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글=이재호 기자 사진=이혜영 기자] 메이저리그에서 무려 15년간 활약하며 올스타 3회에 뽑히며 팬들의 사랑은 물론 '선수들이 인정하는 선수'였던 제이슨 켄달은 은퇴 후 ‘이것이 진짜 메이저리그다’라는 책을 통해 특별히 ‘블루칼라 선수’에 3페이지에 걸쳐(P294~296 처음북스) 언급했다.

“(팀이) 슈퍼스타를 확보했다면 이젠 다양한 일을 해내는 선수, 경기의 판도를 바꿔 놓는 세밀한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선수가 필요하다. 즉 ‘블루칼라 선수’가 필요하다. 이런 선수는 경기 자체를 바꿔 놓지만 누구도 눈치재지 못 한다…(중략) 팬들은 스타플레이어에게만 관심을 쏟는 바람에 정작 필드에서 가장 중요한 블루칼라 선수들을 놓치곤 한다. 블루칼라 선수는 팀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다. 그들은 지칠 줄 모르는 진정한 야구 선수다.”

야구를 보다보면 성적은 신통치 않은데 계속 기용되는 선수들이 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감독들은 항상 그를 필요로 한다. 어느새 마이너리그에서 7년차를 앞두고 있는 문찬종도 그런 선수다. 오죽하면 감독이 그를 불러 전술 상의와 투수 교체에 대해 상의할 정도다. 진짜 야구를 이해하고 플레이하는 문찬종(25·휴스턴 애스트로스)이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스포츠한국을 내방해 심도 있는 야구 얘기를 들려줬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휴스턴의 사상 첫 한국 선수가 된 문찬종

휴스턴은 아시아 시장 개척에 소극적이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문찬종을 보고 반했다. 휴스턴은 문찬종에 대한 얘기를 듣고 한국 직원까지 채용할 정도로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냈다. 문찬종이 충암고 3학년이었던 2009년의 일이었다.

“사실 전 어릴 때부터 미국은 ‘못갈 곳’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야구자체가 아닌 그렇게 이질적인 환경에서 살 수 없다고 봤거든요. 근데 정작 직업적인 야구선수의 길을 택하고 나서 메이저리그에서 제의가 상당히 많았어요. 그중에서도 휴스턴은 한국인 직원까지 채용하면서 저에게 구체적이면서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냈어요.”

계약금 35만불. 물론 많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문찬종은 “당시에만 해도 에이전트 제도가 있는 것도 몰랐고, 부모님과 저, 구단 이렇게만 협상했다. 아마 에이전트라도 있었다면 더 올려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생각보다 낮은 계약금을 받은 것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계약금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휴스턴은 마쓰이 가즈오(일본)가 잠시 머물렀던 것을 제외하곤 아시아 선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만 유망주 영입을 한 번한 것을 제외하곤 문찬종이 한국선수로서는 처음, 아시아선수로는 겨우 세 번째에 지나지 않았다. 본래 포지션은 유격수지만 2루수, 3루수 모두를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수비,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강한 어깨, 주루 센스와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가 전성기 때 홈에서 1루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3.8초와 같은 빠른 발, 그리고 야구를 볼 줄 아는 눈에 반한 것이다.

▶루키리그에서 마저 부진했던 나날들… 동아줄이 된 이학주

호기롭게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문찬종은 부진했다. 그것도 많이.

2010 : 33경기 타율 0.215 출루율 0.348 장타율 0.237
2011 : 43경기 타율 0.207 출루율 0.302 장타율 0.293

처참한 이 성적이 마이너리그에서도 가장 최하위 단계인 루키리그에서 거둔 성적이었다. 사실상 이정도면 이미 방출이 됐어야 하는 상황. 그러나 문찬종은 살아남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3루수를 본 것이 제 인생 가장 아쉬운 선택이예요. 휴스턴에서는 유격수, 2루수를 맡겼는데 원래는 그렇게 뛰었지만 3학년 때 잠시 3루로 뛰면서 거기에 익숙해져버려 수비 감각을 잃었던 거죠. 수비도 안 되고 저 혼자 한인도 많이 없는 휴스턴 근처 지역에서 생활하며 언어, 문화에 대해서도 심하게 홍역을 앓았어요.”

