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영화 ‘메이저리그’(1989년 作)에서는 빅리그 통산 도루 1위(1,406도루) 리키 헨더슨을 본딴 듯한 흑인 1번타자가 등장한다. 그가 1루에 나서면 팬들은 ‘Run’을 외치고 그 역시 긴 리드폭을 가져가며 도루를 준비한다. 상대 배터리는 견제구와 피치아웃으로 수없이 도루를 막아내려한다. 그럼에도 이 흑인 1번타자는 달리고 또 달린다. 팬도, 상대편도 모두 달릴 것을 알고 있는 불리한 상황에서 도루만이 자신의 존재가치인 듯 27.431m의 베이스 사이를 내달린다.

메이저리그에도 영화의 그 흑인 1번타자의 생김새와 '나가면 뛴다'는 마음가짐을 꼭 빼닮은 선수가 있다. 그가 나가면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은 ‘도루를 할 수 있을까’가 아닌 ‘언제 도루를 할까’만을 떠올린다. 이름 그 자체로 ‘도루’가 연상되는 빌리 해밀턴(25·신시내티 레즈)이 그 주인공이다.

2013시즌이 종료된 후 신시내티는 내셔널리그 출루율 2위(0.423)였던 추신수를 잡지 않았다. 물론 추신수의 몸값이 워낙 고액이었기에 재정적 부담 때문이기도 했지만 1번-중견수 자리에 추신수의 '높은 출루율과 장타' 스타일을 '수비와 주루'라는 다른식으로 대체할만한 해밀턴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빌리 해밀턴의 마이너리그 마지막 3년간의 도루 기록
2011년 : 135경기 103도루 20실패 (성공률 약 84%)
2012년 : 132경기 155도루 37실패 (성공률 약 80%)
2013년 : 123경기 75도루 15실패 (성공률 약 83%)

2012년 빈스 콜맨이 가지고 있던 마이너리그 최고 도루 기록(113경기 145도루 31실패)을 경신했던 '마이너리그 도루왕' 해밀턴은 빅리그 등장과 동시에 최소 80도루 이상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됐다. 그러나 생각보다 굉장히 부진한(?) 빅리그 풀타임 데뷔시즌을 보냈다.

2014시즌 : 152경기 56도루 23실패 (성공률 약 70.9%)

60개도 넘기지 못한 도루는 마이너리그에서 보여줬던 132경기 155도루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 수치였다. 게다가 마이너리그에서는 최소 80%이상을 보여줬던 성공률이 메이저리그에서 겨우 70%를 넘겼다는 점에서도 실망스러웠다.

출루율이 채 3할도 되지 못해(0.292) 뛰어난 수비(수비 WAR 22.0 - 2014시즌 외야수 전체 1위)가 아니었다면 없느니만 못한 존재로 취급받았을지도 모른다.

내셔널리그 도루왕에 오르지 못하고(디고든 64도루 1위) 도루실패 리그 1위(23실패)라는 불명예만을 남겼던 해밀턴이 올 시즌 확 달라졌다. 메이저리그 개막 일주일이 지난 현재(14일까지) 6경기에 나선 해밀턴은 7도루를 시도해 모두 성공시키는 환상적인 ‘도루쇼’를 선보이고 있는 것.

야구 통계 전문사이트인 팬그래프닷컴은 칼럼을 통해 해밀턴의 도루 내용이 변화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시즌 해밀턴은 총 23도루 실패 중 견제사로 6회, 속구 구종 때 도루 시도로 16회, 변화구 구종 때 도루 시도로 1회 아웃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지난 시즌 해밀턴은 무리하게 속구를 던지는 타이밍에 도루를 했다가 아웃 당하는 미숙한 도루운영을 보였던 것.

그러나 올 시즌 해밀턴은 7도루를 기록하는 동안 고작 2차례밖에 속구상황에서 뛰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변화구나 오프 스피드 투구(체인지업 등)때 도루를 시도해 성공시켰다.

게다가 좌타자 조이 보토가 나갔을 때 도루를 5차례나 성공시키며 포수가 1루 시야가 어두울 때를 잘 활용한다거나 지난 시즌 초구에만 8차례 도루하다 아웃당한 것에 비해 올 시즌은 2구 이후에 5차례나 도루를 성공하며 좀 더 기다릴 줄 아는 도루를 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 사이트 역시 "해밀턴의 도루는 더욱 영리해졌고, 상당히 성공적으로 향상됐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새 메이저리그에서 100도루는 놀란 라이언의 삼진기록(1973년 383삼진 - 1900년대 이후 통산 1위)이나 테드 윌리엄스의 타율(1941년 0.401 - 마지막 4할타율)과 같이 더 이상 넘볼 수 없는 기록이 되고 있다.

실제로 1987년 빈스 콜맨의 109도루 이후 메이저리그에는 28년간 100도루가 나오고 있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1988년 리키 헨더슨의 93도루 이후 80도루를 기록한 선수도 없다.

과연 해밀턴은 30년이 다되어가는 80도루와 100도루를 넘어서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일단 시즌 초반 해밀턴은 분명 지난 시즌 도루 실패 1위의 불명예를 떠안으며 많은 공부와 준비를 했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경기당 한 개의 도루를 해내며 페이스도 좋다. 어쩌면 올 시즌은 30여년간 잊고 지냈던 대기록을 마주하는 한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진=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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