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고등학교 1학년 때 난 수원 삼성에서 볼보이를 했다…(중략) 고려대를 가고 싶었지만 자격요건이 적어도 청소년 대표를 한두 번 정도는 했어야 하는데 난 그 아래 단계인 학생 대표도 한 번 해보지 못했다. 지원 자격 자체가 안됐다.”

지난 2월 발간된 박지성(34)의 선수생활을 총정리한 자서전 ‘박지성 마이스토리(한스미디어)’의 한 구절이다. 현재는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여겨지는 박지성의 학창시절은 초라했다. 나름 ‘차범근 축구상’도 받고 자신의 중학교를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으로 이끌었어도 그의 왜소한 체격과 큰 특징 없는 경기력에 많은 스카우터들은 외면했다.

박지성은 고려대 진학을 목표로 했지만 아예 지원 자격이 되지 않을 정도였고 수원 삼성에서 볼보이를 했지만 연고지명에서 수원이 자신을 지명해주지 않자 속상해하며 불안한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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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스토리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전 국민이 익히 알고 있다. 그는 현재 차범근과 함께 한국 축구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오죽하면 2007년 ‘한국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인물(시사저널 조사)’에서 1위 세종대왕, 2위 이순신, 3위 김구 등에 이어 8위(3.7%)에 올랐을 정도다. 2015년 조사에서는 존경하는 스포츠인 2위(1위 김연아)에 뽑혔다.

박지성의 17세 시절을 떠올려보면 이번 FIFA U-17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선수인가. 전국민이 아침 내내 자신들을 주목했고 자신들이 이뤄낸 성과(FIFA주관대회 최초 조별리그 2연승, 조기 16강 확정)는 한국 축구사를 바꿔놓았다. 한국 나이로 고등학교 1학년, 2학년들이 이미 역사를 새로 썼고 몇몇 선수들은 상당히 많은 국민들이 자신들을 알아볼 정도가 됐다.

물론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 패하며 분한 마음과 더 잘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눈물이 나올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칠레에서 전국민이 지켜보는 경기에서 뛴 것 자체가 커다란 축복이었고 그 나이대 아무나 해볼 수 없는 큰 자산이었다.

한국인이 자랑스러워하는 박지성도 그 나이대 감히 꿈꿔보지도 못했던 일을 이미 해낸 선수들에게 미래는 더욱 밝다. 박지성도 해보지 못한걸 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U-17대표팀으로 참가했던 선수들은 정체되지 말고 이 단계에서 한 단계 더 알을 깨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할 것은 같은 나이대에 축구를 하고 있지만 이번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고 자책하거나 마냥 부러워하고 있을 선수들이다. 박지성의 사례만으로 부족하다면 종목은 다르지만 한국 농구계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과 리바운드를 해낸 서장훈(41)의 예에서도 희망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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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훈은 중학교 때까지 팀내 베스트5에도 들지 못했던 후보 선수였다. 실력도 부족해 전술훈련을 하지 못하고 매일 드리블 연습과 슈팅 연습밖에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그것이 후에 밝히지만 누구보다 더 탄탄하게 기본기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후 서장훈은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통산 최다득점(13,231점), 통산 최다 리바운드(5,235리바운드)의 대위업을 달성했다.

박지성 역시 수원공고 시절 이학종 감독의 지도를 받아 축구의 기본기와 움직임의 자세 등을 차례차례 지도받으며 축구에 눈을 떴다고 고백했다.

즉 학창시절은 아직 선수로서 기본기를 다지며 성인 무대를 향한 기반을 준비하는 시절인 것이다. 지금 당장 잘하고 대표팀에 뽑혔다고 해서 무조건 프로에서 스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대표팀이 아니라고 영원히 대표팀에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현재 축구를 하는 것이 모두 성인이 돼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니 마지막에 웃는 것을 꿈꾸며 현재 땀 흘리면 된다.

8강에 나가지 못했다고 울지 말고, 현재 내가 저 무대에 없다고 울지 말라. U-17선수들은 동나이대 최고의 경험을 했기에 앞으로 더 잘해나갈 자산을 얻은 것이고,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선수들은 박지성도 17세 때는 볼보이에 지나지 않았던 일을 가슴 깊이 새겨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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