하지만 2011시즌 새롭게 마이너리그 팜 디렉터가 부임하면서 그 디렉터가 직접 보러온 경기에서 맹활약한 문찬종은 성적보다 경기 내용에 대해 평가받으며 신임을 받는다. 그의 빠른발과 수비능력, 팀을 위한 타격을 할 줄 아는 모습이 모두 나오지 않았다고 여겨진 것. 재능은 분명하기에 더 실력이 나아질 것임을 확신 받았고 문찬종도 그런 믿음 속에 성장했다.

이 믿음 덕에 미국 진출 3년 만인 2012시즌 처음으로 싱글A로 승격한 문찬종은 순식간에 상위싱글A까지 올라가며 성장했다. 하지만 2013시즌이 되자 도리어 숏 싱글A로 강등(싱글A는 숏 싱글A-싱글A-상위 싱글A로 차례로 승격하는 순서)되며 야구 인생에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는다.

“사실 그때 정말 고민이 많았죠. 치고 올라가도 모자랄 판에 강등을 당했으니까요. 포기하려고 했죠. 그때 절 붙잡은게 있죠. 바로 이학주(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형이었어요. 학주형은 제 고등학교 1년 선배로 학창시절 형이 유격수를 보고 제가 2루수를 봤던 콤비였거든요. 그런 형이 잘 나가다 무릎 수술을 받았는데 마침 제가 있던 곳에서 차로 2시간 반가량 떨어진 곳에 살았어요. 많이 외로웠던 전 형이 매일 재활만 하고 있으니까 경기 끝나면 2시간 반 차 끌고가서 같이 놀고 얘기하고 저녁 먹으며 지냈어요. 그러고 밤 되면 다시 2시간 반을 차타고 돌아오고. 그렇게 오래 걸려 가도 전 거의 매일 갔어요. 그만큼 한국말이 되는 사람이 그리웠고 학주형과 지내면서 행복했던 거죠. 그때 학주형이 절 잡아주지 않았다면 아마 포기했을 거예요.”

▶감독이 먼저 물어보는 선수, 1루 코치로도 나가는 선수

서문에 언급했듯 문찬종은 야구를 정말 이해하고 뛰는 몇 안 되는 선수들이다. 실제로 선수들이나 현장, 전문가들은 ‘정말 야구를 이해하고 경기를 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고 한숨 쉰다. 오죽하면 야구 격언 중 “야구는 교회와 같다. 많은 사람들이 보러가는데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

“제 장점은 경기 상황을 정확히 판단한다는 거예요. 제가 선발로 나서지 않아도 이때쯤 대타, 대주자, 대수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미리 몸을 다 풀어놔요. 감독님이 시키기 전에 하는 거죠. 감독님이 ‘준비하라’고 하면 전 ‘이미 준비를 마쳤다’고 하죠. 능동적으로 미리 상황을 예상하는 거죠. 그런 것들이 질 경기를 이기게 만들거든요.”

이렇게 미리 생각하는 문찬종을 감독들이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죽하면 문찬종이 휴식을 부여받는 날에는 감독이 경기 중 그를 불러 작전상의를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감독님은 항상 경기장에서 덕아웃 들어오는 출입구 난간에 기대있으세요. 그러면 ‘문’하고 부르죠. 저한테 현재 상황에 대해 상의하는 거죠. 작전을 묻거나 혹은 투수교체 타이밍도 물어보시는 경우도 왕왕 있어요. 저번에는 1루 베이스 코치로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발이 빠르고 하니까 선수들에게 주루 노하우를 알려주라는 거죠. 그래서 전 경기를 안 나가도 정말 쉴 틈이 없어요(웃음). 가끔 동료들 중에 경기에 집중 안 하고 멍하니 있는 선수들이 있어요. 그러면 갑자기 대타나 대주자로 투입되면 경기흐름을 모르거나 몸을 안 풀었으니 부상을 당하기도 해요. 정말 경기를 바꾸는건 스타선수가 아닌 저희 같은 선수인 경우도 많은 거죠.”

성적(마이너리그 통산 타율 0.260)으로만 보면 평범한 문찬종이 지난 시즌 싱글A부터 더블A를 거쳐 메이저리그 승격 직전인 트리플A까지도 경험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단독 인터뷰 下] ‘훈내 풀풀~’ 문찬종 “추신수-레예스 반반 닮고 싶어”'에서 계속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