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해야할지도 모른다."(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
"강정호가 정말 메이저리그에서 뛸 준비가 됐나?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미들 인필더로 뛸 수 있지만 매일 그 자리를 소화할 수 있는지는 의문." ( DK 피츠버그 스포츠)

지난 3월 피츠버그 지역지의 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대한 평가다.

"강정호가 올해의 신인왕 수상의 중요한 기회를 맞았다." (CBS 스포츠)
"모두 조용하고 강정호를 주목해." (팬그래프 닷컴)

그리고 이 문구들은 5개월이 지난 8월 미국 언론의 강정호에 대한 평가다. 단 5개월 만에 상황은 극적으로 변했다. 상황이 변하며 사람의 입지도 그만큼 변하기 마련이다. 어느새 강정호는 올려다 보는 `을(乙)'의 입장에서 내려다 보는 `갑(甲)'으로 변했다.

불과 5개월 전만해도 '어떻게 강정호가 이들을 넘을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던 상황이 '과연 그들이 강정호를 넘을 수 있을까'로 달라졌다. 강정호와 유격수 조디 머서, 3루수 조시 해리슨의 그 미묘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굳건해보였던 머서-해리슨의 입지

사실 강정호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만 해도 머서와 해리슨은 일명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 벽의 줄임말)'이었다.

머서는 메이저리그 유격수로 2012시즌 데뷔 후 2013,2014시즌 모두 피츠버그 주전으로 나서며 이미 자리가 굳건했다. 해리슨은 2011년 데뷔 후 성장이 더딘 듯하다 지난 시즌 올스타전 MVP투표 9위까지 오를 정도로 '빵' 터지며 입지를 다졌다.

사실상 팀 핵심 선수인 닐 워커가 버티는 2루수는 힘들다고 하면 강정호가 주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곳은 3루수나 유격수였는데 이마저 경쟁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스프링캠프 18경기 타율이 고작 2할에 출루율은 2할8푼으로 3할도 넘지 않는 못하며 부진했던 강정호였다. 부족한 수비는 타격으로 메울 것이라는 기대도 벗어났고 애초에 부정적이었던 수비 역시 특출난 모습은 없었다.

점점 간격을 좁히던 강정호에게 기회가 찾아오다

시즌 초반은 3루수 해리슨-유격수 머서의 고정 체제에 강정호가 가끔 대타나 대수비를 나오는 정도였다. 그러다 두 선수에게 휴식을 줘야할 때 강정호가 나왔고 이때 강정호는 기대에 부응했다. 반면 해리슨과 머서는 초반 극심한 타격 부진(해리슨 5월 중순 타율 0.173까지 추락, 머서 5월까지 타율 0.192)을 겪는 사이 강정호는 5월까지 타율 2할9푼1리로 날아 다녔다.

자연스레 강정호의 출전 기회가 늘면서 두 선수는 나름의 방도를 찾아 버텨나갔다. 머서는 강정호보다 나은 '유격수 수비력'으로, 해리슨은 '멀티 포지션(2루수 혹은 외야수)'이라는 카드로 강정호에게 밀리지 않았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세 선수는 결국 중대한 순간을 맞는다. 바로 7월 초 일어난 머서-해리슨의 연쇄 부상이다. 각각 무릎과 손가락을 다친 머서와 해리슨은 부상 회복에 들어갔고 한 달이 지나 12일(한국시각)이 돼서야 겨우 마이너리그 재활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정도가 됐다. 그동안 강정호는 7월 내셔널리그 이달의 신인상을 거머쥐는 맹활약을 하며 판세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젠 머서-해리슨이 눈치 봐야 하는 상황

일단 머서와 해리슨은 마이너리그에서 약 2~3주 가량의 재활 경기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빠를 경우 8월 안에 복귀도 가능할지 모른다.

예전 같으면 피츠버그는 좋을지라도 강정호에게는 비보일지도 모르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예전의 강정호는 주전 선수가 돌아오면 다시 자리를 내줘야하는 그저 `넘버2' 옵션이었다. 하지만 이달의 신인상을 따내고 후반기 메이저리그 WAR(대체선수이상의 승수) 야수 전체 8위(1.5-12일까지)에 전체 신인 중 WAR 1위에 오르는 등 맹활약을 하다 보니 팀도 그를 보는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됐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 해서든 빨리 복귀시키고 싶어 안달 났을 클린트 허들 감독은 "빅리그에 복귀할 준비가 됐다는 증거와 느낌이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만큼 강정호가 그 자리를 완벽하게 메우고 있기 때문.

만약 두 선수가 완벽한 몸상태로 돌아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강정호는 과연 유격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이것은 유보적이다. 이유는 일단 아무리 그래도 유격수는 '수비가 우선'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강정호도 잘하지만 유격수 수비만큼은 머서가 좀 더 낫다.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한 점차 승부가 중요해지는 순간에 유격수 수비력은 더 중요해지기에 머서의 존재는 필요하다.

하지만 강정호에게는 그전에 봤고 사실 유격수보다 더 많이 뛴 3루수(3루수로 58경기 출전, 유격수로 38경기 출전)가 있다. 3루수로 돌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래 주전 3루수인 해리슨의 자리가 곤란해진다. 하지만 해리슨은 2루수, 유격수, 3루수, 외야수 모두가 소화가능한 선수이기에 장타율이 4할도 안 되는(0.379) 우익수 그레고리 폴랑코와 경쟁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물론 타격을 중시한다면 강정호에게 계속해서 유격수를 맡기고 해리슨을 3루수로 두는 경우의 수도 있다. 이 경우의 수도 충분히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제 모든 플랜이 강정호를 중심으로 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팀 입장에서도 많은 금액을 주고 데려온 강정호를 주전으로 쓰는 게 합당하며 마침 활약도 최상이다. 이렇게 뛰어난 선수를 굳이 제외해야할 이유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들이 일반적으로 제 기량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강정호 중심의 내야진 재편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경쟁자로 여기고 넘사벽처럼 느껴졌던 머서와 해리슨이 이제 강정호의 눈치를 보게 됐다. 단 5개월 만에 일어난 통쾌한 역전극은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짜릿한 '갑질'의 쾌감일지 모르겠다.

사진=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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