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글=이재호 기자 사진=이혜영 기자]
'[단독 인터뷰 上] 감독이 조언 구하는 '블루칼라 선수' 문찬종'에서 계속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좌타자에서 스위치히터로 바꾼 사연

사실 국내에는 스위치히터가 사실상 멸종한 상태. 2015시즌 KBO리그에서 스위치히터는 단 4명(서동욱(넥센), 박준서(롯데), 국해성(두산), 김재현(SK)). 주전급 선수는 없다. 메이저리그도 사정이 비슷한 것이 역대 등록 타자에서 스위치히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6%에 불과하다 한국선수는 거의 도전하지 않았던 스위치히터인 문찬종은 원래 좌타자였지만 스위치히터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은 '좌투수' 때문이었다.

"2012년부터였죠. 초등학교 때 스위치히터를 해보고 중학교부터는 좌타자만 했어요. 그러다보니 늘 좌투수에게 약했어요. 그래서 좌투수를 어떻게 해서든 더 잘 상대하려고 스위치히터에 도전했죠. 실제로 안했을 때보다 성적은 더 나아요. 제가 좌타석에 들어설 때는 컨택을 잘하고 우타석에 들어설 때는 파워가 좋은 편인데 아무래도 좌타자는 한국에서 배운거고 우타자는 미국에서 배우다보니 나라의 스타일이 들어간 것 같아요."

스위치히터로서 변신한 후 '자신감'이 늘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좌투수에 대한 걱정을 덜었지만 그러나 문찬종은 또 다른 숙제를 얻었다. 양 쪽 타석 모두에서 타격을 완성해야하는 것. 운동량도 두배로 늘어났고, 경기 준비도 두 배로 늘어났다.

"경기 전날 상대 투수 동영상을 보며 준비하는데 우투수면 타격 연습을 4라운드 중 3라운드를 좌타석에서 하죠. 그래도 1라운드는 우타석도 준비해야하는게 경기 중에 투수교체가 될 경우도 대비하는 거죠. 그런데 만약 시합 직전에 다른 손 투수로 선발투수가 바뀌면 큰일나는거죠(웃음). 확실히 양쪽을 다 준비하고 몸을 푸는게 다르니까 준비할게 참 많아요."

하지만 랜스 버크만(휴스턴 출신 스위히터 1루수)은 말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나는 스위치히터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문찬종 역시 "그 말에 어느정도 동의하는건 있다"며 "정말 경기 중에 3타석을 우타석에 서다 우투수가 올라와서 마지막 타석을 좌타석에 서면 운동장을 처음 나가는 느낌"이라며 스위치히터만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완전히 깨어난 2014시즌과 파란만장했던 2015시즌

2013시즌 야구선수로 포기까지 생각했던 문찬종은 2014시즌 완벽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급격히 성적이 좋아진 것.

2014 : 싱글A- 68경기 타율 0.279 출루율 0.362 장타율 0.403 25도루
상위 싱글 A- 59경기 타율 0.286 출루율 0.341 장타율 0.398 10도루

2013시즌 숏 싱글A에서도 좋지 못했던 타격 성적이 2014시즌 들어 더 높은 레벨인 싱글A와 상위 싱글A에서 더 나아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도 사람이다 보니 4년 넘게 미국에 있다 보니 언어, 문화, 환경 등 모든 부분에서 이제야 적응이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야구에만 집중하게 됐죠. 미국 야구에 적응함과 동시에 미국이라는 나라에 적응한거죠. 코치들의 얘기, 저만의 스타일, 한국에서 배웠던 것들을 모두 녹이며 야구를 하다보니 나아지더라고요. 그리고 생각하는 야구를 하게되고 마이너리그 담당자가 '홈런타자가 아니라면 팀에 도움을 주는 타자가 되라'고 말한 조언도 새겼죠. 그래서 번트도 많이 대고, 주루플레이, 타격 하나하나에 절 희생하고 팀을 살리는 경기를 했죠. 그러더니 팀에 녹아들고 타격도 되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인연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당시 싱글A코치로 1998년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내야수 조엘 치멜리스가 있었던 것. 치멜리스는 '콩클리시'나 한국야구 얘기를 하며 문찬종에 도움을 줬고 마침 싱글A의 감독도 오랫동안 문찬종을 봐왔던 사람이 이어가면서 심적 안정까지 얻었다.

그렇게 맞이한 2015시즌, 문찬종은 엄청난 상승곡선을 탄다. 상위 싱글A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17경기만에 더블A로 승격한 것에 이어 잠시나마 트리플A도 다녀온 것. 한 시즌안에 무려 세 계단을 밟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난 시즌 휴스턴 팜내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선수가 바로 문찬종이었다.

"2014시즌 끝나고 싱글A 베스트러너상을 받았거든요. 2015시즌에는 상은 없었지만 정말 경기에 많이 나갔어요. 물론 로스터 조정으로 트리플A를 잠깐 밟았지만 분명 의미가 있었죠. 올 시즌은 스프링캠프에서 메이저리그 팀들의 경기에도 나가고, 트리플A에서부터 시작하는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실제로 가능성도 높고요."

