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현대캐피탈과 우리카드가 격돌한 지난 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 3세트 막판 상대의 공격이 라인을 벗어나자, 현대캐피탈 선수들과 관중들이 일제히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정규리그 18연승, 프로배구 최다 연승이라는 새 역사가 쓰이는 순간이었다.

현대캐피탈은 1월 2일부터 3월 6일까지, 18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4~6라운드 전승이었다. 삼성화재가 두 시즌에 걸쳐 세웠던 기존 최다연승 기록(17연승)을 갈아 치웠다. 프로배구 역사의 한 페이지가 바뀌었다. 그 중심에, ‘초보사령탑’ 최태웅(40) 감독이 서 있었다.

변화의 바람, 그 중심에 서다

현대캐피탈에게 지난 시즌은 악몽과도 같았다. 7개 팀 중 5위에 머물렀다. 프로배구 출범 이후 첫 플레이오프 탈락이었다. 전통의 명가라는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다.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4월 김호철 감독이 물러났다. 그리고 파격적인 인사가 이뤄졌다. 선수였던 최태웅이 지휘봉을 잡았다. 선수가 코치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으로 승격한 첫 사례였다.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코치 경력 없이 바로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다만 최태웅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만의 배구 철학이 팀에 녹아들 수 있도록 한 걸음씩 내디뎠다.

훈련장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그 첫 걸음이었다. 최 감독은 선수들이 즐겁게 훈련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선수들의 단점을 고치기보다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다그침보다 따뜻한 조언 한 마디로 선수들을 이끌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훈련장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배구를 즐겁게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군 전역 후 1월 팀에 합류한 신영석(30)이 “처음 훈련장 분위기가 너무 낯설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을 정도다.

전술적인 변화가 더해졌다. 최태웅 감독은 외국인선수의 공격에 의존하던 ‘몰빵배구’를 거부했다. 대신 “코트 위 모든 선수가 유기적이고 빠르게 움직여 공격을 전개하는 배구를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스피드배구였다.

“범실해도 상관없다”…특별했던 지도방식

갑작스런 전술 변화에 시즌 중반까지는 부침을 겪었다. 현대캐피탈은 10승8패의 성적으로 정규리그 전환점을 돌았다. 3라운드 막판에는 3연패의 늪에도 빠졌다. 한계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러나 최태웅 감독은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선수들을 격려하며 새로운 배구를 익히는 과정에만 집중했다. "우린 지금이 아니라 미래가 중요하다"(10월 대한항공전), "범실해도 상관없어. 해야지, 안하면 나중에 못한다"(12월 한국전력전) 등 경기 도중 선수들에게 전한 한 마디도 같은 맥락이었다.

선수들 역시도 그런 최 감독을 전적으로 믿고 따랐다. 자연스레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두터운 신뢰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스피드배구의 완성도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높아졌다. 그리고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1월 2일 우리카드와의 원정경기 승리를 시작으로 현대캐피탈의 스피드배구가 프로배구판을 흔들었다. 코트 위 모든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에 가담하면서 모두가 빛난 결과였다. 현대캐피탈을 상대한 팀들의 수장들은 “약점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물론 연승에 제동이 걸릴 만한 위기도 적지 않았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고비도 여러 차례 만났다. 그러나 최태웅 감독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선수들을 잡았다.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 마디가 핵심이었다. 이른바 ‘최태웅 어록’의 시작이기도 했다.

최태웅 어록, 현대캐피탈이 더 무서웠던 이유

2월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전력전이었다. 세트스코어 2-2로 팽팽히 맞서던 5세트, 최 감독이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선수들을 향해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 너희는 지금 10연승을 한 팀이야. 자부심을 가지고 해”라는 말을 전했다. 선수들은 5세트에서 대역전극을 일궈냈다. 최 감독의 말처럼 10연승을 달리던 팀의 위용을 보여줬다.

사흘 뒤 홈에서 열린 OK저축은행전에서도 최 감독의 한 마디가 빛났다. 그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너희들을 응원하고 있는거야. 그 힘을 받아서 한번 뒤집어봐. 이길 수 있어”라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현대캐피탈은 승부처였던 3세트를 듀스 접전 끝에 28-26으로 잡아내며 포효했다.

이후에도 최태웅 감독은 경기력이 흔들릴 때마다 선수들에게 의미 있는 한 마디를 전했다. “못하는 것과 하지 않으려는 것은 다르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어. 놀다온다고 생각해” 등 그의 한 마디는 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선수들 역시 최 감독의 한 마디에 결과로 보답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선수로서 코트를 누비며 느꼈던 경험에서 비롯된 방식이었다. 경기 중 선수들을 다그치는 것이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진심을 다해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자신의 지도 방식을 택했다. 현대캐피탈이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18연승을 달릴 수 있었던 힘이었다.

7년 만에 정규리그 정상에 오른 현대캐피탈은 챔피언결정전(5판3선승제)에 진출했다. 오는 18일부터 챔피언의 자리를 놓고 플레이오프 승리팀(미정)과 격돌한다. 최태웅 감독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한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는 말을 다른 감독들한테 하고 싶다. 결국 돌고 돌아 우리가 우승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태웅 감독의 이 한 마디에 코웃음을 치는 이는 이제 아무도 없다.

최태웅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 : 1976년 4월 9일생 ▲태어난 곳 : 인천광역시 ▲신체조건 : 185cm, 80kg ▲가족관계 : 배우자 조재영씨, 2남 ▲출신교 : 인하사범대 부속고-한양대 ▲주요경력 : 삼성화재(1999-2010), 국가대표(1999-2004),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2002), V리그 남자세터상(2006, 2007, 2008, 2009) V리그 챔피언결정전 MVP(2009), 현대캐피탈(2010~2015·이상 선수) 현대캐피탈 감독(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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