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한국은 긴 패스로만 일관했을 뿐이다. 우리에게도 득점 기회가 있어 이길 수 있었다." -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감독

"뛰면서 (한국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몸싸움을 걸어오는 상황이 몇 번 있긴 했지만 그렇게 위축될 정도가 아니었다." - 공격수 나가이 겐스케

축구에는 판정승이 없다. 그래서 다행인건 일본일지도 모른다. 만약 축구에 판정승이 있다면 1-1 무승부 후 만장일치로 한국의 승리에 손을 들어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자신들이 더 나았고, 한국은 별로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 저의는 정신승리일까 혹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 진심일까.

한국은 5일(이하 한국시각) 오후 7시 20분 중국 우한 스포츠 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동아시안컵 2차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장현수의 PK골에도 1-1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비록 무승부였지만 분명 일본을 압도했다. 이는 단순히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일본 축구의 최대강점으로 손꼽히는 점유율조차 한국은 66%를 가져가며 일본은 고작 34%만 지배했다. 슈팅 숫자는 10대5, 유효슈팅도 3대2, 하다못해 프리킥 숫자(한국 18, 일본 16), 파울 숫자(한국 13, 일본 15) 등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경기 내용에서도 충분히 나았다. 일본은 전반 31분이 돼서야 첫 슈팅을 날렸다. 그 슈팅마저 한국 수비진에게 막혔음을 감안하면 일본은 사실상 제대로 된 첫 슈팅이 골로 연결된 상당히 행운이 따른 경기를 했다.

이날 경기 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일본 감독은 공간 내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전체적으로 경기를 더 잘 풀어나갔다"고 언급한데 이어 "일본이 수비적으로 나와 우리에게 겁을 먹어서 뒤로 라인을 내렸다"고 표현했다. 이날 골을 넣은 장현수 역시 "일본이 겁을 먹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일본의 바히디 할릴호지치 감독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수비진의 활약이 괜찮았다. 경기 운영도 좋았다. 상대가 우리보다 체력적으로 강해 어려운 경기를 했다"면서도 "한국은 긴 패스로만 일관했을 뿐이다. 우리에게도 득점 기회가 있어 이길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날 공격수로 나온 나가이 역시 "(한국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몸싸움을 걸어오는 상황이 몇 번 있긴 했지만 그렇게 위축될 정도가 아니었다"고 표현했다.

물론 모든 일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듯하다. 마이니치 신문은 "이번 동아시안컵은 국내파의 역부족을 통감한 대회"라고 꼬집었고 카네다 노부토시(전 일본대표) 역시 "할릴호지치 감독이 이번 대회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자국 언론은 일본의 경기력에 대해 통감하고 있지만 감독과 선수는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일본은 중국과의 경기가 남아있다. 그렇기에 감독이나 선수가 지나치게 자기비판에 빠져 분위기를 망치며 남은 3일을 이끌고 갈 필요는 없다. 일부러라도 더 자신들이 더 잘했다고 자위하는 것이 차라리 중국전을 위해 낫다고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정신승리는 초라함을 남긴다. 그 초라함은 한때 아시아 최강을 자부하던 일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월드컵-아시안컵에 이어 동아시안컵까지 실패하게 되면 일본 내 축구인기는 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애서 정신승리라도 해서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심정일터.

행여나 할릴호지치와 나가이의 말이 정말 정신승리가 아닌 진심이었다면? 인정할 줄 모르는 일본 축구의 앞날이 더 캄캄한 가시밭길을 걸을 것이 자명하기에 한국으로서는 라이벌의 몰락을 보는 즐거움의 신호탄이면서 선의의 경쟁국을 침몰을 보는 안타까운 심정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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