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너무나도 극적인 우승이었다. 온갖 어려움을 뛰어넘고서 얻어낸 결과물이었기에 그 의미도 뜻 깊었다. 16년 만의 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전주 KCC의 이야기다.

KCC는 지난 21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와의 최종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54경기로 치러진 장기레이스를 36승18패로 마무리했다. 2위 모비스가 승률에서 동률을 기록했지만 상대전적에서 4승2패로 앞선 KCC에게 정규리그 우승의 영광이 돌아갔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전년도 9위 KCC를 우승 후보라고 생각했던 팬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선수 구성 자체는 화려했지만 항상 ‘건강한 몸상태가 관건’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거나 전성기에서 내려왔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추승균 감독 역시 대행 꼬리표를 막 벗어던진 ‘초짜’에 불과해 기대 이면에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KCC는 불과 1년 만에 놀라운 대반전을 이뤄내며 전신 현대 시절 이후 무려 16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같은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으나 시즌 중 찾아온 몇 가지 큰 고비를 슬기롭게 이겨내면서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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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술-전태풍의 공존

추승균 감독은 정규리그를 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2라운드 후반으로 꼽았다. 김태술의 국가대표팀 차출 기간 동안 전태풍이 가드진에서 분전했지만 김태술 복귀 이후 두 선수의 시너지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던 것. 특히 김태술의 부진이 깊어지면서 출전 시간 축소에 대한 목소리는 물론 트레이드를 주장하는 팬들까지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추승균 감독은 시행착오 끝에 두 선수의 공존 문제를 기어이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수들과의 면담을 통해 진심을 전달한 것이 변화의 계기가 됐다.

추 감독은 전태풍과 김태술을 나란히 불러 모은 뒤 “둘의 조화가 맞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한 명은 희생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추 감독이 현역 시절 ‘소리 없이 강한 남자’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음지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해냈고, 그 결과 KBL리그에서 가장 많은 5개의 우승 반지를 수집할 수 있었음을 선수들도 잘 알고 있었다.

1번으로 뛰기를 좀 더 원하고 있었던 전태풍은 득점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김태술은 리딩에 전념하며 확실한 역할 분배를 이뤘다. 지난 16일 오리온전에서 김태술의 환상적인 패스를 이어받은 전태풍이 결승 3점슛을 폭발시켰던 장면이 이같은 변화로 얻어낸 소득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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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트레이드, 신의 한 수가 되다

전태풍과 김태술 외에도 KCC는 리카르도 포웰과 안드레 에밋의 역할 분배로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포웰은 이미 KBL리그에서 검증된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고, 에밋 역시 KCC가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빅맨들을 건너뛰고 야심차게 영입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높이에 대한 문제가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에이스 자리를 건 두 선수 간의 오묘한 신경전이 나타나면서 팀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결국 추승균 감독은 포웰을 전자랜드에 내주고 허버트 힐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고, 이같은 선택이 KCC가 거침없는 상승세를 내달릴 수 있었던 출발점이 됐다. 골밑의 안정과 더불어 에밋의 공격력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시기도 바로 이때였다.

추승균 감독은 “트레이드와 동시에 2연패를 당했지만 그 순간에도 공격과 수비를 조금씩만 다듬으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며 “무엇보다 전태풍이나 하승진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고, 손발만 맞춘다면 여러 옵션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에밋과 힐이 열심히 잘 뛰어준 것도 트레이드가 성공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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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지 않았던 연승 분위기

KCC는 시즌 막판 12연승으로 구단 역대 최다 연승 기록을 새롭게 갈아치우며 극적인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연승이 중간에 끊겼다면 모비스에게 우승의 영광을 넘겨줬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KCC는 12연승 동안 9차례나 10점 차 이내의 박빙 승부를 펼치고도 단 한 경기를 놓치지 않는 대단한 집중력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1월31일 전자랜드와의 2차 연장 승부에서 113-108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 선수들에게 ‘도저히 질 것 같지 않은’ 자신감을 불어넣은 계기가 됐다.

추 감독 역시 전자랜드와의 당시 경기를 올시즌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꼽았다. 그는 “전자랜드전 승리를 통해 우리가 강팀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생겼고, 선수들이 자신감을 찾게 됐다”며 시즌 막판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KCC는 시즌 중반까지 연승 이후 곧장 연패의 수렁에 빠지는 등 분명 경기력이 들쑥날쑥한 팀이었다. 그러나 전자랜드전 6라운드 승리로 당시 올시즌 최다 타이인 5연승에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실상의 미리 보는 결승전이었던 모비스마저 3점 차로 눌러 정규리그 우승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이처럼 계기를 찾는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또한 추 감독은 시즌 막판 플레이오프에 초점을 맞춰 선수들의 출전 시간을 조절해온 다른 사령탑들과 달리 ‘포기’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고, 선수들의 몸상태 및 사기는 최고조로 올라왔다. 플레이오프 4강 직행에도 성공하면서 약 보름에 가까운 충분한 재정비의 시간까지 부여받는 등 연승 분위기를 끝까지 살리려 했던 노력이 결국 최고의 결실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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