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장시간을 똑바로 앉는 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동 중에는 항상 자세를 비스듬히 해야 한다. 그리고 잘 때 똑바로 누워 자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잠을 청할 때는 본인 특유의 자세인 일명 '새우잠' 포즈를 취해야만 한다.

문제는 허리다. 허리 수술 이후 그 후유증은 정상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2006년 류제국(당시 시카고 컵스) 이후 무려 10년 만에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진출했던 선수 중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될 전망이다. 바로 LA에인절스의 1루수로 낙점된 최지만(25)의 얘기다.

류현진(LA다저스)의 모교인 인천 동산고 3학년 때인 2009년말 시애틀 매리너스와 아마추어 계약(계약금 42만 5,000달러)을 맺은 최지만은 6년간 줄곧 시애틀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했다. 포수로 데뷔했지만 허리 부상으로 1루수로 전향해 2015시즌을 앞두고는 스위치히터로 바꿨다. 2016시즌을 앞두고 볼티모어와 마이너리그 FA계약을 맺은 후 곧바로 LA에인절스의 룰5드래프트 지명을 받으며 메이저리그 데뷔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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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벽두 인천의 한 피트니스 센터에서 만난 최지만은 인터뷰 내내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그 내용 중 상당수가 야구상식을 깨는 말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상식파괴 1 : 푸홀스 있는 LA에인절스 1루수? 가능하다

지난해 12월 뜻밖의 낭보가 미국에서 전해졌다. 2010년 처음으로 미국 무대를 밟았던 스위치히터 최지만이 LA 에인절스로부터 '룰5 드래프트'에 지명됐다는 것. '룰5 드래프트'는 특정팀이 마이너리그에 좋은 유망주를 묶어두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로 지명과 동시에 의무적으로 지명팀은 그 선수를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서 활용해야한다. 즉, 최지만은 메이저리그 데뷔가 가능한 최적의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LA 에인절스하면 2000년대 최강의 타자이자 2015시즌에도 40홈런을 쏘아올린 10년 '2억4,000만달러(약 2,854억원)의 사나이' 알버트 푸홀스가 최지만의 1루 포지션에서 버티고 있다. 모두가 주전을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최지만은 자신 있다. 그 이유는 일단 푸홀스가 발가락 수술을 받으면서 시즌 초 결장이 예상되기 때문. 최지만도 "확언은 힘들지만 충분히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될 자신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단 한 경기라도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이 중요하다"는 최지만은 주전 확보보다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라도 감사할 것이라고 했다.

▶상식파괴 2 : 일반인에겐 생활도 힘든 허리통증, 그러나 버틴다

최지만이 처음 시애틀 매리너스로부터 지명 받아 미국을 향했을 때 포지션은 포수였다. 그러나 프로에서 포수 생활은 1년뿐이었다. 허리 부상 때문이었다. 최지만은 이유 모를 허리 통증으로 인해 재활을 하다 수술까지 받았다. 2011시즌 단 한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MRI를 찍어 봐도 모두 소견이 달랐다. 병원에서는 이유를 찾지 못했고 난 고통이 극심했다. 결국 열어보니 꼬리뼈와 골반의 문제였고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최지만은 아직도 그때의 고통에 몸서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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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사실 허리 수술의 후유증으로 경기 후 버스에서 장시간 있으면 똑바로 앉지를 못한다. 오죽하면 버스 바닥에 누워서 이동하기도 했다. 지금 얘기하는데도 고통이 있고, 잠을 잘 때 똑바로 누워서 자면 마비가 와 옆으로 누워 새우잠 자세로 자야만 한다"고 고백했다. 일상적인 생활도 힘들면서 그는 정상적인 선수도 되기 힘든 메이저리거가 되려한다. 끝과 끝은 통하는 법인가 보다.

▶상식파괴 3 : 패스트볼을 잘 쳐야 한다? 난 변화구를 노린다

야구에서 기본 상식은 타자는 변화구보다는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춰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패스트볼을 놓치지 않고 느린 변화구에 어떻게 해서든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지만은 생각을 달리했다. 패스트볼보다 변화구를 노리는 것. 이유는 간단했다. '변화구 속도가 더 느리니까.'

"많은 사람들이 제가 변화구에 타이밍을 맞춘다고 하면 웃는다. 하지만 전 변화구 공략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어릴 때부터 다들 변화구를 던지더라"라며 "솔직히 전 타석에서 들어오는 변화구가 슬라이더인지 커브인지와 같은 구종 판단을 잘 못한다. 실밥을 읽거나 그런 것보다 그냥 연습을 통한 감으로 친다"고 설명했다.

사실 많은 마이너리거 타자들이 메이저리그로 승격하고 나면 늘 '변화구에 약하다'는 평가를 듣곤 한다. 메이저리그의 수준 높은 변화구에 속수무책이라는 것. 하지만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최지만은 이 부분만큼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오죽하면 시애틀 시절 마이너리그에서 감독들이 뽑은 '최지만과 닉 플랭클린(현 탬파베이 내야수)은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 있다'고 선수들 앞에서 예시가 되곤 했다고 한다. 이유는 당연히 '변화구를 칠 줄 아니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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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파괴 4 : 1루수는 무조건 장타? 내 스타일을 고수해야

1루수는 대표적인 '강타자'포지션이다. 아드리안 곤살레스(LA 다저스), 폴 골드슈미츠(애리조나), 조이 보토(신시내티),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 크리스 데이비스 등 많은 선수들이 30개에 가까운 홈런을 뻥뻥 때려난다. 국내에도 이대호, 박병호, 이승엽은 모두 1루수다.

