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7회초. 선두타자 호세 이글레시아스에게 낮은공이 퍼올려지며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맞은 양현종(33·텍사스 레인저스).

보통의 투수들이라면 피홈런에 실망스러워할 법도 했다. 이 홈런은 양현종의 메이저리그 첫 피홈런이었기에 더욱 그럴만했다.

하지만 양현종은 실망하기보다 뒷주머니에 넣어놓은 쪽지를 꺼냈다. '현재'보다 '미래'를 생각하는 양현종의 자세는 왜 그가 어려운 도전 끝에 '메이저리거'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었는지 새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스포티비 나우 캡처
양현종은 27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의 글로브 라이프 볼파크에서 열린 2021 메이저리그 LA에인절스와의 홈경기에서 텍사스의 3회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7회까지 66구를 던져 4.1이닝 2실점 5피안타 1볼넷 1탈삼진 투구를 한후 8회 시작전 교체됐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 올라와 여전히 4-9로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노디시전 경기였다. 텍사스는 4-9로 그대로 패했고 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가 승리투수가 됐다.

3회 2사 후 등판해 5회까지 7타자 연속 범타 처리를 한 양현종은 6회 오타니 쇼헤이와 마이트 트라웃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한 후 제러드 월시에게 1타점 2루타를 맞으며 첫 실점을 했다. 7회에는 선두타자 호세 이글레시아스에게 솔로홈런을 맞았지만 이후 실점없이 7회를 마쳐 4.1이닝 2실점으로 이날 텍사스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책임졌다.

경기 시작 5시간전에야 메이저리그 승격 소식을 들은 양현종은 곧바로 데뷔전을 가져 성공적인 안착에 성공했다.

6회 실점 이후 추가 위기를 무실점으로 막은 양현종은 예상을 깨고 7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왔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가지는 ‘불펜투수’에게 4이닝째를 맡기는 것은 다소 놀라웠다. 실제로 MLB.com에 따르면 1989년 이후 32년만에 텍사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는 불펜투수가 가장 긴이닝을 소화한 기록을 세운 장본인이 되기도 했다.

6회 워낙 위기상황에서 1점으로 막았기에 7회는 한숨 돌리나보나 했다. 또한 하위타순인 8번타자부터 시작하기에 중심타선부터 시작한 6회와는 다르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8번 유격수 호세 이글레시아스에게 낮은 공이 퍼올려지며 홈런을 맞고 만다. 양현종의 공이 밋밋하긴 했지만 낮은공을 퍼올려 홈런으로 때린 이글레시아스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홈런이었다.

스포티비 나우 캡처
바로 이때 양현종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일반적으로 홈런을 맞은 투수들의 얼굴을 비추면 실망하거나 허무한 표정이 잡힌다. 하지만 양현종은 달랐다. 처음엔 실망하는 듯 하다가 이글레시아스가 여전히 루상을 돌고 있자 양현종은 뒷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낸다.

아마 자신이 이번 이닝에 상대할 타자들의 정보가 담긴 쪽지였으리라. 아무래도 양현종도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처음 상대하다보니 모두 파악되지 않았기에 핵심내용만 간추려 적어놨을 쪽지다. 이 쪽지를 보며 앞으로 상대할 타자들을 어떻게 공략할지 빠르게 다시 체크했을 것이다.

홈런을 맞았을 때의 ‘현재’에 실망하기보다 홈런 그 이후에 ‘미래’를 생각하는 양현종.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피홈런이었으니 더 실망할법도 하지만 양현종은 이미 오랜 KBO리그 경력을 통해 ‘피홈런’ 그 자체보다 ‘피홈런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걸 익힌 선수였다.

그리고 이후 네 타자를 상대로 1피안타만 주며 무실점으로 막아 7회를 더 이상의 실점없이 막으며 데뷔전을 마쳤다. 홈런에 무너져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를 생각하는 양현종의 태도에서 어떻게 그가 국내에서 ‘대투수’의 지위를 놓고 메이저리그 ‘초청선수’를 받아들여 끝내 승격까지해 세계 최고 무대에 설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AFPBBNews = News1
-스한 스틸컷 : 스틸 컷(Still cut)은 영상을 정지된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을 뜻합니다. 매 경기 중요한 승부처의 한 장면을 있는 그대로 자세히 묘사합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