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영웅이 역적으로 추락했다. 2014년 6월은 그의 인생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한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축구인하면 항상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갔던 그는 단 3경기 만에 무너졌다. 그렇게 홍명보(46)는 잊혀져갔다.

2014년 6월 월드컵의 그날이 벌써 까마득하다. 그렇다. 시간은 모든 것을 잊히게 만든다. 벌써 1년 반이 다 되간다. 이제 그만 대중들도 홍명보 감독을 용서했으면, 그리고 홍명보도 감독이든 행정가든 어떠한 형태로라도 돌아오길 바란다. 그 역시 한국축구의 몇 안 되는 소중한 인재이기 때문이다.

지난 8일이었다. 흥미로운 소식이 국내 축구계에 전해졌다. 소식의 근원은 일본발. 일본 스포츠지 스포츠 호치는 "알비렉스 니가타가 감독 후보에 홍명보와 올 시즌 마츠모토 야마가 FC를 이끈 소리마치 야스하루 감독을 올려놓았다"고 전했다. 알비렉스 니가타는 국가대표 왼쪽 풀백인 김진수가 호펜하임 이적전의 친정팀이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홍명보 감독이 2014년 7월부로 A대표팀 사임 이후 특정팀의 감독 후보로 언론에 이름을 드러낸 것이 사실상 처음이었다. 물론 이전부터 홍 감독이 다시 복귀해야한다는 여론은 형성됐었다.

2014년 7월 당시 당시 홍 감독의 사퇴는 충격이었다. 2002 한일월드컵의 동료였던 서울 최용수 감독도 "홍 감독님의 사퇴 기자회견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한국 축구사에 큰 슬픈 날로 기억될 것이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렇게 밝고 당당하게 많은 걸 내려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당시 사임 기자회견을 지켜본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사퇴는 당연했다. 홍 감독 스스로 월드컵전부터 많았던 잡음에 대해서 "결과에 따라 처신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었고 1무2패라는 처참한 성적과 좋지 못했던 과정을 책임져야했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유임으로 가닥을 잡다 결국 홍 감독의 사임을 받아들이면서 지도부 대거 동시 사퇴라는 초유의 결단을 내려야만했다. 그만큼 2014 브라질 월드컵은 한국 축구사에 가슴 아픈 사건이 됐다.

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추호다 홍 감독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분명 사퇴는 당연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했고 과정에서 아쉬움을 많이 노출한 홍 감독이 책임을 지는 것이 옳았다. 그럼에도 홍명보는 다시 돌아와야한다.

홍명보가 누구인가. 현역 시절 말이 필요 없는 한국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였다. 현재까지도 홍명보만큼 뛰어난 리더십과 수비능력을 지녔던 선수는 비견할 선수조차 없을 정도다. 현재까지도 조금만 괜찮은 수비수가 나오면 '제2의 홍명보'라는 별명이 붙는 것은 일상이다. 게다가 그는 한국축구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장'으로서 역사를 써내려갔다. 그의 현역시절은 위대함 그 자체였다.

은퇴 후 행정가가 될 것으로 보였던 홍명보는 2006 독일 월드컵-2007아시안컵-제니트 코치 등을 거치며 코치로서도 경험을 쌓은 후 2009 U-20월드컵의 감독으로 8강 신화의 기적을 쐈다. 지금 봐도 크게 대단할 것 없던 멤버로 만든 놀라운 성과였다.

이어지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아쉬운 동메달로 잠시 부침을 겪었지만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 획득이라는 기적으로 전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즉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인 2002 한일월드컵 4강-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중 두 대회가 모두 홍명보가 일궈낸 성과다.

단 한 번의 실패(물론 큰 실패였지만)만 아니었다면 홍명보는 아마 한국 축구사에서 '신'으로 여겨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홍명보는 대단한 일을 해냈고 결과로 보여줬다. 월드컵 전까지.

대한축구협회 제공
즉 그는 능력이 있다. 물론 결함도 있지만 그는 한국 축구사에 몇 안 되는 엄청난 성과와 지도력,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다. 그런 그가 1년하고도 반이 넘어가도록 사실상 '무직(홍명보 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여전히 그가 활용될만한 곳이 있는 것이 축구계다.

부담 된다면 한국 축구계가 아니어도 된다. 그가 선수시절 오랜 시간을 보낸 일본축구든 어디든 그를 찾는 곳은 존재한다. 홍 감독이 '감독'으로서 최대 약점을 지닌 것은 그가 단 한 번도 프로팀의 감독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표팀과 프로팀은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오랜 기간 대표팀을 해왔으니(2009년부터 2014년까지) 프로팀에서 새출발을 하며 다시 감독으로서 자신의 지도력을 검증받고 부활을 꿈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꼭 감독이 아니어도 좋다. 행정가로서도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다. 아직 충분히 젊고 아시아 전역에서 홍명보의 명성은 여전하다. 이러한 명성과 감독으로서도 뚜렷한 커리어가 있는 것이 행정가로서도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여전히 감독이든 행정가든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현역'의 나이(1969년생)이며 인재(人才)다.

물론 본인도 충격이 컸을 것이다. 단순히 '축구'로 비난받는 것을 넘어 그 이상으로 사적으로까지 큰 비난이 가해졌고 이는 홍 감독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홍명보와 같은 인재가 지나치게 많이 쉬는 것도 한국 축구, 세계 축구계에 큰 마이너스다. 홍 감독이 쉬는 동안 비슷한 또래인 황선홍, 최용수, 최진철 감독 등은 뚜렷한 성과로 더 큰 감독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홍 감독도 침묵을 깨고 움직일 때다.

물론 홍명보를 받아들이기에 우리도 준비가 안됐을 수도, 홍 감독도 대중에 설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1년 반이 다되어간다. 시간은 많은 것들의 무게감을 줄여준다. 덜어진 무게감만큼 양 측도 조금은 밝은 미소로 서로에게 다가갔으면 한다. 홍명보는 여전히 축구계의 크나큰 인재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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