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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프로배구 `삼성화재 천하'가 20년만에 페이지를 넘겼다. 대전 삼성화재는 신치용(60) 감독을 단장 겸 스포츠구단 운영담당 임원(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임도헌(43) 코치를 후임으로 올렸다.

지난 20년간 신치용 감독은 늘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가 걸어온 길은 고스란히 역사가 됐고, 배구계는 물론 국내 프로스포츠 역사 곳곳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남겼다. 최정상을 호령하던 그는 이제 20년의 지난날들을 뒤로 한 채 물러난다.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삼성화재의 20년 천하, 그리고 16번의 우승

신치용 감독은 1980년 한국전력공사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국가대표팀 코치를 거쳐 1995년 9월 삼성화재 배구단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에는 반신반의하는 의견들이 많았다. 감독 역량에 대해 의구심이 뒤따랐다. 그러나 신치용 감독은 이듬해 팀을 한국배구대제전 2차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삼성화재 천하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국배구 슈퍼리그가 출범한 1997년부터 신치용 감독과 삼성화재가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화재가 우승컵을 독식했다. 8연패(連覇)였다. 이 과정에서 겨울리그 77연승이라는 ‘신화’도 썼다.

프로배구 출범 이후에도 삼성화재 천하는 계속됐다. 2005년 출범 이후 11시즌 동안 무려 8차례나 정상에 섰다. 외국인선수 제도의 도입이나 신인 드래프트에서의 불리한 지명 순위도 삼성화재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오히려 신치용 감독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팀의 프로배구 7연패의 대업까지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신치용 감독이 이끈 삼성화재는 늘 챔피언결정전 무대도 밟았다. 1997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19년 연속 우승컵이 걸린 마지막 경기를 치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우승컵을 상대에게 내준 것은 단 3차례에 불과했다. 실업리그와 프로배구 각각 8차례씩 우승을 거머쥐었다.

역사에 남을 진기록도 만들었다. 프로배구 7연패는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다 연패 신기록이었다. 삼성화재 지휘봉을 잡은 20년의 재임 기간도 김응룡 전 해태타이거즈 감독(18년)을 앞선 최장 기록으로 남게 됐다.

신한불란(信汗不亂), 삼성화재를 이끈 원동력

지난 20년의 영광은 신치용 감독의 철학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신치용 감독의 좌우명인 ‘신한불란(信汗不亂)’의 정신이 삼성화재에 깊게 뿌리내렸다. `땀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상을 지키는 것을 넘어 더욱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던 신 감독의 의지와도 맞닿아 있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의 지론이었다. 정상에 서고도 선수들에게 늘 기본을 강조했던 이유, 삼성화재가 혹독한 훈련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신치용 감독은 선수들에게 늘 기본을 강조했다. 훈련장에서는 선수들의 포지션과는 상관없이 리시브 훈련 등 기본기가 강조됐다. 생활면에서도 프로로서의 철저한 자기 관리를 요구했다. 기상 직후 체중을 측정해 컨디션을 체크했다. 음식섭취는 물론 휴대폰 사용에 대한 통제도 이뤄졌다. 오직 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요건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훈련도 남달랐다. 삼성화재의 훈련은 체력이나 전술 훈련이 중심이 되는 오전 훈련, 공을 가지고 하는 오후 훈련, 그리고 야간 훈련으로 스케줄이 구성됐다. 특히 그 강도가 다른 구단보다 세기로 유명했다. 신인들이 “운동을 하면서 이렇게 고통스러웠던 적은 처음”이라면서 혀를 내두른다는 산악훈련은 삼성화재의 대표적인 훈련이다.

신치용 감독은 이 과정에서 흘리는 땀의 의미를 굳게 믿었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실제로도 결실을 맺었다. 삼성화재를 최정상에 우뚝 올려놓은 원동력이기도 했다.

“몰빵배구? 이기기 위한 선택일 뿐”

물론 신치용 감독이 늘 박수만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 그들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외국인선수를 많이 활용하다보니 국내선수들이 소외를 받는다는 지적이었다. 이른바 ‘몰빵배구’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그 계보는 2007년 안젤코 추크(32·2007~2009년)를 시작으로 가빈 슈미트(29·2009~2012년), 그리고 레오(25·2012년~현재)로 이어졌다. 삼성화재가 전무후무한 프로배구 7연패를 달성한 것도 이들이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을 시기와 맞물려 있다.

이에 대해 신치용 감독은 “몰빵배구가 아니라 분업배구”라고 반박하면서 “시합이란 가장 잘하는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라면서 승리를 위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요컨대 각 선수들마다 가장 잘 하는 역할을 나누고, 상대적으로 공격력이 좋은 외국인선수를 활용하는 것이 '승리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의미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하던 외국인선수들을 국내 최고의 선수로 길러낸 신 감독의 육성 능력에 주목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몰빵배구의 계보를 이은 안젤코와 가빈, 레오도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이었다. 몰빵배구를 하더라도 삼성화재를 따라잡지 못한 다른 구단들이 되려 비난을 받기도 했다.

더구나 삼성화재는 매년 드래프트를 통한 젊은 선수들의 수급이 어려웠다. 전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진행되는 신인 드래프트 규정상 삼성화재는 늘 후순위로 밀렸기 때문. 신치용 감독 역시도 “매년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를 뽑기가 어렵다. 선수들을 데려와 길러내기가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화재는 지난 19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올랐고, 16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선수 수급의 어려움 속에서도 성과들을 일궈냈다는 의미다. 특정 선수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지적하기보다는 신치용 감독의 지도력에 먼저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행복했다” 명장의 마지막 소회

정든 코트를 떠나는 신치용 감독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영원히 한 자리에 머물 수만은 없다"면서 배구단 단장과 함께 축구단과 농구단까지 총괄하는 새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20년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떠나는 신 감독은 그 소회를 담담하게 밝혔다. 신치용 감독은 “떠날 때가 온 것이 아니겠나”라면서 “지난 20년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정말 행복했다. 그간 함께한 선수와 코치, 프런트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신치용 감독의 빈자리는 이제 그의 제자들이 메운다. 김세진(41) OK저축은행 감독을 비롯해 최태웅(39) 현대캐피탈 감독, 신영철(51) 한국전력 감독, 김상우(42) 우리카드 감독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신치용 감독은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그의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이 신 감독의 향기를 이어가게 됐다.

신치용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 : 1955년 8월 26일생 ▲태어난 곳 : 경상남도 거제 ▲신체조건 : 184cm, 88kg ▲가족관계 : 배우자 전미애씨, 2녀 ▲출신교 : 성지공고-성균관대 ▲주요경력 : 한국전력공사 코치(1980~1995), 국가대표팀 코치(1991~1994), 삼성화재 감독(1995~2015) 국가대표팀 감독(1999, 2002, 2008, 2010)

신치용 감독 우승 내역

▲한국배구 슈퍼리그 8회(1997~2004·8연패) ▲아시아선수권 2회(2001~02·2연패) ▲아시안게임 금메달 1회(2002) ▲프로배구 8회(2005, 2008~14·7연패) ▲한일탑매치 2회(2006, 2010) ▲KOVO컵(2006) ▲부산·IBK기업은행 국제배구대회(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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