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1초의 눈물', '1초 오심', '런던의 1초'… 그놈의 1초. 그녀의 이름 앞에 '1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지 어언 3년이 다 되어간다. 그래서인지 무엇을 하든 항상 안쓰럽고, 오심의 희생양이라는 틀 속에 가둬 우린 그녀를 바라봤는지 모른다. 그러나 '펜싱 에페 국가대표' 신아람(29·계룡시청)은 이미 런던의 악몽을 잊고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2016 리우올림픽을 위한 계단을 차근차근 올라가고 있었다.

혹독했던 겨울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따사로운 햇살로 가득했던 만우절,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신아람은 약 일주일전 헝가리 대회 우승의 영광은 이미 잊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펜싱이 뭔지도 몰랐던 키 작은 소녀의 늦었던 검객 도전기

신아람이 펜싱을 처음 접한 것은 중1 때. 본격적으로 선수로서 길을 걸은 것은 고1. 이른 나이에 시작해도 정상에 오르기 힘들지만 신아람은 상당히 늦게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활동적인 편이라 운동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는 잘하진 못해도 학교 육상부라도 들어갔으니까요. 충남 금산중학교로 진학했는데 육상부가 없고 펜싱부가 있더라고요. 그전까지는 펜싱이 뭔지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그래도 운동이 하고 싶어 선생님께 찾아가 펜싱부에 넣어달라고 했죠. 키 큰 애들 위주로 선수 선발을 했는데 전 반에서 3,4번째로 키 작은 아이였는데도 졸라서 겨우 들어갔죠."

졸라서 들어간 펜싱부였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후보에 머물며 어깨너머로 훈련을 배울 수밖에 없었던 것.

"전 중1,2 때는 경기 엔트리도 못 드는 후보였어요. 대회 나가면 음료수 나르는 게 제 임무였거든요. 할 줄 아는 게 없었어요. 딱히 관심도 못 받아서 전문적 교육에 대한 갈증이 있었죠. 공교롭게도 중3 때부터 같이 하던 친구들이 펜싱을 그만두면서 어부지리로 선발이 됐죠. 금산여고에 진학하면서부터 '하려면 제대로 해라'는 선생님 말씀에 체계적 연습과 합숙훈련을 통해 펜싱을 제대로 접했죠."

▶소중함 몰랐던 2006 도하 AG, 그 후 찾아온 2년차 징크스

고2 때가 돼서야 처음으로 '대회 우승'이라는 걸 해본 신아람은 20세가 되던 2006년 1월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당시의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신아람은 "올림픽 단체전 메달 땄을 때보다 좋았다"며 그때로 돌아간 듯 회상에 잠겼다.

"선수촌으로 입촌하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어요. 운동선수는 모두 태릉선수촌에 들어오는 게 꿈인데 '이제 나도 국가대표다'라는 생각에 뿌듯함이 컸죠."

대표팀 입성 초반에는 승승장구한 신아람이었다. 태극마크를 단 지 1년도 되지 않아 곧바로 단 2명만 나갈 수 있는 2006 도하 아시안게임 개인전까지 나선 것. 당시 신아람은 에페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내고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대표팀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에페 개인전에서 그녀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06년 당시에 얻은 것들을 그땐 너무 당연하듯이 받아들였어요. '이런 기회가 다시 오겠지'라는 생각이었죠. 지나고 나서 보니 절대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닌데 말이죠. 쉽게 얻었기에 쉽게 버려졌던 것 같네요. 2006년 이후 2년차 징크스가 찾아오면서 슬럼프에 빠졌죠."

▶2012년의 일, 다시 그때의 일과 감정이 떠올라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

그럼에도 신아람은 슬럼프를 이겨내고 다시금 돌아왔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나이적으로나 경험으로나 2012 런던 올림픽이 전성기였고 이때가 아니면 성과를 낼 수없다는 중압감이 컸기 때문이다.

“대표팀 중견급이었던 2012년에는 사실 부담감이 컸죠. 복귀하는 선수, 치고 올라오는 어린 선수 사이에서 ‘여태까지 올림픽위해 고생해왔는데 다 왔는데 못 나가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심리적으로 흔들렸죠.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가 제 전성기였던 것 같아요. 런던 대회 후에 은퇴까지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당시만 해도 펜싱은 전혀 한국의 메달 예상 종목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아람은 돌풍을 일으키며 4강까지 올랐고 이제는 가슴 아픈 얘기가 된 독일의 브리타 하이데만과의 일전에서 1초 동안 무려 네 번의 공격을 당하는 오심에 피해를 입고 말았다.

