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글=이재호 기자 사진=장동규 기자] 인터뷰 내내 단호함이 묻어났다. 마치 지난 2014시즌 도중 프로축구연맹과 갈등을 빚으며 기자회견에서 열변을 토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축구에 대한 지식, 한국 프로축구의 현주소를 정확히 이해하고 어떤 질문에도 척척 답했다. 성남FC 팬들이 이재명(52) 시장을 두고 ‘갓재명’이라고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실제로 이재명 시장은 K리그 구단주를 통틀어 압도적으로 경기장을 가장 많이 찾는 구단주로 팬들과의 스킨십이 좋기로 소문났다.

그는 성남FC의 구단주이기 이전에 성남의 시장이다. 경기도 성남시청 2층 집무실에서 만난 이재명 시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성남FC 구단주로서 한국 축구의 현실과 축구사랑에 대해 솔직한 얘기를 나눴다.

▶의무감으로 갔던 경기장, 어느새 축구를 즐겨

성남시에는 원래 전통의 명문인 성남 일화라는 기업구단이 있었지만 재정난 악화 등으로 인해 축구단에 손을 떼며 공중분해의 위기에 처했었다. 이 시장은 지난 2013년 12월 성남 축구단 인수를 결정했고 성남FC라는 시민구단으로 재창단하면서 자연스럽게 구단주가 됐다.

-축구장에서 가장 많이 뵙는 정치인 같습니다. 성남FC 취재를 가면 항상 뵐 수 있는 것 같네요. 굳이 그렇게까지 경기장을 많이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장으로서, 그리고 구단주로서 재창단 초기에는 의무적으로 경기장을 갔었죠. 맞습니다. 초기에는 의무감이 전부였어요.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제가 와야 시민들도 올거 아닙니까. ‘시장도 오지 않는데 어떻게 시민들이 움직이겠나’하는 의무감으로 경기장을 갔죠. 그런데 경기장을 다니다보니 이 축구라는게 참 재밌더라고요. 재미를 느끼니 애정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제는 정말 팬이 됐어요. 2016시즌이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어요(웃음)."

-축구 좋아하면 원래 여자친구나 부인은 싫어하잖아요? 아내이신 김혜경 여사는 어떻게 보시나요?

"집사람은 원래 축구를 안 좋아하고 싫어했어요. 하지만 집사람도 위치가 있다 보니 제가 경기장을 가면 같이 갔던 거죠. 집사람도 처음에는 싫어하다 점점 재미를 느끼더라고요. 요즘에는 집에 가면 밤에 함께 해외축구도 볼 정도예요."

▶수배 중에 봤던 2002 월드컵의 감동과 국민 통합, 잊지 못해

축구는 전 세계인에게 가장 익숙한 스포츠다. 한국 역시 동네축구를 비롯해 축구가 생활 곳곳에 묻어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축구에 대한 추억은 있기 마련이다.

-축구에 대한 추억은 어떤 것이 있나요?

"축구는 어릴 때부터 모두가 접하는 스포츠잖아요? 저 역시 그랬죠. 어린시절 논에서 공을 차는데 공이 없으니 새끼를 말고 엮어 찼죠. 발끝이 너무 아파도 재밌으니까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던 기억은 잊히지 않네요.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축구는 저에게 점점 멀어져갔죠. 공장에서 일하고, 삶에 치이다보니 축구는 제 인생에서 사실상 사라져갔죠."

-그럼 축구단 창단 때까지는 축구와의 인연은 없었던 건가요?

"아니죠. 모두에게 찬란한 추억으로 남은 2002 한일월드컵이 있었잖아요. 당시 시민운동으로 인해 수배 중이었는데 수배 중임에도 그렇게 축구가 보고 싶은 거예요. 사람들과 길거리 응원도 하고 싶었어요. 그때 모르는 사람끼리도 즐기고 모두가 하나 되는 기분을 잊지 못해요.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진정한 국민통합을 봤던 2002년의 여름을 전 똑똑히 기억해요. 바로 성남FC에서도 다시 한 번 그 모습을 보고 싶은 거죠."

▶축구계와 맞섰던 당시의 심정… 이젠 심판에 대한 믿음 생겨

기자와 이재명 시장은 인터뷰 장소인 성남시청 안에서 `적과 적'의 구도로 마주친 적이 있었다. 2014년 12월 그가 SNS를 통해 “성남FC가 심판 판정에 의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프로축구연맹은 구단주가 심판 판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라고 반발, 이재명 구단주를 상벌위원회에 회부하기도 했다.

당시 많은 축구인들은 한목소리로 이재명 구단주가 '정도가 지나친 의혹을 제기하고, 프로축구계를 무시한다'며 성토했다. 반면 팬들은 축구계에 가졌던 불신이 폭발하며 이재명 구단주를 응원했다. 축구계와 팬이 극명하게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아무래도 당시의 사건을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자들과 뜨겁게 언쟁도 벌이셨는데요.

