 벤치클리어링이다.

지난 2001년 9월 18일 마산에서 열린 롯데와 삼성의 맞대결에서 배영수는 호세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위협적인 공으로 판단했던 호세였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 들어선 얀의 허리에 배영수가 다시 공을 맞추고 말았다. 1루에 있던 호세가 격분해서 배영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대로 배영수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팔을 뱅뱅 돌려 주먹을 뻗었고, 제대로 맞았다. 한 방이면 부족함이 없었다. 배영수는 쓰러졌다. 양 팀 선수들이 모두 벤치에서 나왔고 곧바로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다. 호세는 이후, 잔여경기 출전 정지 및 벌금 3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아직도 많은 국내 팬들에게 벤치클리어링을 떠올리면 호세와 배영수가 생각날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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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잠실 라이벌'이 아니다…두산 안경현과 LG 봉중근의 레슬링 한 판

국내에서 대표적인 라이벌 팀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잠실구장을 함께 쓰고 있는 두산과 LG다. 양 팀이 라이벌 관계는 KBO리그에서도 알아주는 사이다. 다른 팀은 몰라도 LG나 두산에게 지면 안된다는 것이 선수들, 그리고 코칭스태프와 감독의 마음 속에 담겨 있다.

그만큼 경기가 치열해지면 자연스럽게 감정적으로 다툼이 일어나고 벤치클리어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사건이 있다. 바로 두산에서 뛰었던 안경현(현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과 LG 봉중근의 다툼이다.

아직도 회자가 되는 벤치클리어링이다. 지난 2007년 5월 4일, 잠실에서 열린 LG와 두산의 경기였다. 두산이 4-0으로 앞서고 있던 5회 1사 1루에서 봉중근의 공이 그대로 타자 안경현의 헬멧 위를 맞고 날아갔다. 자칫 잘못하면 안면에 공이 맞을 수 있는 위험한 공이었다.

사구의 위험을 인지, 안경현은 곧바로 방망이를 집어 던지고 봉중근에게 달려갔다. 안경현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봉중근은 없었다. 오히려 고개를 숙이면서 주먹을 피하고 곧바로 안경현을 유도하듯 들쳐서 메고 넘겨버렸다. 양 팀 선수들이 우르르 그라운드 위로 쏟아져 나왔고 곧바로 벤치클리어링으로 연결됐다. 물론 두 선수는 퇴장 조치를 받았다.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나온 두산과 LG의 라이벌전, 말 그대로 역대급 KBO리그 벤치클리어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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