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팀의 베테랑 선수를 메이저리그에서 커리어를 쌓은 선수를, 왜 굳이 이런 방식으로 대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제가 좌투수 상대로 성적이 좋지 않아서 빠지는 거라면, 그런 단순 논리라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단순 논리만 있는 걸까요."

추신수(33·텍사스 레인저스)가 뿔났다.

대놓고 제프 배니스터 감독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자신의 온라인 일기를 통해 플래툰 시스템(우투수 상대로 우타자, 좌투수 상대로 좌타자를 제외시는 전략)에 자신을 적용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과연 이 같은 추신수의 불만은 그저 출전 시간을 늘려달라는 떼쓰기일까, 아니면 정당한 요구일까.

추신수는 9일 한 포털사이트에 연재하는 일기를 통해 노골적으로 배니스터 감독의 용병술에 불만을 드러냈다.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 이 일기에서 이토록 특정 인물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것은 이례적이기에 더욱 눈길을 끈다.

이날 시애틀전에서 상대 선발로 좌투수가 등판한 탓에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등 최근 좌투수가 나오는 경기에 계속해서 선발에서 제외된 추신수는 자신의 좌투수 상대 타율을 거론하며 "후반기 들어 좌투수 상대로 3할5푼3리, 출루율은 4할7푼6리다. 올스타 휴식기 이후 제 성적은 꾸준히 올랐고 좌투수 상대로도 크게 나쁘지 않다"며 좌투수 등판 경기에 제외되는 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같은 베테랑 선수를 제대로 대하지 못하는 신임감독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해보자. 배니스터 감독은 추신수를 어떤 이유로 제외시켰을까.

추신수, 대표적으로 좌투수에 약한 좌타자

사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대표적으로 좌투수에게 약한 좌타자다. 통산 우타자 상대 성적(타율 0.298 출루율 0.399 장타율 0.502)은 일명 3-4-5(타율 3할 출루율 4할 장타율 5할)의 아름다운 중심타자 성적이다.

반면 좌투수 상대 성적(타율 0.236 출루율 0.330 장타율 0.339)은 '메이저리그 수비 1위'로 뽑아도 손색없는 유격수 안드렐톤 시몬스(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올 시즌 타격 성적(타율 0.255 출루율 0.321 장타율 0.332)과 비슷한 수준이다.

즉 우투수를 상대할 때는 중심타선의 이상향적인 타자이지만 좌투수를 상대할 때는 수비가 강점인 선수들의 타격 성적을 보이는 '지킬 앤 하이드'와 같이 이중적인 것.

추신수가 MVP투표 12위까지 올랐던 전성기였던 2013시즌조차 좌투수 상대로 타율이 2할1푼5리에 장타율이 2할6푼5리밖에 되지 않았다. 추신수의 좌투수 상대 성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저조해지고 있는 것.

게다가 올 시즌은 전체적으로 부진한 타격성적 때문에 역대 최악의 좌투수 상대 성적을 기록(타율 0.180 출루율 0.262 장타율 0.313)하고 있었다. 이 성적이라면 좌투수를 상대해서만큼은 메이저리그 레벨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수준이다(좌투수 상대 타율 메이저리그 전체 139명 중 133위). 이렇게만 보면 추신수의 불만은 '떼쓰기'로 여겨질 정도다.

추신수의 이유 있는 반론

이처럼 통산 성적, 나이가 들수록의 성적, 올해 성적 모두를 종합해도 배니스터 감독이 플래툰 시스템을 추신수에게 적용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추신수에게는 나름대로 항의할 이유가 있다.

본인도 언급했듯 추신수는 최근 성적만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최고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질주를 거듭했고 최근 28일간 추신수는 3할4푼의 타율에 출루율은 4할1푼9리, 장타율은 무려 6할6푼에 달했다. 그사이 아시아 선수 최초의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기도 했고 한 번도 없던 도루를 두 번이나 성공시키고 홈런도 3개나 때려냈다.

추신수 입장에서는 이 정도로 타격감이 올라와 있는데 자신을 기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해볼 수 있다. 게다가 후반기만큼은 추신수는 전혀 좌투수에게 약하지 않다(좌투수 상대 타율 3할5푼3리, 출루율은 4할7푼6리). 추신수는 '현재의 모습'만을 보면 자신이 타격감도 좋고 좌투수에게 전혀 약하지 않은데 계속 좌투수를 상대로 제외되니 답답할만도 한 것.

결과론적으로 배니스터 감독은 전체적인 모습에서 '추신수는 좌투수에게 약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추신수는 '최근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양쪽 다 일리는 있지만 추신수 입장에서는 '베테랑에 대한 예우'가 아쉬울 법 하다.

