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상헌 감독이 경기도 파주의 국가대표 훈련원에서 수제자 이동진에게 헤딩 볼컨크롤 훈련을 시키고 있다.
▲ 우승횟수 100승이 넘는 ’한국의 퍼거슨’

세계 축구계의 독보적인 명장 알렉스 퍼거슨(72) 감독이 며칠 전, 은퇴를 선언한 데 대해 그의 조국인 영국 국민들은 물론 한국의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아쉬워하는 표정은 역력하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 무대인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명문 중의 명문으로 통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무려 38차례나 우승으로 이끈 신화적인 지도자를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게 됐다는 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때문일 터.

아울러 한국 축구의 톱스타 박지성(32ㆍ영국 퀸즈파크 레인저스)을 영입해 세계적인 스타로 길러낸 퍼거슨 감독에게 보내는 찬사와 고마움의 의미도 어느 정도는 내포돼 있을 듯싶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 축구계는 퍼거슨을 능가하거나 그에 버금갈 만한 훌륭한 지도자를 배출할 수 없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함상헌 감독이 경기도 파주의 국가대표 훈련원에서 수제자 이동진에게 헤딩 볼컨크롤 훈련을 시키고 있다.
현 시점에서는 퍼거슨을 능가한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걸출한 지도자가 없다고 해도 머지 않은 장래의 어느 시점에선가는 한국 축구계에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는 명장이 탄생할 가능성 만은 충분하기 때문.

그 같은 ‘미래의 명장 후보군(群)’ 가운데서도 선두주자로 각광받고 있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유소년 축구의 명문인 서울 신정초등학교 축구팀 감독 함상헌(42)이다.

12년 전인 지난 2001년에 이 학교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후 작년 시즌까지 소년체전을 비롯한 각종 국내외 대회에서 우승한 횟수가 100여 회. 한 대회에서 치르는 경기수를 5회로만 잡아도 승수가 500승이 넘는다.

국내 프로축구의 최고 명장으로 통하는 김정남 감독이 유공 감독 시절에 세운 210승을 훨씬 능가하는 기록적인 수치가 아닌가.

학부모들이 그에게 붙여준 ‘우승 제조기’라는 닉네임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함상헌의 연령이 이제 겨우 40대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30년 뒤 서두에서 언급한 퍼거슨 감독의 나이가 되면 한국은 물론 세계 축구사에도 뚜렷이 기록될 만한 엄청난 기록의 소유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스포츠를 포함한 각종 분야의 독보적인 기록의 결정판인 기네스북에도 ‘함상헌’이라는 이름이 새겨질 것은 분명하다.

초등학교 축구 무대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 이 같은 대기록 수립의 행진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며 어린 선수들에 대한 지도방법은 어떤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지난 주말, 신정초등학교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경기도 파주 소재 국가대표 훈련원을 찾았다.

▲ “옷에 유행이 있듯이 축구에도 유행이 있다.”

먼저 초등학교 축구팀을 맡게 된 경위부터 물었다.

“2001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중국 프로축구팀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를 하고 국내 프로팀 몇 군데에서 코치직 제의를 받고 있었는데요. 마침 신정초등학교 축구팀이 몇 달째 감독이 없이 선수들끼리만 공을 차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프로팀으로 가는 것도 좋겠지만 어린 선수들을 잘 길러내는 것도 우리나라 축구의 발전을 위해 보람된 일이 아니겠나 싶어서 맡게 됐습니다.”

후술(後述)하겠지만 함상헌은 대우, 포항체절, LG, 그리고 중국의 프로팀 백운산에서 2000년까지 현역 생활을 하다가 은퇴해 진로를 모색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초등학교 축구의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던 신정초의 감독 직이 공석으로 있어 한국 축구의 내일을 위해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이 팀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는 얘기다.

신정초의 축구팀이 창단된 것은 지금부터 29년 전인 1984년 3월.

창단 초기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8년째 되던 1992년 10월의 서울시 축구협회장배 전국초등학교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강팀의 반열에 올라서 함상헌이 감독에 취임한 2001년에는 국내 유수의 명문으로 성장해 있었다.

