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조형래, 이재호 기자] 미국생활 8년째인 이학주(25). 그는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의 문턱을 넘기 위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도전을 택했다.

이학주는 현재 한국에 머물면서 모교 충암고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올해 템파베이 레이스에서 끝내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지 못한 그는 일찌감치 귀국해 향후 행보를 모색했다. 많은 얘기들이 나왔지만 2016년 이학주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으로 미국 무대를 누빈다. 내년은 이학주의 야구 인생에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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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진출과 미국 잔류의 갈림길…샌프란시스코의 끝없는 구애

이학주는 올시즌이 끝나고 마이너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다. 2013년 불의의 무릎십자인대 부상으로 콜업 기회를 놓친 이후 줄곧 트리플A에 머물렀다. 올해도 탬파베이의 선택을 받지 못했고 지명할당 조치됐다. "추신수 선배와는 완전히 다른 FA 선수"라며 웃은 이학주였다.

사실 이학주의 마음은 한동안 일본 쪽으로 기울여져 있었다. 실제로 일본프로야구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요미우리, 야쿠르트, 지바 롯데, 주니치 등이 이학주를 보기 위해 입국하기도 했다. 이학주는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적극적인 구애가 이학주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샌프란시스코와 LA 다저스,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그에게 구체적인 계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의 적극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바비 에반스 단장은 이학주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영입에 나섰다.

이학주는 "12월 초에 샌프란시스코로 마음을 굳혔다. 단장이 전화를 해서 '우리팀 내야 백업이 약하다. 캠프 때 경쟁을 했으면 한다. 꾸준히 널 지켜보고 있었다'며 계속 설득을 했다. 나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미국 무대에 미련이 남았다"며 샌프란시스코의 구애를 받아들인 이유를 밝혔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이학주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경쟁이 보다 수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샌프란시스코의 내야 주전 자리는 확고하다. 유격수 브랜든 크로포드, 2루수 조 패닉, 3루수 맷 더피까지. 이학주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하지만 내야 백업으로 눈을 돌릴 경우 얘기는 다르다. 에히르 아드리안자, 켈비 톰린슨이 내야 백업 자리에 있다. 코리 시거, 알렉스 게레로, 그리고 얼마 전 영입한 쿠바 출신 오마 에스테베스 등이 있는 다저스보다는 샌프란시스코가 이학주 자신에게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학주는 "계약을 할 때 팀의 로스터 역시 보고 판단한다. 내 자리에 어떤 선수가 있는지 파악해야 했다"면서 "금액적인 면은 다저스가 더 좋았다. 하지만 나는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를 택했다"고 밝혔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쉽지 않은 '마이너 옵트 아웃' 보장, 이학주의 시즌은 5월까지?

이학주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배수의 진'을 쳤다. 계약서에 옵트아웃 조항까지 관철시켰다. 옵트 아웃은 남은 계약 기간을 취소하고 선수의 의사에 따라 자유계약선수가 될 수 있다는 조항이다. 그만큼 이학주의 의지는 강력했고 절박했다. 옵트아웃 조항이 발동 가능한 시기는 2016년 6월 1일까지다. 6월까지 메이저리그를 밟지 못했을 때 이학주는 다시 FA 신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학주는 "마이너 선수들한테 옵트아웃 조항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그런데 에이전트가 자신있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 LA 다저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모두 옵트아웃 조항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새크라멘토(샌프란시스코 트리플A팀 연고지) 집도 2개월만 렌트했다. 2016년 나의 시즌을 9월까지 보지 않고 있다. 5월까지 200%를 발휘해 미친 듯이 해보고 싶다"고 말하며 이를 악물었다.

이학주는 무릎 부상 이후 2년 동안 제대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올해 역시 타율 2할2푼 3홈런 27타점 20도루의 성적에 그쳤다. 멘탈이 흔들렸다. 그는 "올해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서 홈런 친 다음날 마이너리그 캠프로 내려갔다. 그때 정말 힘들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다시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기술적 보완점은 없는 것 같다. 이젠 멘탈 싸움이다. 벌써 7년째다. 상처도 많이 받았고 그동안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신 부모님께도 죄송하다. 이젠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다"고 전했다.

▶'2000년 시드니 키즈'의 궁극적인 꿈, 2017 WBC 국가대표 발탁

이학주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의 순간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이는 이학주가 글러브를 끼게 된 계기다. 이학주는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보고 난 뒤였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국가대표에 대한 열망도 크다. 이는 그가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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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주는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면 백업으로라도 30~40경기 정도 뛰고 싶다. 대타, 대주자, 대수비 등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면서 "이후 국가대표팀에 뽑히고 싶다. 그동안 단 한번도 국가대표 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2017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나가는 것이 나의 궁극적인 꿈이다"며 힘주어 말했다.

그의 플레이를 실제로 본 국내 야구팬은 거의 없다. 그런 만큼 메이저리거로, 나아가 국가대표로 팬들에게 자신을 알리고픈 마음이 크다. "팬들에게 제 모습을 빨리 보여주고 싶다. 제 기량과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서 "한국인 마이너리거 중에서 제가 현재 나이가 가장 많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도 하다. 여기까지 살아남았는데 꼭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서 백업으로라도 국가대표에 뽑히고 싶다"며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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