메이저리그만의 고액연봉자, 베테랑 예우법

KBO리그나 일본은 전통적으로 감독의 입김이 상당히 강하다. 감독이 선수기용을 좌지우지하고 선수 생명까지도 쥐고 흔든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감독의 역량이 그리 크지 않다. 단순히 선수들과의 기본적인 연봉차이부터 '프런트 야구'혹은 '단장의 야구'로 일컬어지는 메이저리그의 방식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단장이 선수를 데려오면 감독은 그 한정된 자원에서 선수를 활용하는 정도의 역할만 부여받는다. 선수 육성은 마이너리그 레벨에서 사실상 끝난다. 투수 교체나 대타 정도가 감독이 자율적으로 역량을 뽐낼 수 있는 곳이다(물론 영화 '머니볼'을 보면 빌리 빈 단장은 감독에게 투수 교체마저 자신의 취향대로 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최근 유행하는 수비 시프트마저도 단장이 어떤 방식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정도로 감독의 영향력은 미비하다.

몇몇 감독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해보려다 선수와 충돌하고 결국 자신이 해임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의 영향력이 미비한데 반해 팀내 고액 연봉자와 베테랑 선수들에 대한 대우가 확실하다. 고교시절까지만 국내에서 야구를 한 뒤 야구 인생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추신수라면 빅리그 데뷔 11년차 입장에서 어느정도 예우를 바라는 것이 당연지사.

추신수가 "아쉬운 부분은 팀의 베테랑 선수를 메이저리그에서 커리어를 쌓은 선수를, 왜 굳이 이런 방식으로 대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언급한 이유다.

더 놀라운 것은 배니스터 감독이 올해가 메이저리그 감독 첫해인 `초짜'라는 점이다. 7년 1억3,000만달러의 초고액 계약자인데다 메이저리그 11년차 선수를 초짜 감독이 압박하는 것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게다가 두 사람은 이미 지난 6월 일명 '글러브 줄 테니 감독님이 해봐라' 사건으로 한번 대립각을 세운 적이 있다.

이런 사건이 또 일어났음에도 배니스터 감독의 입지는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배니스터 감독이 프런트진을 등에 업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존 다니엘스 단장을 중심으로 하는 프런트진이 추신수를 압박하는 것을 용인했기에 배니스터 감독도 이처럼 추신수와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다.

추신수를 압박해 얻을 수 있는 것

텍사스 입장에서도 추신수를 대체할 자원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조시 해밀턴이 가세해 외야수 자원은 많아졌지만 레오니스 마틴이 부진하며 마이너리그로 내려갔고 대체로 올라온 라이언 스트라우스보거도 고작 겨우 마이너리거 딱지를 뗀 선수다. 초특급 유망주도 아니다.

추신수가 좌투수를 상대하지 않는 날은 마이너리그에서 좌투수 상대로 나쁘지 않은 성적(타율 0.306 출루율 0.356 장타율 0.492)을 거둔 스트라우스보거를 기용하거나 메이저리그 통산 좌투수 상대로 출루율은 3할을 겨우 넘는(0.305) 라이언 루아를 기용한다. 스트라우스보거의 성적은 고작 마이너리그에서의 모습이고 루아도 우투수를 상대로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추신수를 빼는 것은 그야말로 '압박용'일 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추신수를 압박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텍사스는 베테랑이면서 고액 연봉자가 많기로 유명한 팀이다. 그러나 팀성적은 겨우 5할 승률을 찍고 있을 정도다. 팀 입장에서는 팀 연봉이 많으니 포스트시즌은 나가야하는데 아직 LA 에인절스나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하기 벅차다. 결국 베테랑 선수들이 '돈값'을 해주는 수밖에 없다.

고액 연봉자 중 어쩌면 가장 만만한 것이 추신수인 셈이다. 활약 면에서, 입단 직후부터 부진한 성적 등을 고려하면 손쉬운 먹이감인 추신수를 압박해 다른 베테랑선수들에게도 '나도 저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심리적 부담감을 씌워주며 분발을 요구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없다. 또한 앞서 언급한 '압박용'의 의문 제기 역시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추신수는 좌투수에게 약해왔지만 최근에는 타격감이 살아나며 좌투수 상대로도 굉장히 좋다는 점이다. 그리고 본인은 꾸준한 출전 기회를 원하고 팀은 이에 반대되는 움직임을 조금씩 펼치고 있다는 것이고 여기에 절충안은 쉽게 찾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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