“사실 신정초등학교 축구팀이 제가 감독을 맡고 나서 훌륭한 팀이 된 건 아닙니다. 전임 선생님들이 잘 다져 놓으신 기틀을 이어 받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강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전임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승 제조기’라는 닉네임을 갖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저는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 드려서 패션에 유행이 있듯 축구에도 유행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축구도 살아 있는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변화를 한다는 얘기지요. 어린 선수들에게도 이런 사실을 강조해 살아 움직이는 축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우선 선수 개개인이 자기 자신부터 변화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어린 선수들이지만 이 점을 잘 이해하고 따라준 것이 줄곧 강팀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 세상에 변화를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건 상식에 속하는 일인데 이 변화라는 한 가지 말만으로 어린이들을 지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이런 겁니다. TV를 통해서 축구경기를 보면 여러 가지 작전이 나오지 않습니까. 한데 이 작전들이 오늘은 잘 먹혀 들다가도 그 다음날엔 잘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게 바로 축구가 패션처럼 숨가쁘게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좀 어렵게도 들리는데 이제 10살을 갓 넘은 초등학생들이 이런 말을 잘 이해하는 지도 궁금하다.

“요즘 애들이 머리가 얼마나 좋은데요. 이런 사실을 선수들에게 알려주면서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새로운 마음자세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 코흘리개들이지만 금방 알아듣고 따라옵니다. 그러니까 우리 학교가 이렇게 꾸준한 성적을 내는 건 제 능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린 선수들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겁니다.”

▲국내 유일의 학년별 코치 전담제

그건 그렇고 함상헌이 신정초의 지휘봉을 잡은 2001년 이후 현재까지 100여 차례의 우승을 거머쥔 데는 뭔가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한 비결이랄까. 기법이랄까 이런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유소년 대회의 최고 권위인 왕중왕전에서 4년 동안 2차례나 우승을 하고 상금액이 무려 1억원이나 되는 인천국제공항사장배 전국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한 것은 함상헌의 성과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마당이다.

“말씀드리지요. 이건 제가 이 학교를 맡은 직후부터 줄곧 시행해 오고 있는 건데요. 다름아니라 학년별 코치 전담제입니다.”

처음 듣는 어휘다. 무슨 내용일까.

“간단합니다. 글자 그대로 각 학년별로 전담 코치 선생을 배정해 그 학년의 수준에 맞는 훈련을 시키는 건데요. 예컨대 가장 어린 1학년 선수들은 공을 다루는 기본기를 가르치고, 2학년은 그보다 조금 진전한 드리블과 볼 컨트롤, 그리고 죽 올라와서 가장 높은 6학년에게는 여러 가지 개인기술과 실전에 필요한 전술훈련. 이런 식으로 선수 개개인 별로 나이와 능력에 맞게 전담훈련을 시키니까 아이들이 의욕을 갖는 건 물론이고 훈련성과도 아주 배가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실제 성적으로도 증명이 되고요.”

초등학교 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에 확인 결과 전국 400여 개 초등학교 축구팀 가운데 이 같은 ‘학년별 전담코치제’를 실시하고 있는 학교는 ‘신정’ 하나뿐이었다.

감독을 포함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년별로 전담 코치를 둔다면 코칭스태프가 무려 7명이 되는 셈. 앞서 언급했던 바 세계 최고의 명문 프로팀인 멘채스터 유나이티드나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FC 보다도 많은 숫자가 아닌가. 이 같은 대규모 코칭스태프를 유지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 축구팀의 운영은 학부모님 개개인들이 매월 내주시는 24만원의 지원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지원금으로 저를 포함한 7명 지도자들의 봉급이 지불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팀 운영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어려운 살림살이지요.”

학교에서 나오는 재정적인 지원은 전혀 없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렇게 보셔도 될 겁니다. 학교 운영상 재정적인 여유가 그다지 충분하지 못하니까 그런 거겠지요. 어쨌거나 학부모님들의 지원금만으로 운영이 되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고 수제자(首弟子)는 중학생 스트라이커 이동진

누구를 만나든 ‘돈 얘기’를 하면 재미가 없어지는 법. 화제를 바꿔보자.

12년 동안 이처럼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면 그 동안 배출한 제자들도 수없이 많을 텐데.

“많지요. 일일이 다 얘기하자면 한이 없고요.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지금 강원도 횡성의 갑천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이동진 선수입니다. 이 친구는 김포 유천초등학교에서 육상 중거리를 했는데요. 발도 빠르고 하체가 아주 좋아서 5학년 2학기 때인 2010년에 우리 학교 축구팀의 공격을 이끄는 센터포드로 스카우트를 했습니다.”

기록을 뒤져보니 이동진은 1999년생으로 올해 만 14세인데 5학년 1학기까지 200m와 400m 스프린터로 활약해 경기도 학생육상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할 정도로 순발력이 좋아 함상헌에 의해 축구선수로 방향을 전환했다.