하지만 최지만은 장타보다는 컨택에 자신이 있다고 한다. 이에 많은 이들은 우려를 표한다. 최지만에게는 할 말이 있었다.

"마이너리그 시절, '낮은 마이너리그 레벨은 쳐서 올리면 무조건 홈런'이라는 말이 싫었다. 동기들 중에 자신의 스타일을 일부러 쳐서 올리는 스타일로 바꾸는 선수도 많았다. 싱글A나 더블A에서는 그 방법이 통해 나도 물론 혹하긴 했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은 트리플A나 메이저리그서는 삼진만 당하더라. 올라갈수록 투수들의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알고 있었다. 내 스타일이 '라인드라이브(직선타)'를 많이 만들어내는 성향이고, 이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했다. 코치들도 인정해주고 칭찬해줬다. 그 스타일을 고수한 끝에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최지만은 비록 장타를 때리지 못하더라도 타점을 때려내는 것이 1루수, 그리고 중심타선의 역할이라고 했다. 주자가 있거나 득점권 상황에서 최지만은 자신있다고 했다.

"전 분명 홈런 숫자가 부족해도 득점권에서는 늘 자신감이 있고 실제로 성적도 좋았다. 제 스스로도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영양가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부족한 장타는 정확한 컨택과 득점권 타율로 메우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5시즌 최지만은 득점권에서 4할5푼5리의 무시무시한 타율을 선보이기도 했다.

▶상식파괴 5 : 스위치 히터와 영어에 대한 오해

최지만은 야구계에서 흔치 않은 스위치히터(우투수때는 좌타석, 좌투수때는 우타석에 서는 타자)다. 사실 최지만은 2014년 말부터 스위치히터를 연습했다. 즉 좌타자에서 스위치히터로 전향한 것은 1년밖에 되지 않은 것. 최지만이 스위치히터로 전향했을 때 국내외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무리다'와 같은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냥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원래 오른손잡이다. 좌타자로 시작한 건 야구 만화를 보니 좌타자들이 많아서였다. 야구만화를 보며 좌타자가 유리한 점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다보니 그게 맞다고 여겼다. 그래서 좌타자가 된 것이었고 우타석은 원래 오른손잡이니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장난삼아 들어간 우타석에서 안타를 날렸고 코치진도 한번 해보라고 했다. 윈터리그에서 해보니 잘 되서 계속하는 것 뿐이다"라고 말하는 최지만은 뭔가 절실한 동기보다 잘되는 것을 하는 것이 최고라는 지론을 강조했다.

그 지론은 영어에서도 드러났다. 본인 말로는 2010년부터 약 6년간 미국에 있었지만 지금도 영어가 뛰어나지 못하다며 겸손해 한다(그러나 최지만의 영어 실력은 뛰어나다고 주위에서 귀띔했다). 많은 이들은 '영어를 배우고 미국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야구를 잘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최지만은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야구를 잘해야 한다. 영어를 잘하는 것보다 야구를 잘해야 팀에서 대우를 해준다. 영어만 잘하고 야구를 못하면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직업은 야구선수"라고 강조했다. 야구를 잘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가득찬 최지만이었다.

▶상식파괴 6 : KBO리그 거쳐야만 메이저리그서 성공한다?

2006년 류제국의 승격 이후 약 10여년간 단 한명의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향한 마이너리거들의 승격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최지만은 10년 만에 나오는 최초를 쓸 준비를 마쳤다.

"처음 미국에 갔던 2010년 마이너리그에 약 20여명 가까운 한국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승격하지 못해 희망이 보이지 않아 암울했다"며 "이제 메이저리그가 가까워졌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있다. 제가 메이저리그에서 뛰게 되면 절 보며 밑에 있는 다른 한국 선수들이 '저 형도 올라갔으니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것"이라며 기뻐했다.

현재 메이저리거가 확정인 추신수, 류현진, 강정호, 박병호, 김현수 중 추신수를 제외하곤 모두 국내야구를 거쳤다. 이에 미국으로 직행하는 것에 대한 무용론을 펼치는 여론도 존재한다. 하지만 최지만은 "난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의 상황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미국에서 많은 것을 배웠음을 강조했다.

"돌이켜보면 10년의 텀으로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많아지는 것 같다. 1995,1996년에 박찬호 선배가 메이저리거로 자리 잡았고, 2005년에 7명 가량의 메이저리거(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김선우, 구대성, 최희섭, 추신수)가 있었다. 그리고 2016년에는 기존의 선수들에 저나 이학주, 이대호, 오승환 선배들도 메이저리거의 가능성이 있다. 10년 만에 찾아온 메이저리거 주기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

[단독인터뷰 下]최지만이 말한다 '루키MVP부터 메이저리그까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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