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인터뷰를 위해 경기도 용인에 있는 팀포마 체육관을 찾았을 때 처음에는 한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예쁜 아가씨가 취재진을 맞는 줄로만 알았다. 그만큼 케이지 위에서 봤던 모습과는 딴판으로 수수하면서도 청초하기 그지없는 모습은 신선했다.

데뷔전의 짜릿했던 TKO(한쪽 선수가 경기 속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상 등의 이유로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켜 승패를 결정하는 일)승리의 여운이 어느 정도 가신 후 다시 평범한 주부이자 종합격투기 선수로 돌아온 박지혜(25·팀포마)를 만났다.

▶"데뷔전요? 살면서 그런 기분은 결단코 없었죠."

박지혜는 지난 2월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굽네치킨 로드 FC 021' 여성부 아톰급(-48.0kg)에서 일본의 이리에 미유를 상대로 2라운드 TKO승리를 거두며 화려하게 프로 종합격투기 선수로 데뷔했다. 짜릿했던 데뷔전 이후 어떻게 지냈을까.

"경기 후 2주간 쉬고 다시 운동을 재개했어요. 오전에는 감독님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오후에는 선수부 훈련에 참가하고 있어요. 물론 대회사 쪽에서 불러만 주신다면 언제든 경기에 나설 수 있게 항상 준비 중입니다. 전 언제든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짜릿했던 데뷔전을 복기해봤다. 아무래도 종합격투기라는 가장 험한 종목에 여자가 뛰어들었으니 세간의 관심은 당연했다.

"부담감이 컸죠. 감량 때 막판 1.5kg을 남기고 많이 힘들었어요. 사우나에 들어가 빼는데도 쉽지 않았죠. 평소 컨디션이 100이라면 경기 때는 감량에 대한 중압감과 미디어의 관심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60정도밖에 안됐죠."

"다시 그날 경기를 복기해보자면 케이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느껴보지 못했던 오묘한 감정이 절 감쌌어요. 흥분하기보다는 차분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죠. 근데 1라운드 끝나고는 '멘붕(멘탈붕괴)'이 온 거예요. 상대 선수가 타격위주의 스탠딩으로 경기를 풀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해왔는데 막상 1라운드를 그라운드(두 선수가 눕거나 엎드린 상태에서 대치하는 상황) 위주의 경기가 돼버렸어요. 준비한 것과 전혀 달랐던 거죠. 그래도 1라운드 종료 후 휴식동안 '상대가 그라운드라면 나도 그라운드로 간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고 결국 그라운드 후 파운딩(상대를 눕힌 후 날리는 펀치 공격)으로 TKO를 얻어 냈죠."

데뷔전 승리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뭐였을까.

"심판이 와서 TKO를 위해 말릴 때 딱 '아 끝났구나'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훈련했던 모습들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파노라마로 지나가더라고요.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했구나'하는 생각뿐이었죠. 그리고 뒤에 있던 감독님과 코너맨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말이나 단어로 표현되기 힘든 성질의 기분이었어요. 살면서 결단코 이런 기분을 겪어보지 못했어요. 다시 대기실에 돌아가서 '아 이래서 선수들이 몸이 아파도 계속 뛰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케이지 안에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기분이죠."

상대였던 이리에 미유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박지혜는 "그 선수도 저와 똑같이 힘든 시간을 보낸 후 타국까지 와서 경기를 한 것일 텐데 미안하고 고맙고 또 감사했어요. 시합 끝나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언어의 장벽 때문에 다가가기가 힘들었어요. 물론 경기 중에는 적이고 단지 이겨야하는 상대일 뿐이었지만요."

▶언젠가는 케이지 위에서 마주하게 될 송가연

업계에서는 로드FC가 흥행을 위해서는 언젠가는 `송가연vs박지혜'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예상한다. 마침 두 선수는 체급(아톰급, -48.0kg)도 같아 미녀간의 맞대결은 미디어와 여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붙게 된다면 재밌는 경기가 될 것 같아요. 제 입장에서도 같은 체급의 선수라면 굳이 피할 이유가 없죠. 언젠가는 만나겠죠. 송가연 선수는 화끈하게 경기를 하는 스타일이던데 저 역시 격투가로서 자신감은 있어요. 시합이 잡힌다면 반드시 이기기 위해 노력해야죠."