얼핏 눈에 띄는 기록만 봐도 축구선수 데뷔 무대인 2010년 11월 험멜코리아배 우승의 주역을 시작으로 2011년 8월 화랑대기 전국유소년축구대회 우승에 이르기까지 모두 5차례나 신정초의 정상등극에 주역을 맡았다.

특히 2011년 7월 호주 태즈매니아에서 벌어진 국제유소년축구대회 때는 4경기에서 5골을 터뜨려 최우수선수(MVP)가 된 것을 비롯해 11년 한해 동안 모두 18득점을 올리는 스트라이커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번에 새로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하신 정몽규 회장님이 가장 큰 목표를 2022년 러시아월드컵의 4강 진입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동진이가 지금과 같은 성장세를 계속해 간다면 그때는 틀림없이 대표선수가 돼서 한국팀의 4강 진입에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홍명보, 안정환, 황선홍 등 대선배들이 2002년 한일월드컵의 4강을 이끌었듯이 그보다 20년 뒤인 러시아월드컵에서는 ‘미래의 스트라이커’ 이동진이 한국의 4강 진입에 견인차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부풀리게 된다.

중학생으로는 훤칠한 편인 176㎝, 73kg의 체구에다 100m를 11초에 주파하는 스피드, 거기에 허벅지 둘레 30㎝의 단단한 하체를 가졌다니 45년 전 경신중학교 시절의 차범근과도 흡사하다.

어쨌거나 국내 최고의 유소년 지도자 함상헌이 가장 기대하는 유망주인 만큼 이동진의 장래를 지켜보는 것도 축구팬이라면 사뭇 흥미 있는 관심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낳은 선수 길러내는 게 궁극적인 목표”

함상헌이 축구를 시작한 것은 경기도 토평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82년.

발이 빠르고 볼 재간이 좋아 경기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미드필더로 주로 기용되며 게임메이커의 역할을 했는데 이는 안양중, 안양공고, 서울시립대를 거쳐 프로팀 대우(1994~95년)와 포항(96년), LG(1997~98년) 그리고 서두에서도 설명한대로 중국의 백운산(1999~2000년)에서 활약하는 동안 줄곧 변함이 없었다.

한국과 중국을 포함해 프로 선수로 7년을 뛴 셈인데 팀플레이를 책임지는 미드필더의 중책을 맡으면서도 모두 18골을 기록하는 득점력을 과시.

특히 중국 백운산으로 이적한 이후의 활약상이 두드러져 1999년 시즌에는 중국 국내리그의 MVP에 오르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유소년 지도자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지금도 일주일에 이틀은 한체대 대학원 스포츠 코칭학과 커리큘럼에 나가 석사과정을 이수하며 새로운 축구 전술과 이론 개발에 정열을 쏟고 있다고 한다.

“저는 지도자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를 나보다 조금이라도 낳은 후진을 양성하는데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제가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현재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으로 해박한 축구이론의 소유자로 평가받는 윤영길 교수 밑에서 함상헌이 이수하고 있는 석사과정은 3학기째인데 그 내용은 코칭심리학을 비롯해 스포츠행정관리, 과학적 코칭론, 글로벌 스포츠이론 등 13개 분야.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애들 훈련을 코치 선수들에게 맡기고 학교에서 공부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윤교수님이 너무 많은 걸 가르쳐 주셔서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인데요. 지금 배우는 것 하나하나가 어린 선수들을 길러내는데 소중한 자산이 될 거라는 자세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혹시 누가 아는가. 그의 말대로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9년 뒤 러시아월드컵에서는 ‘제2의 히딩크, 함상헌’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이 국내 각 신문지상의 헤드라인을 장식할지.

또 그렇게 되는 것이 한국축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함상헌 감독 신상명세

▲생년월일: 1971년 3월20일 ▲축구시작: 경기 토평초 5학년(1982년) ▲학력: 토평초-안양중-안양공고-서울시립대 ▲소속 프로팀: 대우 로얄즈(1994~95년)-포항스틸러스(96년)-LG치타스(97~98년)-중국 백운산(99~00년) ▲지도자 경력: 2001년 2월 서울 신정초 감독 맡은 이후 12년까지 우승 105차례 ▲수상 경력: 12년 대한축구협회 선정 최우수 지도자. 제25회 차범근 어린이 축구대상 최우수 지도자(2013년 2월) 외 25차례 ▲가족: 부인 권효정(35)씨와의 사이에 외동딸 채윤(9) ▲좋아하는 음식: 매운 종류 ▲취미: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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