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부터 프로까지, 많은 경험이 지금의 조덕제 만들었다
지금도 힘들 때면 운동장 찾는 ‘천생 축구인’
“늘 최선을 다하면, 항상 좋은 일 있겠죠"

[인터뷰①] 수원FC 승격 이끈 조덕제 “고집이 큰 일 만들었죠”
[인터뷰②] 공격축구와 조덕제의 연결고리, 선수시절의 ‘본능’
[인터뷰③] ‘천생 축구인’ 조덕제 “축구에 미친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인터뷰④] 이상과 현실 사이, 수원FC의 2016시즌 구상은?

[스포츠한국 수원=김명석 기자] “평생에 이런 운, 이런 복이 올 수 있을까요?”

조덕제 감독의 지도자 경력은 참 다양하다. 6세의 어린아이들과 눈밭에서 뒹굴며 천진난만하게 공도 찼고, 초·중학생들도 가르쳐봤다. 대학생, 실업팀, 프로팀까지도 두루 맡았다. 덕분에 그는 지도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얻었고, 또 선수들을 통해 오히려 많은 것도 배웠다.

이러한 경험들과 배움은 고스란히 지금의 조덕제 감독을 만들었다. 특유의 온유한 카리스마도 그렇고,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하는 전술적인 기조도 그렇다. 스스로 자신의 지난 지도자 생활을 돌아보며 ‘운’과 ‘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봉진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마인드가 바뀐 결정적인 계기, ‘아이들’

조덕제 감독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어깨부터 허리, 무릎, 발목 등 성한 곳이 없었던 몸이 끝내 버텨주지 못해, 결국 우리 나이로 32살에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1996년 12월에 은퇴식을 했는데, 은퇴식을 하기도 전에 아주대 코치로 왔죠. 진로에 대한 고민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축구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도 괴롭고 힘들 때 커피 한 잔 들고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편한데요.(웃음)”

코치 조덕제는 그야말로 독종이었다. 프로에서 뛰다가 대학팀 코치로 돌아오니, 선수들의 훈련량이 성에 찰 리 없었다. 조 감독은 “그때는 선수들이 힘들었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만 해도 이러한 훈련 방식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조덕제 감독은 2002년까지 7년간 모교 후배들과 함께 했다. 경험이 조금씩 쌓여가기 시작할 때쯤, 김희태축구센터와 인연이 닿아 직접 초·중학생들을 가르쳤다. 어린 선수들과 함께 한 약 2년의 시간. 독종이었던 조덕제 감독의 마인드를 변화시킨 결정적인 시간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을 북돋아주면, 그만큼 아이들이 발전을 하더라고요. 그때 초, 중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많이 느꼈어요. 지도자가 강성만 가지고 가면 안된다는 것을요. 지도자로서의 마인드가 바뀐 계기가 됐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선수는 선수, 지도자는 지도자였다면, 선수들이 있으니까 내가 있다는 마인드로 바뀌었죠. 성격도 온유해졌죠.”

김봉진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아주대 감독 부임, 공격축구의 서막이 오르다

그는 2004년 감독으로 모교 아주대에 부임했다. ‘감독 조덕제’의 본격적인 출발이자, 조덕제표 공격 축구의 서막이 오른 시기였다. 선수 시절의 선수 시절 숨기지 못했던 공격 본능을 전술로써 빚어낼 기회이기도 했다.

다만 공격적인 축구가 성공적인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1·2학년이 참가하는 저학년 대회에서는 우승을 했지만, 3·4학년이 참가하는 대회에서는 유독 우승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 조 감독은 웃으며 우승 실패의 원인을 ‘공격축구’로 꼽았다.

“무지하게 공격축구였어요. 지금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만약 그런 것만 자제했으면 성적도 좀 내고, 아주대에 조금 더 있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공격적인 운영의 최대 약점, 수비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 이기던 경기를 역전패 당하거나,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면서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물론, 당시의 경험이 향후 조덕제표 공격축구를 더 단단하게 만든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는 2010년 아주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당시 아는 후배의 소개로 당시 수원시청이 운영하던 6~12세 취미반 비등록 선수들과 함께 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조 감독은 “정말 재미있게, 아무런 걱정 없이 놀았다”며 웃어보였다.

김봉진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최선을 다하다보면, 항상 좋은 일이 있겠죠”

그리고 2012년 그는 실업축구팀인 수원시청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조덕제 감독의 출사표는 “팬들이 응원해줄 수 있는 재미있는 축구”였다. 실제로 그는 강력한 전방압박과 날카로운 측면공격을 골자로 한 공격축구로 부임 첫 해 팀을 내셔널선수권대회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이듬해 팀의 프로축구 2부리그 참가가 결정되고 프로팀으로 전환되면서, 조 감독 역시 처음 프로팀 감독이 됐다. 물론 변함없던 공격축구는 계속됐고, 3년이 지난 2015년, 팀을 1부리그로 이끈 영웅이 됐다.

“지도자를 하면서 ‘내가 K리그 클래식 감독을 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단 0.1%도 해본 적이 없어요. 수원시청 감독할 때도 ‘감독을 그만두면 어린 아이들하고 놀면서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죠. 그런데 우연찮게 팀이 프로로 전환되면서 초·중학생들도, 대학팀도, 실업팀도, 프로팀도 다 맡아본 감독이 됐어요. 더구나 내셔널리그에서는 우승도 해보고, 2부리그에서는 승격도 해봤죠. 평생에 이런 운, 이런 복이 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먼 훗날 어떤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라는 다소 상투적인 답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 묻자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저 양반은 축구에 미친 사람, 혹은 축구에 무슨 한이 있는 것 같았던 사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렇게 최선을 다하다보면, 항상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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