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당신이 낯선 환경에 첫 발을 디뎠다고 가정해보자. 문화, 관습, 언어, 사람들 모두 생소한 곳인데 아무리 활발한 사람이라도 처음엔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자발적으로 함께 무리에 끼워주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이야기를 해주는 동료가 함께라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이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그곳에서 10년 이상을 활동하며 잔뼈조차 굵다면 더 이상의 변화를 거부하고 새로운 이들을 경계할 수도 있다. 후안 유리베(36·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그랬다. 이미 류현진을 만나기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12년을 보냈고, 2010년에는 포스트시즌에서 중요한 홈런을 때려내며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으로서 화려한 한때까지 보냈었다.

그런 그가 먼저 다가와 메이저리그 새내기이자 낯설 수 있는 동양인 선수에게 다가가 먼저 장난도 치고, 함께 어울려 다니며 빅리그는 어떤 곳인지를 알려줬다. 류현진은 감동했고 가슴 깊이 그의 ‘정’을 느꼈다.

두 선수의 만남은 결과론적으론 팀에게도, 본인들에게도 큰 이익이었다. 유리베는 월드시리즈 우승 직후 2011년부터 라이벌팀인 LA다저스로 이적했으나 2년간 고작 143경기 출전에 타율은 2할도 넘기지 못했다(0.199). 게다가 수비범위도 좁아져 샌프란시스코 시절에는 유격수로 더 많이 뛰었지만(2010년 유격수 103경기 출전, 그 외 52경기 출전), 다저스에 와서는 유격수를 더 이상 맡을 수 없어 3루수로 고정되어야했다.

이처럼 유리베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자연스레 팀내 입지도 좁아졌다. 어쩌면 그에게도 좁아진 팀내 입지에서 류현진이라는 ‘내편’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물론 이와 같이 계산적인 접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두 선수는 오랜 친분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류현진은 자신보다 8살이나 많고 빅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유리베 형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다니며 자연스레 메이저리그 문화와 팀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류현진은 데뷔 2년간 내셔널리그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 투수 전체 39명 중 평균자책점 8위(3.17), WAR(대체선수이상의 승수) 8위(7.4), FIP(수비무관 평균자책점) 4위(2.97)의 놀라운 질주를 해낼 수 있었다.

유리베 역시 류현진 입단 전 2년과 입단 후 2년의 성적이 확 달라졌다. 타율(0.199→0.295), 홈런 (6홈런→21홈런), 출전 경기(143경기→235경기) 등 모든 면에서 도리어 30대 초반 때보다 더 나은 성적을 보였다.

자연스레 팀 역시 2011년 지구 3위, 2012년 지구 2위에서 2013년부터 2년 연속 지구 1위와 포스트시즌 진출을 해냈다. 물론 그 사이 팀에서의 막대한 투자, 선수변화 등이 있었지만 분명 유리베와 류현진의 호흡과 거기에 따른 활약 역시 그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었다.

지난 2년간 한국 야구팬들은 류현진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자발적으로 TV앞에 모여 울고 웃으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그러면서 류현진이 유리베와 친하게 어울리며 장난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보내기도 했다.

이 같은 우정은 둘에게만 끝나지 않았다. 유리베가 베푼 우정을 받은 류현진은 자신보다 약 두 달 가량 늦게 메이저리그에 발을 디딘 야시엘 푸이그와 비록 말은 통하진 않지만 그와 함께 어울려 다니며 친하게 지냈고 유리베 역시 푸이그-류현진 사이에서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

쿠바를 떠난 지도 얼마되지 않은데다 메이저리그까지 생소했던 푸이그는 이런 류현진과 유리베의 보호 덕분에 데뷔시즌부터 맹활약할 수 있었고(신인왕 투표 2위), 지난 시즌 중반에는 MVP후보로까지 거론되기도 했을 정도로 재능을 만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유리베가 베푼 우정은 류현진에 이어 푸이그까지 이어지며 선순환으로 연결됐다. 그렇게 팀은 강해질 수 있었고 유리베는 28일 경기를 앞두고 애틀랜타로 떠나며 다저스와, 류현진과 이별했다.

항상 류현진이 마운드 위에서 흔들릴때면 포수보다 먼저 캐치하고 다가가 긴장을 풀어주고 경기장 밖에서는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지며 늘 배려가 가득했던 유리베의 모습을 아는 야구 팬들은 자연스레 그가 비록 올 시즌 극도의 부진으로 인해 팀을 떠났음에도 그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진=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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