"그때 참 험악했죠? 솔직히 좀 더 자극하고 꼿꼿하게 나간 것도 있어요. 논제로 만들어서 모두의 얘기를 들어보고 시정할 건 시정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죠. 물론 저는 당시 언론으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았어요. 괴로웠죠. 하지만 괜찮았어요. 발언권 없는 다수의 축구팬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으로 본거죠."

이 시장은 이 사건으로 프로 4대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구단주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경고를 받는다. 사태는 마무리 됐지만 최근 심판 비리가 터지면서 당시 이 시장의 지적도 설득력을 회복했다.

-최근 경남FC 구단의 심판 매수 사건이 드러나 축구계가 뒤집어졌습니다. 연맹은 경남FC에 '승점 10 삭감'이라는 초유의 징계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 일 이후 많은 분들이 ‘당신의 말이 맞았다’라며 축구계를 비난하더군요. 하지만 전 비난을 자제해달라고 했어요. 현재 정말 축구계는 많이 바뀌었고 노력 중입니다. 심판 시스템도 획기적으로 바뀌었어요. 심판들간의 승강제도가 생겼고 공정한 자체평가도 합니다. 덕분에 저는 심판에 대한 불만이 없어요. 물론 ‘오심’은 있죠. 하지만 ‘오해’는 없습니다. 오심이 나오면 ‘저건 최선을 다하다 나온 경기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 오심이 반복되지 않거든요. 공정해지다보니 축구는 더욱 재밌어지더라고요. 축구계는 현재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갓재명’의 이면… 축구 통해 정치적 야망 채우는거 아니냐고?

역대 시·도민구단의 구단주 중 이재명 시장이 워낙 특이한 행보를 걷고 있기에 그를 둘러싼 의혹의 눈초리는 자연스레 생긴다. 특히 과도할 정도로 축구단에 관심을 쏟는 것은 결국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냐는 시선이 그것이다.

-아직도 의혹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축구를 도구로 삼아 정치적 야망, 혹은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인데요.

"맞습니다. 저는 정치적 야망을 축구로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아두셔야 할 건 저는 정치인입니다. 정치인이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밥을 먹는 것과도 일상적인 겁니다. 그걸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다만 방식의 문제죠. 정치인이 ‘정당한’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면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저는 축구단을 투명하고, 유능하게 잘 운영해서 정치적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축구단을 잘 운영해서 시민들에게 ‘축구단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잘하겠다’는 믿음을 주는 이익을 얻는 거죠."

-실질적으로 축구단을 통해 어떤 정치적 이익을 얻었나요?

"여태껏 시민구단들의 행보를 보면 윗사람이 경영진에 자신의 사람을 꽂아 넣거나 지인의 자녀, 아는 사람 자녀를 선수로 받는 잔이익을 챙겨왔어요. 그건 축구팬들의 이익에 반하는 거였죠. 하지만 전 축구팬의 이익을 함께하는 정치적 이익을 추구했어요. 여태껏 그랬듯이 하지 않고 정말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면 성과가 나올 거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성남은 시민구단으로 바꾼 이후 2년 만에 FA컵 우승, 상위스플릿 진출 같은 최고의 성과를 냈습니다. 축구단을 잘 운영해서 자연스레 저 역시 정치적 이익을 얻는 거죠."

-‘갓재명’이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갓재명’이란 말은 정치할 때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말입니다. 축구단으로 성과를 내고 잘하니까 그런 소리도 듣더라고요. 이제는 정치, 행정 분야에서도 잘하면 그게 이어져서 ‘갓재명’이라는 말이 이어져요. 이게 다 축구팬들 덕분이죠. 정말 영광이죠."

▶한국축구, 농사는 안 짓고 수확만 바라는거 아닌가?

프로구단의 구단주로서 한국축구의 한축을 담당하기에 이에 관련된 생각도 거침없이 쏟아낸 이 시장이다. “축구도 모르면서 축구단 구단주가 되고 싶지 않다”는 그는 축구팬 그 이상의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 프로구단의 구단주로서 K리그와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견해를 묻고 싶습니다.

"축구는 유럽에서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핵심 산업입니다. 우리 역시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축구 인기를 얻어야하죠. 물론 한국 축구계는 잘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축구계나 팬들은 ‘K리그’라는 기본 씨뿌리기와 농사에는 소홀한 정도를 넘어 아예 짓지도 않다가 ‘월드컵’이라는 수확만 기다리는게 아닌가 싶어요.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는데 월드컵에서 호성적을 바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요. K리그, 풀뿌리 축구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어떤 구단주로 성남 시민, K리그에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축구는 매개체가 될 수 있어요. 경기장에서 시민들이 하나가 되는거죠. 이렇게 되면 홍보 효과도 뛰어나요. 시 이미지를 바꾸는데 축구만한게 없어요. 투자하는 돈에 비해 매우 싸게 홍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분명 저희의 모델을 보고 많은 시민구단들이 ‘효과도 없는 곳에 광고하는데 돈 쓸바에 축구단을 활용하자’는 생각을 할거예요. 이런 식으로 성남FC를 통해 모범을 보이고 제일 먼저 바람직한 길을 가는걸 보여주는 구단주, 바로 그런 구단주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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