몇 안 되는 여성 파이터로서 박지혜가 바라보는 송가연은 어떨까.

"사실 송가연 선수와 사적인 친분은 없어요. 송가연 선수가 첫 여성 격투가는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몇 안 되는 선수이기에 참 대단해요. 훈련은 훈련대로 하면서 방송도 나오고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거든요. 송가연 선수에 대해서는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어요. 사력을 다해 본인의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은 비록 저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정말 본받고 싶은 모습이에요."

▶외향적인 것만으로 단정 짓지 말아 달라

아무래도 박지혜하면 항상 이름 앞에 '미녀 파이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박지혜는 "사실 그 말은 정말 부담돼요. 크게 미녀는 아니거든요(웃음). 조금 창피하고 부끄러워요. 어떤 기사들은 제가 읽다가 다 읽지도 못할 때도 있어요. 손발이 오그라들어서요"라며 한없이 부끄러워했다.

"그래도 물론 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관심을 가져주시는 건 감사하게 생각해요. 어떤 댓글을 봤는데 저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하자 그 댓글 밑에 '아직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있는걸 보고 '이렇게 생각해주시는 분이 있구나'하고 감사하기도 했어요. 반면 어떤 댓글들은 외향적인 것만 보고 제가 그동안 흘린 땀방울과 눈물을 생략하고 공짜로 관심을 받는다고 단정 짓는걸 보면 참 슬프더라고요."

여성 선수들은 남성 선수들에 비해 훨씬 실력과 무관하게 외향적인 것으로 더욱 부각을 받기도 한다. 박지혜 역시 이 부분에 동의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부분이죠. 재정적인 스폰서는 정말 실력 있고 멀리 바라볼 수 있고, 필요한 선수에게 가야 서로의 시너지가 있는데 여성 선수는 특히 그렇지 못하죠. 물론 저 역시 제 경기가 마케팅이 돼 화제가 되는 것은 싫지 않아요. 제가 경기를 할 때 아무도 모르는 것보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알려지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외향적인 것이 많이 부각되는 현실을 바꾸는 건 결국 제가 할 일이요. 열쇠는 제가 쥐고 있죠. 제가 바꿔야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고 더 노력할겁니다."

▶아줌마의 힘? 저 아줌마란 말 되게 싫어해요!

박지혜는 결혼 2년차인 새색시다. 같은 격투기 선수인 김지형에게 다리 위에서 반지를 받는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받아 결혼까지 골인한 박지혜는 '역시 한국 아줌마의 힘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나'는 장난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며 "저 아줌마는 아니지 않나요? 그 말 되게 싫어해요.(웃음) 그저 결혼한 여자일 뿐이에요. 저 아줌마 같아 보이나요?"라며 반문하며 웃기도 했다.

"주부 박지혜의 모습은 평범해요. 아침에 남편이 일을 나가고 나면 빨래, 청소, 식사준비 등 집안일을 하고요. 이후에 훈련 갔다가 저녁에 남편을 체육관에서 만나 같이 집에 돌아오죠. 남편이랑 같이 알콩달콩하게 식탁을 차리고 식사 후에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설거지할 사람, 빨래 널 사람을 나누기도 하고요."

사랑에 빠진 새색시는 자녀계획을 묻는 질문에 "아무래도 운동선수는 나이가 중요한 직업이다 보니 지금은 좀 더 운동에 집중하고 싶어요. 그래도 서른이 되기 전에는 아이를 가질 계획이에요."라고 언급했다. 1990년생인 박지혜는 아직 또래들은 취준생 혹은 사회 초년생인 것에 비해 확실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아쉬움은 없을까?

"저희 집안이 건축쪽 일을 하고 있어서 저 역시 대학을 토목과에 진학했어요.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금방 자퇴했죠. 이후에 온갖 아르바이트는 다해본 것 같네요. 그러다 종합격투기의 매력에 빠지게 된 거고요. 물론 가끔은 평범하게 살았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해요. 그럼에도 후회는 없어요. 일반 또래의 평범한 일상보다 저의 하루가 더 특별하다고 믿기 때문이죠. 인생에 꼭 정답은 없잖아요? '괜찮아. 나도 열심히 살고 있어'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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