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미디어 김민희 기자] “아직도 여러 나라에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싶다.”

지난 9일, 2전3기 만에 금메달을 품에 안은 한 선수가 터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오는 경기마다 20득점 이상을 올리며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여자배구에 20년 만의 금메달을 안긴 김연경(26·페네르바체sk)이다.

아시안게임을 마친 뒤 지난 6일 만난 김연경은 터키로 돌아가기 전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는데 힘을 쏟고 있었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만큼은 가벼워서인지 그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밝은 얼굴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금메달 도전에 가장 큰 걸림돌은 중국이었다. 지난 2010 광저우 대회에서도 한국은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중국전이 가장 큰 고비였어요. 가장 강한 상대였기 때문에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승까지는 무난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승에서 중국을 이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죠.”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하지만 김연경은 결승전에서 무려 26득점을 올리며 한국의 3-0 완승을 이끌었다. 그는 승부를 결정지은 분수령으로 1세트를 꼽았다. 경기 초반 기선제압을 위해 강하게 밀어붙이자 중국이 흔들렸던 것이다.

“질 것 같진 않았지만 쉽지도 않았어요. 2,3세트도 끌려가다 역전했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중국이 2진을 내보냈으니 쉽게 이기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는데 전혀 모르고 하신 말씀이에요.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이 비슷한 시기에 열렸기 때문에 선수단을 그냥 나눈 것뿐이었어요. 다만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선수들은 어려서 경험이 적었을 뿐이지 실력으로 봤을 때에는 1진 선수들과 비슷했어요.”

2진이라 해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김연경의 목소리에서 단호함이 묻어났다. 실제로 상대가 못했다기보다는 한국이 잘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연경과 빠르게 성장한 한국 배구의 미래가 있었다.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는 박정아(21)가, 중국과의 결승전에서는 김희진(23·이상 IBK기업은행)이 각각 15득점, 16득점을 올리며 김연경의 뒤를 든든하게 해줬다.

“이번 대회에서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보니 많은 가능성을 느꼈어요. 김희진, 박정아 등 잘하는 어린 선수들이 많았거든요. 신체조건도 좋은 선수들이 많아 앞으로 더 발전하고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한국 배구 스타일이 수비 위주에서 공격적인 스타일로 많이 변화했는데, 그런 부분이 이번 대회에서 주효했어요.”

이번 금메달을 통해 2016 리우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해졌다는 김연경은 항상 대표팀에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실 이런 관심은 선수들에게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부담보다도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런 관심을 받는 걸 즐기는 타입이기도해요. 그런데 다만 다른 선수들도 잘 했는데 혼자 너무 관심을 받으니까 그런 부분이 미안하네요.”

김연경에게는 2전3기만에 딴 금메달이었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태극마크를 단 후 3번째 도전이었던 만큼 국제대회 첫 ‘금’에 대한 각오가 남달랐다. 여기에 주장이라는 임무가 더해졌고 그의 어깨는 한층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연경은 그 무게를 이겨내고 코트 안에서는 ‘에이스’의 역할을, 코트 밖에서는 중간에서 선·후배 사이 ‘가교’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혼자서 힘들었다고 투정을 부릴 만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믿고 잘 따라와 준 선·후배들에게 고마워했다.

“제가 주장이 되고 나서 애들을 너무 휘어잡았어요. 아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에요. ‘저 언니 왜 저러지?’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성격이어서 제대로 안하면 바로바로 이야기를 했어요. 이효희, 남주연, 한송이, 김해란 언니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조금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해도 잘 들어줘서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대표팀 내에서 입지가 단단해지는 동안 김연경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어느덧 세계 정상에 올랐다. 지난 8월 화성에서 열린 여자배구 그랑프리 대회에서 독일 여자배구 대표팀 지오반 주데티 감독이 김연경을 두고 “축구 선수에 비유한다면 `리오넬 메시'”라고 한 말은 그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성적으로도 김연경의 실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배구 강국이 모두 출전하는 2014 월드그랑프리에서 득점상·공격상·서브상을 휩쓸었다. 또한 그가 뛰고 있는 터키리그는 여자 배구에서 정상급 리그 중 하나로 꼽힌다. 직접 몸담고 있는 페네르바체 유니버셜은 이번 시즌 리그 준우승을 이뤘으며 유럽배구연맹(CEV)컵 대회에서 우승을 한 강팀이다.

얼마 전 현 소속팀과 2년 재계약을 마친 김연경은 일본리그를 거쳐 터키까지 가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뛰는 것과 해외에서 뛰는 게 기량 상승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사실 한국에만 있었다면 이 정도 실력은 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일본을 거쳐 터키까지 가면서 많이 배우고 느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배구를 잘하는 여자 선수. 앞으로 이룰 것이 더는 없어 보이는 김연경의 목표는 무엇일까.

“아직도 많이 배우고 싶어요.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더 경험해 보고 싶어요. 하지만 일단은 챔피언스리그, 컵대회 등 많은 경기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집중하겠습니다. 이번에 금메달을 딴 거 보면 올 시즌이 잘 풀릴 것 같다. 사실 금메달을 따고나서 몸과 마음이 좀 많이 풀렸었는데,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음을 다잡아야겠어요.”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