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미련 없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최선의 노력을 다해 도전하는 그 과정만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과정 자체로 존중받아야하죠. 성공 가능성이 없으면 도전하지 말라는건가요? 그것이 내 답입니다."

결과주의, 성과주의로 이 기획을 평가하면 분명 실패다. 하지만 왜 우리는 결과주의로 모든 사물을 바라봐야 하는가. 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혹은 미래가 불확실하더라도 과정 자체로 존중받아야하고 결과보다 과정이 더 주목 받는 시선이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이하 청춘FC)'이다.

청춘FC 포스터. KBS제공
지난 10월 23일 총 16부작으로 KBS2TV에서 토요일 밤 11시에 방영되던 청춘FC는 종영됐다. 안정환-이을용이라는 스타출신의 감독 아래 좌절을 겪은 아마추어선수들을 모아 한 팀을 꾸린다는 발상 자체로 신선함을 가져왔던 청춘FC는 주목도도 컸고 말도 많은 프로그램이었다. 연세대학교 졸업 후 1997년 KBS 입사이래 '날아라 슛돌이', '천하무적 야구단' '1박2일',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을 연출한 후 이번 청춘FC를 총괄한 최재형 PD와 인터뷰를 통해 종영 후 소감과 프로그램에 대한 소회, 논란들에 대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눴다.

▶웃기길 포기한 예능, '사람'에 초점 맞춰 '공감'을 얻다

그래도 엄연히 예능프로그램으로 분류된 청춘FC다. 그러나 최 PD는 "애초에 웃기는 거에 생각이 없었다"며 단호하게 얘기한 뒤 "다른 예능과 재미의 포인트가 달랐다. 내 옆에 사는 사람들의 얘기만으로 충분히 재밌을거라고 생각했다. 우린 '공감'이 중요했고, '공감이 있다면 볼 것이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은 팀을 꾸리면서 16부작으로 종영된 것에 다소 놀라워 한다. 팀이 꾸려진 상황에서 끝이 있다는 것에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저흰 처음에 16부작으로 생각하고 기획에 들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종영에 대해 얘기하기에는 문제가 있었죠. 방송국 사정상 시청률이 안 나오면 조기종영 될 수도 있는거고, 방송국 쪽은 12부작을 원했는데 잘되니까 그나마 계획대로 16부작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감독들에게도 얘기했고, 선수들에게도 공지했던 사항입니다."

청춘FC를 연출한 최재형 PD. KBS제공
청춘FC가 고무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국내 평가전을 가질 때 많게는 8,000여명, 적게는 3,000여명의 관중이 몰렸다는 점이다. 부족한 실력에 선수 중 스타도 없는데 국가대표에 인기가 편중되어 있는 국내 축구 환경상 놀라운 관심도였다. 이는 분명 관중유입에 고심하는 프로축구연맹이나 스포츠 마케터들에게 자극이 됐을 것이다.

"결국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청춘FC와 우리가 맞붙은 팀의 차이는 관중들이 올 때 청춘FC 선수들의 스토리를 안다는 겁니다. 그걸 알고 찾아오니 승패보다 공감과 재미를 찾게 되죠. 이기고 지고가 아닌 축구선수도 '인간'이라는 것에 접근하는 시선의 차이였죠. 저희가 어느 정도 '힌트'를 줬을 겁니다. 물론 금방 바뀌기는 어렵죠. 연맹에서 구단, 선수, 팬, 기자까지 모두가 바뀌고 노력해야 하는 일이죠."

▶안정환 감독, 적임자인지 의심해본 적 없어

프로그램 내내 가장 화제를 끈 것은 역시 안정환의 존재였다. 이을용, 이운재와 함께 선수들을 지도하고 멘토의 역할을 하면서도 투박하고 까칠한 매력에 많은 이들은 열광했다.

