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현대 제공
[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지난 8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유나이티드와 전북현대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5 36라운드. 주심의 종료 휘슬과 함께 경기는 전북의 1-0 승리로 막을 내렸다. 전북의 리그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경기 내내 특유의 무표정으로 그라운드를 응시하던 최강희(56) 감독의 얼굴에도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지켜낸 왕좌, 그리고 7년 사이에 일궈낸 4번째 우승. 특히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부담감 속에 외국인 선수의 이적 등 선수단 운영마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일궈낸 우승이었기에 그 의미는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날 팀을 다시 한 번 정상으로 이끌면서 그는 K리그 최다 우승(4회) 사령탑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다. 전북 훈련장이 위치한 완주군 봉동을 빗댄 ‘봉동이장’이라는 별명을 넘어, 이제는 K리그 대표 명장의 반열에 우뚝 선 순간이기도 했다.

스타출신, 그리고 ‘유학파’ 지도자

최강희 감독은 스타출신이다. 1983년 포항제철에 입단, 이듬해 울산현대로 이적해 프로 통산 10시즌 동안 205경기 10골 22도움을 기록했다. K리그 베스트에도 4차례(1985·1986·1988·1991)나 이름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198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비롯해 같은 해 서울 올림픽, 1990년 국제축구연맹(FIFA) 이탈리아 월드컵과 베이징 아시안게임 등 대표팀에서도 두루 활약했다.

동시에 그는 ‘유학파’ 지도자이기도 했다. 1992년 현역에서 물러난 최강희 감독은 독일과 잉글랜드 스페인 브라질 등을 두루 거치면서 축구 견문을 넓혔다. 이 과정에서 1995년 수원삼성 트레이너와 1998년 코치, 2003년 국가대표팀 코치 등을 통해 현장 경험도 쌓았다.

그리고 2005년 7월.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13년 만에 그는 감독이라는 직함을 달았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물러난 조윤환 감독의 뒤를 이어 전북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한 것이다. 최강희 감독과 전북이 함께 만든 이야기의 서막이 오른 순간이었다.

조용하게 뿌리내린 리더십, ‘전북 왕조’의 시작

당시 전북은 리그 중위권을 맴돌던 팀이었다. 특히 2005년은 한때 리그 최하위권으로 추락하는 등 팀 분위기마저 어수선했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이 부임하면서 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수들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허락하면서도, 대화를 통해 쌓기 시작한 신뢰 관계가 팀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그 밑바탕에는 최 감독이 유럽과 남미에서 배워온 축구 선진국의 선수단 운영 방법이 깔려 있었다.

덕분에 전북은 최 감독 부임 첫해부터 성과를 냈다. 2005년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 염기훈 김형범 등의 영입으로 선수 개편에 나선 전북은 시리아의 알카라마를 제치고 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도 우뚝 섰다. 최강희 감독 부임 2년차, 풀타임 첫 시즌 만에 일궈낸 성과였다.

전북의 리그 성적 역시 상승곡선을 그렸다. 2007년 8위로 3년 만에 한 자릿수 순위 진입에 성공한 전북은 이듬해 6위로 다시 한 번 순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이동국과 에닝요 김상식 등 대대적인 보강에 나선 2009년, 전북은 성남일화를 제치고 창단 15년 만에 리그 첫 우승을 차지했다. 전 소속팀에서의 부진 탓에 영입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동국이 득점왕과 최우수선수상을 휩쓸며 최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공격에 무게를 두는 최강희 감독 특유의 전술, 이른바 ‘닥공(닥치고공격)’이 전북 특유의 팀컬러로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2년 뒤에도 전북은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이동국과 에닝요 김동찬 등 리그 두 자릿수 득점 선수가 3명이나 될 만큼 공격적이었던 최강희 감독의 전술이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덕분에 전북은 2009년에 이어 2년 만에 리그 정상의 자리를 탈환했다.

대표팀 외도 후 돌아온 강희대제, 새 역사를 쓰다

전북을 2번째 우승으로 이끈 최강희 감독은 그해 12월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당초 그는 대표팀 사령탑 자리를 거듭 고사했지만, 대한축구협회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월드컵 예선까지만 맡는다는 조건 하에 지휘봉을 잡았다. 그가 떠나 있던 사이 전북은 새 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감독대행 체제를 유지했다.

다만 대표팀은 전북과는 많이 달랐다. 이란전 연패를 비롯해 크로아티아전 대패, 레바논전 무승부 등으로 최 감독은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최강희 감독은 한국을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앞서 공언한 대로 2013년 6월, 전북으로 복귀했다.

최 감독이 팀을 떠난 사이 전북은 리그 8위까지 떨어지는 등 헤매는 모습이 역력했다. 전북 팬들이 ‘봉동이장이 돌아왔다’며 그를 환영한 이유였다. 그리고 최강희 감독은 복귀 직후 빠르게 팀을 수습했고, 팀을 리그 3위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다시 만난 최강희 감독과 전북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이듬해 김남일 한교원 등을 영입하면서 전력 보강에 나선 전북은 리그 조기 우승을 확정, 3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시즌 내내 공격적이었던 닥공 전술은 K리그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15시즌에도 전북의 질주는 계속됐다. 4월 1위 자리에 오른 이후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조기 우승을 확정했다. 지난 2001~2003년 성남일화 이후 13년 만에 2년 연속 리그를 제패한 팀이 됐다. 시즌 중 에두의 이적, 다른 팀들의 집중 견제 속에서도 굳건하게 지켜낸 왕좌였다.

우승이 확정된 직후 최강희 감독은 “전북만의 문화와 정신, 희생하고 헌신하고 애정을 갖는 분위기를 노장 선수들이 만들어줬다. 선수들이 헌신해줬기 때문에 우승할 수 있었다”면서 선수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그는 아시아 정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명실상부한 전북 왕조를 세운 최강희 감독과 전북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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