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1996년 4월 6일.

경기장 외야 펜스가 담쟁이 넝쿨로 뒤덮여 있어 유명한 시카코 컵스의 홈구장 리글리 필드에는 굉장히 생소했던 피부색과 생김새를 가진 동양인 청년이 마운드에 올랐다.

LA다저스의 선발투수로 나온 에이스 라몬 마르티네즈(페드로 마르티네즈의 형)가 1회를 마치고 햄스트링 부상을 호소하자 감독은 지체 없이 동양인 투수에게 급하게 등판을 지시했다.

몸도 덜 풀렸음에도 허겁지겁 마운드에 오른 이 동양인 투수는 152km가 넘는 강속구를 뻥뻥 포수 미트에 꽂으며 4이닝 동안 85개의 공을 던지며 탈삼진 7개를 잡아내는 위력적인 투구로 무실점으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마침 팀은 3회와 4회, 한 점씩 뽑아 3-1 승리를 거뒀고 자연스레 이 동양인 투수는 승리투수가 됐다. 바로 박찬호(43·은퇴)의 메이저리그 첫 승이자 한국인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긴 첫 번째 발자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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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의 마이너 생활, ‘메이저리거’로 거듭나다

한양대 재학 중이던 박찬호는 1994년 아마추어 신분으로 LA다저스와 계약하며 곧바로 메이저리그에서 뛰게 된다. 1994년 4월 8일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의 홈경기에 9회 구원등판하면서 박찬호는 한국인이 메이저리그 무대에 선 첫 경험을 선사한다. 당시 아마추어에서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역대 17번째 진기록을 만들어냈지만 아직 박찬호는 무늬만 프로였다.

데뷔전 1이닝 2실점의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박찬호는 더블A로 강등되며 약 2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친다. 그곳에서 박찬호는 생경한 미국 문화, 소수인종이었던 동양인으로서의 서러움 등을 체험하고 이겨내며 메이저리그 선수로 거듭났다.

그리고 1996년 4월 6일 시카고 컵스전에 4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치며 첫 승리까지 올려 부인할 수 없는 진짜 ‘메이저리거’가 됐다. 이날 경기 전까지 박찬호는 2년여간 아주 가끔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총 6경기를 던졌지만 한경기도 실점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승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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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승에서 아시아 최다승 투수가 되기까지

그렇게 생애 첫 승이자 한국인의 메이저리거 첫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 박찬호는 바로 다음 등판에서는 선발로 나서 5이닝 무실점 호투로 첫 선발승까지 따낸다. 1996시즌은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메이저리그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낸 박찬호는 1997년부터 진정한 풀타임 선발투수로 자리 매김하며 한 시즌 18승(2000년), 탈삼진 NL 2위(2000년, 217개), 평균자책점 NL 4위(2000년, 3.26), 올스타 선정(2001년)과 같은 위대한 기록을 남겼다.

2002시즌을 앞두고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무려 5년 6,500만달러의 초대형 계약까지 따낸다. 무려 11년 후인 2013시즌 류현진(LA 다저스)이 6년 3,600만달러, 13년 후인 2015시즌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가 4년 1,100만달러, 14년 후인 2016시즌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가 4년 1,200만달러,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 2년 700만달러의 계약을 따낸 것을 감안하면 당시 박찬호가 얼마나 대단한 계약을 했는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박찬호는 텍사스에서의 부진한 시즌을 넘어 2008년 친정팀 LA다저스에서 부활에 성공했고 2009년에는 꿈에 그리던 월드시리즈 무대까지 밟게 된다. 2010시즌에는 세계 최고의 명문구단 뉴욕 양키스까지 입단했고 그해 트레이드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는 통산 124승을 거두며 노모 히데오가 가지고 있던 아시아 통산 최다승(123승)을 넘어섰다. 박찬호는 여전히 아시아 통산 최다승 선수로 남아있다.

박찬호의 전성기시절 역동적인 투구폼. ⓒAFPBBNews = News1
▶박찬호의 첫 승 후 20년…한국인 메이저리거 8명 시대 열려

박찬호가 첫 승을 거둔 1996년 이후 한국에서는 수많은 고교 유망주들이 '박찬호 붐'을 타고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렸다. 많은 선수들이 실패의 쓴잔을 들이켰지만 몇몇 선수들은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김병현은 한국 선수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기도 했고, 김선우는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 필드에서 완봉승을 올리기도 했다. 최희섭은 한국인 타자로서 처음으로 데뷔해 3연타석 홈런 등을 때려내기도 했다.

추신수는 2014시즌을 앞두고 7년 1억 3,000만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따내며 당시까지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액 계약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류현진은 2013년 데뷔 첫해 신인왕 투표 4위까지 올랐고, 강정호는 2015년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첫 번째 타자로서 신인왕 투표 3위까지 오른다.

올해는 박병호, 김현수, 오승환, 이대호는 물론 마이너리그에서 7년간 고생한 최지만까지 메이저리그행을 확정지었다. 올 시즌에는 무려 8명의 한국 선수가 동시에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이전까지 가장 많은 한국 선수들이 뛰었던 것은 지난 2005년으로 당시 박찬호, 김병현, 김선우, 서재응, 최희섭, 구대성, 추신수까지 총 7명이 뛰었다.

오늘 4월 6일은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첫 승을 거두며 진정한 메이저리거로 거듭 난 지 딱 20년이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 사람들에게 메이저리그란 아예 무지한 미지의 세계였거나 혹은 손 닳을 수 없이 높게만 느껴졌던 엘도라도였다.

하지만 박찬호는 20년전 첫 승리를 통해 한국인에겐 절대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빅리그의 간극을 좁혀줬다. 그 좁혀진 간극을 통해 또 다른 한국 선수들은 다리를 놓고 가끔씩은 스스로 황금을 만지기도 하며 20년 사이 메이저리그는 한국 선수들에게 더 이상 엘도라도가 아닌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의 장’이 됐다.

인식이 바뀌고 메이저리그는 이제 한국 사람들의 또 다른 여가가 되며 많은 것들이 잊혔지만 20년전 동양인은 물론 ‘코리아’라는 나라 자체가 생소했던 메이저리그에서 23살의 청년 박찬호가 일궈낸 첫 승리는 20년 후 한국인 메이저리거 8명이 탄생하는 전성기의 씨앗이 됐다는 점에서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의미 있는 1996년 4월 6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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