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조형래 기자] 불법 스포츠도박, 그리고 승부조작의 망령이 어둠 속에서 다시 수면위로 고개를 들었다. 지난 5월25일 밤, 농구계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창진(52)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이 지난 2014-2015시즌 프로농구 자신의 전 소속팀이었던 부산 kt의 경기를 두고 불법 스포츠 도박을 벌인 혐의로 수사중이라고 발표했다.

개요는 이렇다. 전 감독이 사채업자로부터 3억 원을 빌린 뒤 지인을 통해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 직접 베팅을 하고 베팅으로 얻은 차익을 차명계좌를 통해 받았다는 혐의다. 직접 베팅과 더불어 전 감독이 이를 통해 승부 조작까지 가담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미 경찰은 5월 초에 전창진 감독에게 출금금지 조치를 취했고 전 감독의 베팅을 도운 것으로 알려진 지인 강모(38)씨 등 2명을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경찰이 밝힌 혐의 내용인 3억원의 베팅은 한 경기에서 이뤄진 것이다. 추후 보강 수사를 통해 베팅 금액은 불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경찰 측의 설명이다. 베팅이 이뤄졌다고 경찰이 주장하는 경기는 2014~2015시즌 kt의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의 5경기다. 5경기 전체에 대한 승부조작 여부는 확언하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승부조작까지 동시에 이뤄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지난 2013년 강동희 전 감독이 브로커들에게 4,700만원을 받고 주전대신 후보 선수들을 기용하는 방식으로 직접 승부조작을 실시해 징역 10월, 추징금 4,700만원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충격파 못지않은 전창진 감독의 이번 혐의다. 특히 강 전 감독 사건 조사가 진행중이던 당시 전창진 감독은 조사가 이뤄지는 의정부지검 근처까지 다녀올 만큼 강 전 감독의 사건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동부 시절 감독과 코치로서 한솥밥을 먹고 친형제 이상의 정을 나눴던 사이였기에 누구보다도 승부조작과 불법 스포츠도박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을 뼈저리게 느꼈을 전 감독일 것이다. 또한 전 감독과 농구 팬들의 반응은 싸늘함과 성토를 넘어 분노에 가득 찼다.

침묵 이후 반격의 드라이브를 거는 전 감독의 법률 대리인

그러나 사건이 세상이 알려진 이후 일체 대응을 하지 않았던 전창진 감독이 법률 대리인 법무법인 강남을 통해 입장을 표명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전 감독의 변호인 측은 “전 감독과 승부를 조작한 적이 없고, 불법 스포츠도박에도 거액을 베팅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구속된 강 모씨 등과는 오래전부터 지인 관계였지만 이들에게 전 감독이 베팅을 지시한 적은 없다는 주장이다. 변호인 측은 "전 감독이 지인이었던 강 모씨가 도움을 요청하자 사채업자에게 3억원을 대신 빌려줬다. 3억원이라는 금액이 단순 채무금액이었을 뿐 베팅으로 사용된 금액이 아니다"라고 항변하고 있다. 전 감독의 베팅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던 강 모씨등 지인 2명은 전 감독과 베팅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변호인 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은 전 감독의 베팅 이후 차익이 입금된 차명계좌의 유무다. 경찰은 이미 차익이 입금된 차명계좌를 증거물로 확보했다고 확언했다. 그러나 전 감독의 변호인 측은 차명계좌는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차명계좌의 존재가 경찰과 변호인 측의 진실게임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전 감독측은 의혹을 벗고 싶어 한다. 경찰 측에 하루 빨리 소환 일정을 통보해달라는 조사요청서를 제출했지만 경찰은 차분하게 증거를 더 확보한 뒤 전 감독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전 감독의 소환 일정은 6월 중순이 될 전망이다.

비탄에 빠진 농구계, 다른 프로스포츠도 안심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미 강동희 사건으로 충격을 겪은 KBL(한국남자프로농구연맹)이다. 농구계는 다시 한 번 비탄에 빠졌다. 지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영광을 채 1년도 잇지 못하고 다시 벼랑 끝에 몰렸다.

물론 그 사이 오심 논란과 KBL 수뇌부의 소통 능력 부재에 몸서리를 치고 많은 팬들이 등을 돌렸지만 이번 불법 스포츠도박과 승부 조작 의혹이 치명타로 다가오고 있다. KBL은 "전 감독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제명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라며 최고 수위의 징계를 내릴 것을 암시했다. 또한 KBL은 5월28일 경찰이 요청한 승부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5경기에 대한 자료를 제출했다. 여기엔 경기 스코어, 선수 교체, 골 등 경기 전반에 대한 기록을 분석한 내용이 담겨있다.

농구계가 비탄에 빠진 것은 당연하다. 당초 첫 보도 이후 유력한 혐의자로 지목됐던 SK 문경은 감독 역시 안타깝다는 반응을 내비친 바 있다.

이번 승부조작 일이 터지면서 농구 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포츠 역시 지난날 승부조작의 망령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K리그는 지난 2011년 브로커 7명, 선수 40명 등이 영구제명이 되면서 큰 홍역을 앓았다. 축구에 이어서 배구가 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2012년 V리그에서 남녀 통틀어 11명이 영구 제명을 당해 V리그의 인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또한 V리그에 초청팀 자격으로 참가했던 상무가 소속 선수들 대부분이 승부조작에 연루되자 V리그에 불참을 통보, 2011-2012시즌을 파행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KBO 리그 역시 박현준과 김성현이 첫 회 볼넷을 두고 불법 스포츠 도박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고 조작을 행한 혐의로 실형을 받고 영구 제명을 받은 바 있다.

경찰은 '전 감독의 케이스에 일단 집중하겠다'고 말하며 다른 종목으로의 수사까지는 당분간 이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전 승부조작 사건들을 토대로 보면 불법 스포츠 도박의 브로커가 여러 종목을 끼고 조작을 시도했던 정황이 있다. 이전 수사들 역시 축구를 시작으로 농구와 배구, 마지막으로 야구까지 수사가 이어졌다. 현재 농구계가 조사를 받는다고 다른 스포츠들까지 안심할 수 없다. 승부조작의 마수는 언제 어디서든 다가올 수 있다. 여전히 대한민국 프로스포츠는 안전하지 않다.

사진=스포츠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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