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격투 종목에서 헤비급은 그 종목의 ‘꽃’이다. 결국 가장 무게가 나가는 선수끼리 붙어 최고인 선수가 그 종목의 ‘왕’이기 때문.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종합격투기 헤비급에서 동양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종의 특성은 물론 타고난 신체의 한계 등이 있기에 그 어떤 동양인도 헤비급에서 이름을 알리기 힘든 현실때문이다.

그나마 동양인으로서 헤비급에 기대를 걸만한 선수가 나왔다. 아직 유명세는 부족하고 화제를 끄는 언행을 보이진 않지만 격투기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세계무대 헤비급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선수’로 여겨지는 명현만(31)이 그 주인공.

190cm, 120kg의 거구인 그였지만 인터뷰 내내 조용히, 신중하게 말 한마디 한마디를 정돈하는 모습은 링위에서 20초도 안돼 상대를 KO시킬 때와는 반전 모습이었다. 맞상대가 될 수도 있는 최홍만에 대한 견해, 위험한 스포츠인 격투기를 계속 하는 이유, 그리고 무엇이 격투기를 하게 만드는지 등등 솔직한 고백들을 들었다.

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마이티 모와의 대결, 결국 1라운드에 끝날 타이밍 싸움

명현만은 오는 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로드FC 030 마이티 모와의 무제한급(헤비급) 4강전을 앞두고 있다. 마이티 모는 45세의 나이에도 ‘부산 중전차’라고 불리는 ‘한국 격투기 1세대의 자존심’ 최무배를 1라운드 37초 만에 KO시켰다.

“사실 제가 유명세, 실력 모든 면에서 마이티 모에게 부족한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전 이제 올라가고 있고 마이티 모는 하향세를 겪고 있죠. 제 시대를 맞기 위해 이번 경기는 저의 격투기 커리어에서도 전환점이자 가장 중요한 한판이 될겁니다.”

명현만은 지난해 12월 중국 상해에서 열린 무제한급 8강에서 중국 신예 리앙링위를 13초 만에 KO시켰다. 로드FC 데뷔전에서는 35초 만에 KO승을 거둘 정도로 실력이 압도적이다. 킥복싱에서 종합격투기 전향 후 더 승승장구 하고 있다.

“결국 마이티 모와의 승부는 제가 빈틈을 잡아 공략하느냐의 싸움이 될 겁니다. 마이티 모는 저를 1라운드 안에 KO시키려 하겠죠. 같이 싸우는 건 현명하지 못해요. 타이밍을 볼 겁니다. 그 타이밍은 1라운드 안에 분명 2번 정도 올 겁니다. 그 타이밍을 잡아 펀치가 먹힌다면 이길 수 있어요. 그러나 그 타이밍을 못 잡으면 누워있는건 제가 되겠죠. 결국 펀치로 1라운드 안에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가 누워있을지는 보면 알겠죠.”

▶결승에서 만날 수도 있는 최홍만 선배에 대하여

만약 마이티 모전을 이기면 반대쪽 4강에서 아오르꺼러vs최홍만의 승자와 무제한급 챔피언을 놓고 다툰다. 몽골 씨름이 특기인 아오르꺼러는 21세의 나이에 독특한 언행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고 최홍만은 설명이 필요 없는 선수다. 누가 결승에 올라왔으면 좋겠냐는 난감한 질문에 명현만은 정말 ‘솔직히’라고 강조하면 대답했다.

“진짜 속마음은 아오르꺼러가 올라오면 좋겠어요. 전 그 누구보다 격투기 마니아입니다. 시작은 격투기를 좋아해서 선수까지 된 거죠. 최홍만 선배가 전성기를 맞던 당시 저 역시 팬으로 좋아했고 목표로 삼아 운동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모두들 아시잖아요. 최홍만 경기가 있는 시간에는 거리에 교통량이 줄 정도였으니까요. 동양인으로서 헤비급에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 최홍만 선배입니다. 비록 친분은 깊지 않지만 존경심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런 선배와 맞서고 싶지 않아요.”

왼쪽부터 최홍만, 임소희, 명현만. 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한국인으로서 헤비급에서 세계무대 정상에 가장 근접했던 최홍만은 이제 경쟁상대다. 명현만은 자신 역시 최홍만,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꿈을 내비쳤다.

“제가 최홍만 선배의 바통을 이어받아 선배의 업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동양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웠던 감동의 드라마를 제가 만들고 싶은 거죠. 세계에서 챔피언까지는 아니라도 후에 ‘아시아 헤비급에도 이렇게 강한 선수가 있었다’는 걸 각인시키고 싶어요. 결국 현재 소속돼있는 로드FC가 같이 발전해야만 가능한 얘기겠죠.”

▶명경기를 만들고 싶은 열망… 격투기 선수의 숙명

원초적인 질문을 했다. 왜 격투기를 계속 하냐고. 체육관도 운영 중이니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지 않냐고. 굳이 위험한 이 격투기를 계속하고 힘든 훈련을 이겨내야 하냐고.

“전 쇼맨십도 부족하고 유명세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내성적이라 누가 알아보는건 부담스러워요. 격투기를 하는 건 제 스스로 격투기 마니아로서 ‘명경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입니다. 왜 '효도르vs크로캅'과 같은 일명 ‘레전드 매치’가 있잖아요. 남자로서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명경기에 제가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승패를 떠나 격투기 팬들이라면 세월이 흘러도 회자하는 경기를 꼭 해볼 겁니다.”

물론 쉽지 않다. 명현만은 격투기 훈련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설명해달라고 하자 “사업적으로 하는 체육관 운영도 힘들지만 ‘훈련보다는 쉽잖아’라고 생각하면 안정될 정도”라며 훈련 과정의 힘듦을 얘기했다.

“훈련을 하다보면 한계점이 느껴져요. 그 한계점을 넘어서는 고통이 상당히 크죠. 보이지 않는 뭔가를 잡고 운동을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것을 놓고 싶은 마음이 커져요.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으면서도 스스로의 한계점을 깨려고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든 엄청난 고통과 힘듦을 수반합니다. 원초적인 두려움도 있죠. 경기 중에 정신을 잃을까봐. 그리고 정신을 잃는 것보다 더 두려운건 정신을 차렸을 때 ‘졌다’는 현실이 주는 두려움도 있죠. 결국 그것들을 이겨내야만 하는게 몸 하나로 부딪치는 격투기 선수의 숙명이죠.”

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로드FC 030 중국 북경 일정과 대진

대회 일시 : 4월 16일 오후 7시(한국시각)

장소 : 중국 북경공인체육관

대진 : [2부]
[무제한급 토너먼트 아오르꺼러 VS 최홍만][스트로우급 얜 시아오난 VS 임소희]
[무제한급 토너먼트 마이티 모 VS 명현만]
[밴텀급 알라텡헬리 VS 사사키 후미야]
[페더급 허난난 VS 알렉세이 폴푸드니코브]

[1부]
[라이트급 알버트 챙 VS 이시하라 유키]
[페더급 양 쥔카이 VS 오두석]
[밴텀급 정 샤오량 VS 장익환]
[페더급 샹 리안 루 VS 김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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