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2008년 7월. 그 어느 해처럼 찜통더위가 기승이었지만 이동국에게는 지금의 겨울만큼이나 혹독하게 추웠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 신문 기사를 검색해보면 '이동국, 영국 언론 선정 최악의 공격수', '영국서 방출된 갈 곳 없는 이동국'과 같은 헤드라인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한국나이로 30세가 됐고 영국에서 29경기 2골에 그친 기록은 모두가 이것으로 이동국의 화려한 시절은 끝났다고 판단케하기 충분했다.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국내로 돌아왔을 때는 이 같은 판단에 확신만 더해줬다. 친정팀 포항이 아닌 성남 유니폼을 입었지만 이동국은 13경기 2골이라는 전혀 회복세를 보여주지 못한 기록만 남기고 반 시즌 만에 성남 유니폼을 벗어야했다. 2008년의 이동국은 그렇게 쓸쓸한 30세를 보냈고 화려했던 축구인생을 끝내는 줄로만 알았다.

미들스브러 시절의 이동국(왼쪽)과 2008년 성남시절의 이동국. ⓒAFPBBNews = News1 스포츠코리아 제공
전북 입단, 이동국 인생 자체의 터닝포인트

이동국이 2009시즌을 앞두고 김상식과 함께 전북 문대성과 홍진섭을 맞바꾸는 2대2 트레이드를 통해 전북의 유니폼을 입었을 때 솔직히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이동국은 소위 '한물 간 선수'로 취급됐고 전북 역시 아직 K리그 우승은커녕 2008년 기적적으로 플레이오프 끝에 4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2007시즌 8위, 2006시즌 11위의 리그성적을 생각하면 전북의 2008시즌 4위는 이변이었다.

하지만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알았다. 이동국이 자신의 팀에서 부활의 날갯짓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동국도 최강희 감독만 믿고 부상과 영국진출로 인해 약 3년간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했던 몸상태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2009시즌 K리그 29경기에 출전해 21골을 넣는 대활약을 펼친 것. '라이언 킹'의 부활에 모두가 놀랐고 MVP, 득점왕, 팀 우승 베스트 일레븐의 4관왕을 차지했다. 최악의 시즌 후 곧바로 최고의 시즌을 보낸 기묘한 이동국에게 사실 2009시즌은 전설이 꿈틀대는 시작일 뿐이었다.

30대의 이동국, 화려했던 20대의 이동국을 뛰어넘다

만 19세의 나이로 1998프랑스월드컵에 출전할 정도로 엄청났던 10대 시절과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뛴 20대 시절의 이동국은 화려했다. 하지만 빛이 많았던 만큼 필연적으로 그림자도 많이 생겼다. 이동국은 늘 팬들의 도마 위에서 '국내용 공격수'인지 아닌지를 판단 받아야했고 외모와 인기에만 취한 축구선수라는 따가운 시선도 피할 수 없었다.

굴곡 많았던 20대의 이동국을 지나 2009년부터 시작된 만 30세의 이동국은 이미 많은 걸 보여줬다고 생각한 20대의 자신을 뛰어넘게 된다.

전북 현대 제공
10~20대, 1998~2008년(10시즌) : 187경기 64골 29도움
30대, 2009~2015년(7시즌) : 225경기 116골 37도움
*기록은 국내 컵대회, 리그경기만

10~20대 시절보다 30대에 적은 시즌을 뛰었음에도 더 많은 경기와 골과 도움을 올린 것은 K리그의 경기 수 확대의 영향도 있지만 전북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이동국의 몸상태 때문이다.

이동국은 20대까지는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던 MVP를 만 30세 시즌부터 만 36세인 현재까지 무려 4번이나 따냈다. 당연히 K리그 역사상 이동국보다 MVP를 많이 따낸 선수는 존재하지 않고, 이동국이 지금까지 넣은 180골은 K리그 통산 최다골이다. 신인왕(1998)-MVP(4회)-득점왕(2009)-도움왕(2011)-베스트 11(5회)-올스타전 MVP(5회) 등 이 땅에서 축구선수로 따낼 수 있는 상은 모두 받아본 이동국이다.

30대의 이동국은 20대의 이동국이 보여줬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20대의 이동국은 한정된 움직임으로 체력소모를 최소화하며 득점에만 최적화된 선수였다. 스스로도 '난 골만 넣으면 할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졌었다고 밝힌 20대의 이동국은 현대축구에서 요하는 수비도 함께하는 공격수의 개념과는 맞지 않았다.

그러나 30대의 이동국은 도리어 체력이 떨어질 시기임에도 더 많은 운동량을 가져가며 수비와 측면을 모두 뛰는 공격수로 거듭났다. 움직임이 넓어졌고 마음은 평안해졌으며 결정력은 20대만큼이나 여전히 날카로움을 유지하자 이동국의 축구인생은 진정한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다.

전북 입단 전과 후의 이동국

만약 그가 영국에서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좌절하며 2008년을 끝으로 별다른 활약 없이 30대 초반쯤 은퇴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동국은 '한때 한국을 대표하던 공격수'정도의 명성은 남겼을 것이다. 그만큼 20대의 이동국은 엄청났다.

하지만 만 36세인 현재까지 활약하며 7시즌 동안 최다골 경신,MVP 4회, 팀우승 4회 등 말도 안 되는 기록들만 남긴 이동국은 이제 축구사에 '한국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라고 수식되기에 부족함이 없게 됐다.

연합뉴스 제공
이동국은 한 인터뷰에서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전 우루과이전 경기 종료 직전 자신에게 찾아온 일대일 기회를 놓친 것을 크게 후회하며 "그 슈팅이 골이 됐다면 한국축구사에 적힐 제 이름의 가치가 달라졌겠죠"라며 아쉬워했다.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이동국은 30대 중후반의 나이에도 K리그 MVP 2연패를 달성하는 등 한국축구사에 적힐 이름의 가치를 달리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일의 시작은 2008시즌 종료 후 전북에 입단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미 끝난 줄 알았던 20대의 이동국은 30대에 전북에서 새생명을 받아 언제 끝날지도 모르게 축구사를 계속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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