▶영어공부가 엄청난 '휴스턴 어학원'… 코레아는 정말 대단해

휴스턴 마이너리그는 문찬종이 입단한 시기와 맞물려 대규모 보강이 있었다. 2000년대 후반 제프 배그웰, 크렉 비지오와 같은 대스타들이 은퇴하면서 리빌딩에 들어간 것. 자연스레 메이저리그는 약하지만 마이너리그에는 좋은 유망주들로 득실 됐다. 문찬종은 마이너리그 중에서도 특히 수준이 높은 휴스턴 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휴스턴은 스프링캠프를 플로리다에 차려요. 하지만 한국선수들이 있는 팀들은 대부분 애리조나에 차리죠. 그래서 전 늘 외롭게 혼자 지냈죠. 거기에 영어까지 공부해야하는데 휴스턴은 루키부터 메이저리그팀까지 각 레벨마다 영어선생님이 있어서 엄격하게 영어를 가르쳐요. 시험도 굉장히 어렵고요. 휴스턴 팜내에 외국인선수들끼리는 '휴스턴 어학원'이라고 해요. 훈련하려 영어시험 통과하랴 참 쉽지 않았죠."

휴스턴은 엄청난 유망주를 모으기 위해 강도 높은 리빌딩을 한 팀이다. 2011시즌부터 2013시즌까지 3년간 평균 108패를 했을 정도였고, 시청률이 0%(시청률 조사기가 달린 가구에서 무시청)가 나온 경기가 2차례나 될 정도로 외면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 드디어 오랜 리빌딩의 성과가 나오며 텍사스 레인저스에 이어 지구2외로 와일드카드 진출권을 따내며 플레이오프에 오르기도 했다. 그 중심에는 신인왕을 따낸 유격수 카를로스 코레아가 있었다.

"코레아는 정말 감독처럼 행동해요(웃음). 그만큼 영향력이 컸죠. 코레아가 다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트레이너나 코디들이 정말 쩔쩔매요. 그만큼 초특급 유망주다보니 일반 마이너리그 선수들과는 애초에 대우가 달랐죠. 실제로 경기장에서도 재능이 보여요. 빠르고, 수비 좋고, 파워 좋고, 타격되고 완벽했죠. 정말 괴물이예요. 코레아를 보면서 '쟤는 부족한게 뭐 있을까'하고 생각했다니까요."

▶정신적 롤모델은 추신수, 플레이는 호세 레이예스 닮고 싶어

롤모델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문찬종은 주저 없이 두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정신적으로는 추신수(텍사스) 선배를,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서는 호세 레이예스(콜로라도 로키스)를 언급한 것.

"추신수 선배는 정말 저희 같은 고교 졸업 후 미국무대에 진출한 선수들에게 남다르죠. 정말 저희보다 더 힘든 고생을 하시고 메이저리그 내에서도 최고의 선수가 되셨잖아요. 저희의 고충을 가장 잘 알아주시고 가장 많이 챙겨주는 것도 추신수 선배님이세요. 전 활동지역이 다르다보니 뵙지는 못하고 전화만 했었는데 그런 분들과 얘기하는 것 자체로 위안이 되죠."

"플레이스타일은 호세 레이예스를 보면서 많이 배우요. 경기장 안에서 파이팅하는 모습이 남달라요. 서양식 악바리랄까요. 스위치히터에 같은 포지션, 컨택과 빠른 발이 장점인 것도 비슷하기도 해서 많이 느껴요."

문찬종은 메이저리그에 올라간다면 거둘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성적치에 대해 "타율은 2할 7~8푼대, 출루율은 3할 중반대다. 장타율은 중요치 않고, 30도루도 가능하다고 본다. 스스로 작전수행 능력에 자신감도 있어서 2번 타자가 가장 자신 있어요. 실제로 1,2,9번 타순에 배치되고요"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올 시즌 후 FA… 승격 위한 발판 필요한 올해

2010년부터 미국 무대를 밟은 문찬종은 올 시즌이 끝나면 7년을 활약해 마이너리그에서 FA(자유계약선수)자격을 얻게 된다. 올 시즌 내에 승격을 하면 좋지만 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팀을 찾기 위해서라도 올 시즌은 중요하다.

"저도 이제 7년차가 됐네요. 2010년에 같이 휴스턴에 입단했던 수많은 선수들이 있었는데 현재는 저 포함해서 마이너리그에 딱 두 명 남았더라고요. 메이저리그에 승격한 선수는 거의 없고 모두 짤린 거죠. 당시에 한국선수들도 많았는데 별로 남지 않았네요. 저도 이제는 뭔가 결과물을 내야죠."

문제는 휴스턴 내야진이 너무나도 탄탄하다는 것(유격수- 2015시즌 신인왕 카를로스 코레아, 2루수- 타율왕 호세 알투베, 3루수- 25홈런 루이스 발부에나).

"주위나 팬분들은 휴스턴에서 제가 뛰는 내야가 포화라고 말해요. 맞아요. 하지만 전 일단 백업이라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 것이 중요한 입장이예요. 그들과 경쟁자라기보다 도우미 역할인거죠. 그리고 꼭 여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팀에서 분명 내야자원이 필요한 팀도 있을 거예요. 휴스턴에 남아도 좋지만 저에게 기회만 준다면 다른 팀도 상관없어요."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는 밥 먹듯이 30홈런을 때리는 알버트 푸홀스(LA에인절스) 같은 선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매번 3할-200안타를 때려내던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같은 선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각자의 역할이 있다. 현대 야구는 갈수록 개인 기록과 돋보이기만 중요시하는 선수가 늘고 있다. 그중에서 정말 야구를 이해하는 몇 안 되는 문찬종같은 선수를 필요로 하는 팀은 반드시 있을 것이며 문찬종이 메이저리거가 되는 그 날은 제이슨 켄달이 극찬한 '블루칼라 선수'이며 '진정한 프로'가 또 하나 메이저리그에서 추가되는 날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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