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여기 한 소년이 있다.

그 소년은 꿈을 좇아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10대의 나이에 유럽 최고 팀들의 문을 두드렸고 결국 ‘유스 시스템의 정수’로 여겨지는 네덜란드 아약스에 동화 같은 스토리 속에 입단한다. 루이스 수아레즈 경쟁했고 지안루이지 부폰을 위협하던 때도 잠시, 스스로 ‘철이 없었다’고 회상하던 다소 거만했던 시기를 경험하고 반강제적으로 돈을 쫓아 사우디아라비아리그에서도 뛰었다.

그렇게 ‘그저 돈을 벌기위해’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 중 하나로만 잊히는가 했던 그는 다시 유럽으로 복귀했고 지난 시즌 차범근, 설기현, 박지성, 박주영, 손흥민만이 해냈던 유럽에서 두 자리 숫자 득점을 해냈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시즌 시작과 동시에 3경기 3골 1도움으로 맹활약하며 무려 5년 만에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역경을 딛고 다시 태극마크를 단 유망주의 얘기만으로 석현준(24·비토리아 FC)이 앞으로 더 성공해야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석현준이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돈’ 쫓는 선수들… 한국 축구에 과연 발전적 방향인가

한 에이전트는 말한다. “요즘 선수들은 돈을 너무 쫓는다. ‘도전 의식’보다는 그저 돈에 휘둘리는 것 같다”고. 실제로 유럽 빅리그에서 제의가 있어도 현 소속팀에서 더 많은 금액을 보장하기에 수준이 낮더라도 그 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봤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축구는 일명 ‘엑소더스(대탈출)’로 몸살을 앓았다. A급 선수는 물론 준척급 선수마저 중동과 중국으로 돈을 따라 이적하며 국내 축구의 가장 큰 화두로 지적되기도 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선수 개인의 ‘선택의 자유’와 ‘프로는 돈이다’라는 논리를 언급하기도 한다. 또한 차라리 K리그가 아프리카나 벨기에, 네덜란드 리그처럼 ‘셀링 리그화’에 앞장서야한다고 말한다.

충분히 일리는 있다. 하지만 아프리나카나 벨기에, 네덜란드는 선수들이 팔려가더라도 유럽의 수준 높은 상위리그로 가기에 팔려나간 선수들의 수준이 쇠락할 틈이 거의 없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수준이 비슷하거나 떨어지는 중동 혹은 중국으로 대거 이탈하기에 그 선수들의 기량은 해당 리그에서 오래있을수록 기량 하락이 필수적으로 따라온다.

실제로 중동 혹은 중국으로 가기전만해도 대표팀의 미래를 책임질 것으로 보였거나 혹은 붙박이였던 선수들이 어느새 대표팀에 소집조차 잘 되지 않는 사례는 굳이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즉 거시적으로 생각할 때 무자비한 중동&중국 러시는 분명 한국 축구의 발전에 저해된다. 실제로 중동&중국에서 유럽리그로 진출한 사례는 전무하다.

바로 ‘석현준’을 제외하고.

▶석현준의 사우디 탈출 스토리

석현준은 포르투갈의 마리티무에서 14경기 4골로 좋은 활약을 하다 홀연히 2013년 7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아흘리로 떠나게 된다. 지난 6월 스포츠한국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석현준은 “솔직히 그때(사우디) 돈을 많이 벌었다”며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부를 누리며 제 자신을 멋 내는데만 신경썼다”고 고백할 정도로 사우디행으로 그는 큰 재정적 이익을 얻게 됐다.


사우디에서 뛰던 당시의 석현준 모습. 중계화면 캡처

하지만 그곳에서 부상을 당하고 좀처럼 몸상태가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도 3년 계약이나 했으니 그저 경기에 못나오더라도 3년을 모두 채우면 축구 선수 이후의 삶이 충분히 안정될 정도로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돈이 많아 세상의 모든 것을 누려도 결국 축구를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을 발견했다'고. 축구 팬들이 ‘중동에서 뛰는 석현준’이 아닌 ‘유럽에서 뛰는 석현준’으로 알아주길 바랐다고.

그렇게 그는 1년도 채우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를 ‘탈출’했다. 정확한 금액은 밝히기 힘들지만 스스로 ‘진짜 많이 깎고 나왔다’고 언급할 정도로 엄청난 연봉 인하를 받아들이고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왔다. 그때를 회상하며 석현준은 “돈이야 나중에 잘해서 벌면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물론 나중에 진짜 잘 벌어야한다”라며 웃었지만 결코 눈앞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한 선택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과연 당신이라면 향후 미래가 보장된 금액이 눈앞에 있는데 불확실하고 성공해도 얻는 이득이 과연 얼마나 클지도 모르는 허울 좋은 '도전'을 택할 수 있을까.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 석현준이 주는 울림

사우디를 나오며 깨달음을 얻은 석현준은 달라졌다. 사우디를 나오자마자 유럽에서도 7대 리그에 손꼽히는 포르투갈에서 40경기 10골(2014~2015시즌)을 넣으며 대표팀 재발탁의 초석을 닦았다. 현재 그는 포르투갈 내에서도 가장 ‘핫’한 공격수로 주목을 받고 있고 수많은 클럽들의 레이더망에 들어오고 있다. 또한 8월 31일 소집된 울리 슈틸리케호에서도 아시아 최고 이적료를 경신하고 EPL 토트넘으로 이적한 손흥민만큼이나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다.

물론 석현준이 사우디에서도 맹활약을 했을지도 모른다. 마침 타이밍만 맞았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건 석현준은 스스로 밝혔듯 당장의 ‘돈’을 쫓기보다 ‘꿈’과 ‘기량 향상’을 쫓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선택을 했기에 5년 동안 결코 닿을 수 없었던 태극 마크를 사실상 무명에서도 자신의 실력만으로 태극마크를 달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즘 사회는 ‘도전 의식이 없다’는 푸념이 많이 들린다. 그만큼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고 안정적인 직업의 대명사인 공무원은 연일 그 최고 경쟁률을 경신하고 있다.

아직 석현준에게 ‘성공’을 말하긴 이르다. 사실 이번 대표팀 발탁도 ‘붙박이’라기보단 ‘테스트’의 개념이 크다. 그렇기에 석현준이 더 분발해야 한다. 부담주고 싶진 않지만 석현준이 이 타이밍에 더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도전 의식’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다른 선수들, 그리고 축구 팬이자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안정’을 외치는 상황에서 ‘도전’을 홀로 외치기 쉽지 않다. 게다가 포기하면 잃는 것도 많고 성공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석현준의 도전은 성공가도에 바퀴를 올렸고 그런 그가 더 성공해서 많은 이들에게 도전의 가치와 울림을 전해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 것이 틀린 길을 가지 않았음을 보여줘야한다.

사진=김봉진 인턴기자,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