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30·LA 다저스)은 지난 12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쿠어스 필드에서 열린 2017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와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4이닝 8피안타 7볼넷 4탈삼진 10실점(5자책)을 기록했다. 이는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최악의 경기였다. 한 경기에서 8점을 내준 적은 있지만 10점을 내준 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LA 다저스의 류현진. 스포츠코리아 제공
아무래도 가벼운 엉덩이 타박상으로 10일 동안 부상자 명단에 있었고, 11일 만에 등판을 했기에 경기 감각은 가장 좋을 때보다는 떨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류현진은 선발 투수에 최적화 돼 있는 몸이다. 5일 로테이션 속에서 한 번을 쉬었던 그였는데 컨디션은 좋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는 제구력과 경기 감각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공이 전체적으로 1~2개 정도 높게 형성이 됐다. 게다가 릴리스 포인트가 뒤에서 형성된 탓에 공이 높았던 것이 문제였다. 제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는데 공까지 높았으니 결과가 좋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다. 위기관리 능력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지난 1일 시즌 첫 승을 합작한 포수 야스마니 그렌달이 아닌 오스틴 반즈와 호흡을 맞췄던 것도 문제였다. 나 역시 현역 시절에도 느껴왔던 부분이지만 포수가 바뀌면 투수 입장에서는 어색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볼배합에 있어서 직구를 선호하는 포수가 있을 것이고 선호하는 포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즈는 류현진의 특성을 명확하게는 모르는 것 같았다. 호흡에 분명 문제가 있었다.

반즈는 이른바 높이 형성돼 상대의 헛스윙과 땅볼 타구를 유도하는 ‘인 하이’ 공을 자주 주문했다. 부상 이전의 류현진이라면 그러한 공으로도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 하지만 부상 이후의 류현진은 다르다.

인하이 공은 보통 시속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뿌릴 줄 아는 선수들에게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류현진은 평균 구속이 가장 좋았을 때보다 시속 5km 정도 떨어져 있다. 원하는 높이에 공을 던져도 140km대의 공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무척 만만하게 보인다. 오히려 치기가 좋은 공이다.

‘류현진의 천적’으로 불리는 콜로라도의 놀란 아레나도는 12일 경기에서도 바깥쪽 직구를 노리고 들어왔는데 류현진은 이에 아랑 곳 않고 바깥 쪽 직구를 던졌다. 이번에도 안타를 내줬던 것은 바로 이 때문.

공 끝이 좋은 선수들. 예를 들어 NC의 임창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오승환은 높은 공을 던져도 상대에게 통할 수 있다. 그러나 힘이 떨어진 류현진의 공은 그대로 맞아나갔다.

류현진 답지 않게 도망가는 듯한 투구도 자주 나왔다. 밸런스가 흔들린 것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제구가 안 잡혔던 탓에 도망 갈 수밖에 없었다. 끝내 10점이나 내줬던 탓에 지켜보면서 무척 안타까웠다.

그러나 긍정적인 부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량 실점을 하는 와중에도 공을 100개 이상 던졌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이날 경기에서도 류현진은 총 101개의 공을 던졌다.

잔부상에도 시달리고, 열흘을 쉬었음에도 100개를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단계적으로 제구나 구속을 향상시키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야구 선배로서 류현진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인정’과 이에 따른 ‘새 구종 장착’이다. 이제는 부상 이전의 구위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신 로케이션(공이 도착한 위치) 싸움을 펼쳤으면 좋겠다.

물론 직구를 전혀 사용하지 말라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직구 최고 시속이 시속 148km까지 나왔던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지난 1일 필라델피아전을 복기해 보자면 당시에도 그는 구속이 떨어진 것을 감안해 커브를 즐겨 썼다. 직구와 커브의 구속차가 20km 이상 났기에 수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LA 다저스의 류현진(왼쪽)과 오스틴 반즈. 스포츠코리아 제공
자신의 직구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오히려 느린 공, 즉 변화구 비율을 높이거나 새 변화구를 장착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느린공을 보여줘야 빠른 공이 먹히는 법이다.

구종 개발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나 역시도 30세에 부상을 경험했다. 부상과 이에 따른 고비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지금도 물론 자신이 가진 구종을 모두 문제없이 구사하고 있지만 핵심은 직구의 다양화다. 직구도 투심패스트볼이나 컷 패스트볼(커터)로 다양화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투심과 커터는 땅볼을 유도하기에 좋다. 위기 상황에서 구사하면 병살타를 유도하기 좋은 공이다. 이렇듯 공의 움직임만 좋아진다면 구속이 다소 저하되더라도 승부를 낼 수 있다.

현재 메이저리그 내 다수의 투수들은 투심과 커터를 지니고 있는데 류현진은 투심과 커터가 없다. 선발은 물론 중간 투수들도 다 장착하고 있는 추세다. 다저스의 선발이라면 최근 흐름에 맞게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기 뒤 기회’라는 말이 있듯 아무리 노력해도 안 나오는 구속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 보다는 직구의 움직임을 다양화 해 승부를 냈으면 한다.

이전까지는 구위에 자신 있어 했던 투수가 바로 류현진이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던지고 싶다는 욕심을 이제는 접어둬야 할 때다. 새 전략을 짜며 다른 유형의 투수로 거듭나야 향후 10년을 기약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른 투수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류현진에게 구종 추가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다. 구대성 선배에게 써클 체인지업을 배울 때도 일주일 만에 배웠던 투수가 바로 류현진이다. 투심과 커터를 배우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을까.

비록 대량 실점을 하긴 했으나 어제를 잊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길 바란다. 물론 이전 경기의 악몽을 빨리 털어 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직전 경기에서 최대한 좋았던 것을 기억하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박명환 야구학교 코치.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박명환 스포츠한국 야구 칼럼니스트·해설위원/ 現 야구학교 코치, 2017 WBC JTBC 해설위원

정리=이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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