너무나도 길고 긴 1초에 국민 모두가 분노했고 신아람이 멍하니 경기장에 앉아 울고 있는 모습은 온 국민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이후에 수많은 패러디가 나왔는데 신기하더라고요. 지나고 나니 올림픽이 정말 이렇게 큰 관심을 받는지 새삼 깨달았어요. 올림픽 역대 5대 오심 같은 거에도 뽑혔는데 오심이긴 한데 그 정도로 큰지 나중에 알았죠. 그저 '이게 뭐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잠겼어요."

더 아쉬운 건 4강전 후 곧바로 진행된 동메달 결정전에서였다. 신아람은 초반 좋은 경기력을 펼쳤지만 곧 무너지며 중국의 쑨 위제에게 11-15로 패했다.

"4강전 직후 10분 동안 울기만 하다가 곧바로 동메달 결정전에 나섰죠. 그래도 초반에는 잘됐어요. 그런데 '이렇게 몸상태가 좋은데 결승전에 갔다면 금메달도 충분히 땄을 텐데…'하는 생각이 공격 성공할 때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거예요. 다 의미 없게 생각이 든거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았죠. 지금이라면 악착같이 했을 텐데…. 결국 전 아직도 올림픽 개인전 메달이 없는 선수거든요.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냐 아니냐의 차이를 몰랐던 거죠."

▶‘미녀 검객?’ 제가 붙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신아람하면 ‘1초’와 더불어 ‘미녀 검객’이라는 수식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외모적인 주목에 대해 언급하자 신아람은 “‘미녀’라는거 여자 선수들한테 거의 다 붙는거 아닌가요?”라며 “괜히 욕만 먹는다. 제가 붙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라며 억울한 심정을 토하기도 했다.

“여성선수는 분명 외향적인 것을 많이 보는 사회 시선에 억울하기도 하죠. 어떤 댓글에 ‘실력은 둘째 치고 외모가 너무 안 된다’라는 걸 본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운동선수가 ‘실력을 둘째치면’ 어떡하나요. 그게 무조건 1순위죠.”

어디가도 빠지지 외모에도 그녀가 펜싱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펜싱의 어떤 매력이 대체 신아람을 붙잡아놨던 것일까.

“딱 손 끝에 느껴지는 ‘손맛’이 있어요. 낚시도 그런게 있다면서요. 찌르는데 느낌이 굉장히 좋아요. 제가 생각했던 그대로 그 타이밍에 공격이 성공했을 때의 느낌은 절 계속해서 검을 들게 만들죠. 또 신체의 가벼움이 주는 기쁨 역시 큰 매력이죠.”

▶'1초'로 기억되기보단 2016 리우올림픽 메달리스트로 기억될 것

그 통한의 '1초'가 신아람에게 준 득도 있다. 이후 유명세를 타 전 국민이 이름을 기억했고, CF까지 찍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아람은 "득이 될 것 없다"며 고개를 가로지었다.

"전 솔직히 그때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요. 동료들이나 주위에서 가끔 그때 얘기를 꺼내면 '그만하자'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요. 얘기만하면 그때가 생각나기 때문이에요. 그때의 아픈 감정이…. 다른 수식어로 덮고 싶어도 늦은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건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알지만 분명 좋진 않아요."

올해 어느덧 한국나이로 서른이 된 신아람도 이제 마무리를 고민할 차례다. 신아람은 '어떻게 마무리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늘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계획은 없다. 대표선수로서 역량이 닿는 데까지 해볼 계획이다. 마무리가 다가오는 만큼 이제 어떤 펜싱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신아람은 단호하게, 그리고 자신 펜싱 인생의 모든 걸 던질 2016 리우 올림픽을 얘기했다.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잖아요. 기억하지 말아달라고 해서 안하실 것도 아니잖아요. 한국에서는 금메달지상주의가 있긴 하지만 메달리스트 그자체로 이미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선수생활 후에는 '2012년의 아픔이 있었던 선수였음에도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리스트가 된 선수'로 기억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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