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조에서 승리조 승격 가능성을 날린 실점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드디어 실점했다.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이 깨진 것이다. 언젠가 실점하는 것은 정해져 있던 일이다. 언제까지 0의 행진을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 그러나 이번 실점은 타이밍이 참 얄궂다 .

오승환은 21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세인트루이스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와의 홈경기에 팀이 4-1로 앞서던 8회 등판해 1이닝 동안 2피안타 1볼넷 2실점을 내줬다. 미국 진출 후 첫 실점으로 8경기 만에 깨진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이었다.

이날 분명 오승환은 운도 없었다. 첫 타자 덱스터 파울러의 1루 땅볼때 1루수 맷 아담스가 조금만 더 정확히 잡아줬더라면 아웃이 될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 실점 때도 2루수 콜튼 웡이 병살 플레이도 노려볼 만 했지만 그 정도 수비능력을 바라기에는 무리였다.

ⓒAFPBBNews = News1
다소 운도 부족했지만 결론은 오승환이 못 던졌기 때문이다. 특히 팀이 4-1로 앞서던 상황에서 나와 4-3까지 따라붙게 했던 것은 팀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분업화된 현대 불펜에서는 투수 하나하나마다 역할이 정해져있다. 선발에 이상이 생겼을때 바로 투입되는 롱릴리프(스윙맨),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해 팀이 점수를 낼 때까지 버티는 롱릴리프(패전처리), 간발의 승부에서 점수를 내주지 않고 따라붙어야할 때 쓰이는 숏릴리프(추격조),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상황을 굳히는 승리조, 8회만 전담하는 셋업맨, 9회 경기를 끝내는 마무리, 상대 핵심 좌타자만 상대하는 좌완 스페셜리스트 등 다양한 역할이 있다.

이날 경기를 통해 오승환을 개막 후 총 8경기에 등판했다. 지난 7번의 등판 기록을 꼼꼼이 살펴보면 왜 이날의 등판이 특히 뼈아프고 오승환의 팀내 역할을 알 수 있다.

4일 : 0-3 지던 7회 등판(1이닝 무실점, 팀 1-4패)
6일 : 5-5 비기던 6회 등판(1이닝 무실점, 팀 5-6패)
9일 : 4-4 비기던 7회 등판(0.2이닝 무실점, 팀 7-4승)
11일 : 5-6 지던 7회 등판 (1이닝 무실점, 팀 12-7승)
14일 : 3-4 지던 7회 등판 (1이닝 무실점, 팀 4-6패)
17일 : 5-8 지던 7회 등판 (2이닝 무실점, 팀 8-9패)
20일 : 1-2 지던 6회 등판 (1이닝 무실점, 팀 1-2패)

위의 등판 상황을 보면 오승환이 현재 ‘추격조’를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추격조라는 것이 좋게 말할 때의 얘기고, 부정적 시선으로 보면 ‘패전처리조’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팀마다 그 쓰임새를 함께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오승환의 등판상황을 보면 대부분 팀이 간발의 차이로 뒤져있거나, 혹은 동점 상황에 6회나 7회에 올라가 팀이 막판 점수를 낼 때까지 버티는 ‘추격조’ 역할을 맡고 있음이 드러난다.

불펜 투수의 꽃은 ‘마무리’다. 마무리(트레버 로젠탈)를 가기 위해서는 일단 셋업맨(조나단 브록스턴)을 거쳐야한다. 셋업맨 전에는 승리조(케빈 시그리스트)가 있다. 아직 오승환은 추격조로 마무리까지 가기 위해 세단계가 남아있던 상황이다.

세인트루이스의 마이크 매서니 감독. ⓒAFPBBNews = News1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세인트루이스의 마이크 매서니 감독은 굳이 연투(20일 등판)까지 해야 하는 오승환을 올리며 기회를 줬다. 바로 팀이 4-1로 앞서던 8회 등판을 지시한 것. 일반적으로 셋업맨이 맡아야하는 팀의 리드상황 8회 등판에 오승환을 내보낸 것이다.

그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오승환은 ‘추격조’임에도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을 내달리고 있었고, 반면 셋업맨인 브록스턴은 전날(20일)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을 하긴 했지만 볼넷 2개를 내줬다. 또한 17일 등판 때도 피홈런을 기록하며 실점을 한 전력이 있기에 이참에 오승환을 셋업맨 후보로 실험해 본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미 세인트루이스는 오승환이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마무리로 활약했던 것을 알기에 셋업맨 정도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추격조로만 있다가 드디어 잡은 승리조, 혹은 셋업맨 기회였다. 그러나 이 기회가 오자 오승환은 거짓말 같이 2실점을 하고 말았다. 비약해서 말하면 모의고사는 잘 쳤지만 수능에서 망친 느낌이랄까.

물론 겨우 이정도 기회를 날린 것을 가지고 세인트루이스에서 ‘오승환은 안되겠다’고 성급히 판단을 내릴 리는 없다. 어차피 세인트루이스도 오승환이 언젠가는 실점할 것임을 알고 있었고 하필 운이 나쁘게 오늘이 하필 그날이었던 것뿐이다. 만약 오승환의 실점 이후 팀이 패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어차피 결과도 5-3승리로 끝나지 않았던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부여받을지 모르지만 일단 오승환은 추격조로서 좀 더 활약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좋은 행보를 인정받아 승리조로도 뛸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어찌됐든 21일 경기처럼 셋업맨 정도의 기회가 왔을 때 다시는 그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는 것이 필요한 오승환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마무리였던 오승환. 스포츠코리아, 연합뉴스 제공
*스탯볼은 기록(Statistic)의 준말인 스탯(Stat)과 볼(Ball)의 합성어로 '이재호의 스탯볼'은 경기를 통해 드러난 각종 기록을 분석한 칼럼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