"안정환 감독에게도 도전이었죠. 안 감독은 선수로서 말할 것도 없지만 프로와 대표팀 코치를 할 수 있는 A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사람입니다. 전 1.기술적 지도자, 2.정신적인 멘토, 3.선수 이후 삶의 모범, 4.저 사람이 말하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신뢰성, 5.오염되지 않은 사람을 원했습니다. 그렇게 치면 별로 없었어요. 그렇게 찾다 보니 저희가 순번을 정하기보다 후보자가 되는지 안 되는지가 중요했죠. 적임자인지 의심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챌린지 논란, 스포일러라도 챌린지 알리고 싶었다

청춘FC가 가장 난관에 부딪친 건 공교롭게도 프로그램 말미였다.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선발팀과의 자선경기를 끝으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한창 시즌 중이던 챌린지리그의 선수들을 경기를 위해 끌어 모은다는 것에 축구 팬들은 분개했다.

"사실 맥 빠진 경기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경기는 청춘FC 방송이 되기도 전에 이미 생중계가 됐습니다. 대놓고 프로그램 스포일러가 된거죠. 그렇지만 전 딱 한번 남은 평가전 기회인데 챌린지의 잘하고 있는 선수들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몇몇 팀의 제안은 있었죠. 하지만 청춘FC와 어쩌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것이 챌린지이고 거기서 잘하는 선수들을 한 명이라도 더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한 결과입니다. 한국 축구가 클래식(1부리그)만 잘한다고 되는게 아니잖아요. 양쪽 다 얻을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챌린지 선수들 정말 잘하지 않던가요. 화내셨던 분들도 '챌린지 리그의 발전'을 생각한다는 기본 목적이 같으니 오해가 풀릴 거라고 믿습니다."

논란이 많았던 청춘FC와 챌린지 선발의 경기전 모습. 프로축구연맹 제공
▶결과주의로 바라보지 말라…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사회

프로그램 종영 후 몇몇 이들은 '결국 저 선수들에게 희망고문만 한 거 아니냐'며 다시 냉정한 사회로 돌아가야 하는 선수들이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해 묻는다.

"전 묻고 싶습니다. 꼭 무언가 되어야 하나요. 어떤 과정과 도전을 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험을 붙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그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도 얻는 게 있습니다. 그럼 성공하지 못 할거면 도전하지 말라는 건가요. 누군가 축구선수의 길을 가다 장애물에 걸려 경력단절의 위기를 맞았지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 프로가 될 수 없겠죠. 다시 집에 돌아가 아버지 일을 도우며 살겠죠. 그것이 잘못되고 나쁜 건가요. 미련을 남겼던 축구에 미련 없게 남들보다 더 열심히 도전했어요. 몇 개월 만에 살이 20kg가까이 빠졌어요. 모두가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만 있어야 합니까."

지나치게 이상적이었고, 결과를 보장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최 PD는 단호하게 결과주의로 사물을 인식하지 않았음을 말함과 동시에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사회를 갈구한 자신을 고백했다.

"누구는 프로로 뽑혀 가는 걸 결말로 했다면 나머지는 실패자인가요. 성공하지 못할 애들을 데려가 왜 도전시켰냐고 뭐라고 한다면 전 그렇게라도 다시 도전하게 해줘야 한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2등이면 어떻고 3등이면, 꼴등이면 어떤가요. 그 삶이 의미가 없나요. 요즘 젊은 세대가 '답이 없어 보인다'고 느끼는거 같아요. 그러면 사회가 건강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제 애가 중학교 3학년인데 만약 사춘기 때 탈선 좀 한다고 해서 걔 인생이 결정되지 않길 바랍니다. 하지만 현재 사회는 삐끗하면 낙오고 역전의 기회가 없어요. 역전의 기회를 주는 시스템이 있는 사회 이길 바래요. 죽도록 노력한다면 역전의 기회, 두 번째 기회를 줄 수 있는 모습을 청춘FC로나마 보여주고 싶었던 것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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