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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많은 홈런타자들이 있었고, 경기에 지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약물의 시대에 이뤄낸 내 업적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깨끗하다."

신은 투수가 가져야할 극한의 능력을 그에게 부여했다. 그 덕분에 역사상 가장 화려한 4년(1997~2000)을 보내며 '임팩트'라는 단어는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과 다름없는 능력에 사람들은 오죽하면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그의 이름보다 많이 불렀다.

하지만 신의 능력을 가진 외계인이 인간의 몸에서는 버텨낼 수 없었다. 그렇게 페드로 마르티네즈(44)는 고작 217승(명예의 전당 헌액자 중 50위권)에 2,827.1이닝(명예의 전당 헌액 된 전체 선발 투수 중 뒤에서 6위)이라는 통산 성적에도 91.1%라는 역대 30위권 안에 드는 높은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신의 능력, 인간의 몸

페드로 마르티네즈하면 연상되는 것은 역시 역동적인 듯 부드러운 투구폼이다. 사이드암과 스리쿼터를 혼합한 투구폼에서 나오는 95마일짜리 강속구와 똑같이 나오는 당대 최고의 서클 체인지업, 엄청난 속도를 동반한 하드 슬라이더와 상급의 커브, 커터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그가 완벽한 신의 능력을 가졌음은 성적으로 증명된다. 페드로의 황금기이자 야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4시즌(1997~2000시즌)의 기록을 살펴보자.

1997~2000시즌 누적 성적
124경기 77승 25패 905.1이닝 평균자책점 2.16 탈삼진 1,153 조정평균자책점 219 WHIP 0.925

4년간 연평균 기록을 보자. 4년 동안 평균적으로 19승에 무려 226이닝, 300탈삼진에 육박하는 삼진(288삼진)을 잡아냈고 이를 162경기로 환산하면 22승 250이닝 319탈삼진의 기록이 나온다.

이 기록이 더 의미 있는 것은 이 시대가 바로 정확하게 `약물 시대'의 정점에 있었던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1999년 MLB 전체의 평균자책점은 4.71이었으며 2000년에는 4.77에 달했다. 이 기록은 1931년 이후 메이저리그 시즌 당 평균자책점이 가장 높은 1,2위의 시즌이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자신의 능력을 주었지만 그를 버텨낼 몸을 주진 못했다. 178cm, 77kg의 왜소한 체구는 신이 아닌 인간(LA 다저스 수뇌부)이 보기에도 기준 미달이었고 이로 인해 다저스는 샌디 쿠팩스 이후 명맥을 이을 수 있었던 에이스 투수를 보내는 실수를 저질렀고 16년 뒤에서야 그 적임자를 뒤늦게 발굴하게 된다(마르티네즈 1992년 다저스 데뷔, 1994년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 2008년 클레이튼 커쇼 데뷔).

다저스가 내린 판단은 분명 오판이긴 했지만 결국 이후 지속된 부상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지 못한 페드로의 신체는 신의 능력을 담기에 부족했다. 끊임없는 부상에 고통스러워한 페드로는 결국 37세 시즌을 끝내고 더 이상 마운드에 설 수 없었다. 롱런이라는 단어는 신의 능력을 부여받은 대가로 주어지지 않은 단어였다.



▶영광의 4년, 역사적인 2000년

페드로 마르티네즈하면 앞서 언급했던 1997~2000년의 임팩트가 사실상 그의 전부와도 가까웠다. 물론 그는 1995년 '9이닝 퍼펙트 후 연장돌입'이라는 기록은 물론 1999년 올스타전에서 선발투수로 나서 배리 라킨-래리 워커-새미 소사-마크 맥과이어로 이어지는 내셔널리그의 올스타 타선을 4연속 삼진으로 잡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페드로는 이 영광의 4년 동안 평균자책점 1위 3회, 다승 1위 1회, 탈삼진왕 2회, 올스타 4회, 사이영 3회, MVP투표 2위 1회 등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이뤘다. 특히 4년간 사이영상 1위 3회, 2위 1회는 최근 클레이튼 커쇼의 4년(2011~2014)과 똑같은 행보(커쇼 역시 사이영상 1위 3회, 2위 1회)로 눈길을 끈다.

영광의 4년 중에서도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가 열렸던 2000년은 야구 팬들에게는 기념비적인 해로 남아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5,692개)이 나왔던 2000년에는 40홈런타자가 16명(2014년 1명)이었으며 3할 이상의 타율을 올린 선수가 무려 53명(2014년 16명)이 나오며 역사상 최고의 '타고투저'였다.

이에 투수들의 성적은 당연히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었다. 리그 평균자책점은 4.77이었고 특히 아메리칸 리그는 리그 평균자책점 2위가 3.70에 달했다(로저 클레멘스, 2014년 AL 평균자책점 2위 2.17 크리스 세일). 하지만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평균자책점 1.74로 공격적인 타자들을 더 공격적으로 찍어 눌렀고, 리그 평균자책점 1, 2위의 차이가 1.96이상 벌어진 시즌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없었다.

타자/투수 친화적인 구장, 당시 리그의 상황 모두를 고려하는 조정 평균차잭점(ERA+)이야말로 페드로의 위대한 시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2000년 그가 기록한 ERA+ 291은 1900년대 이후 단일시즌 최고 성적이다. 올시즌 커쇼가 MVP와 사이영상을 동시 수상하면서 기록한 ERA+가 197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좀 더 현실적으로 페드로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치열한 시대였음을 증명하는 조정 평균자책점

페드로의 위대함은 명예의 전당행이 확정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얘기인 "나는 깨끗하다"에서 나온다. 약물의 힘을 전혀 빌리지 않고 40홈런, 50홈런이 너무 당연했던 시대에 타자들을 압도했다. 이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조정 평균자책점인데 통산 1,000이닝 이상 던진 선수들 중 페드로는 전체 2위인 154를 기록하고 은퇴했다. 1위는 불펜 투수임에도 오래 활동한 탓에 1,000이닝을 넘긴 마리아노 리베라(205)이며, 사실상 선발투수 중에서는 페드로만큼 조정 평균자책점이 높은 선수는 없다.

조정 평균자책점이 의미 있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최고의 선수가 누구인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지표라는 점에 있다. 페드로는 이 부분에서 선발 투수 통산 1위를 기록하며 월터 존슨(147), 사이 영(138), 랜디 존슨(135) 등의 모든 선수를 압도한다.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명예의 전당행이 확정된 후 남긴 인터뷰인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약물의 시대에 이뤄낸 내 업적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말은 절대 허언이 아닌 셈이다. 그는 약물이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허용되던 시대에 약물 없이 '정의는 승리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가장 치열했던 시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신의 능력밖에 답이 없음을 보여줬다. 때문에 그는 롱런을 하는 데는 실패했고 다소 부족한 누적성적만 가지고 명예의 전당 문을 두드렸다. 은퇴 후 명예의 전당 입후보가 되는데 5년이나 필요한 이유는 그 사이 거품이 빠지길 기다리며 임팩트에 대한 잔상을 지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페드로가 준 임팩트의 잔상이 지워지기에는 5년, 아니 몇 십 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혹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가 보여준 임팩트는 강렬하면서도 더없이 찬란했다.



사진= ⓒAFPBBNews = News1

*스탯볼은 기록(Statistic)의 준말인 스탯(Stat)과 볼(Ball)의 합성어로 '이재호의 스탯볼'은 경기를 통해 드러난 각종 기록을 분석한 칼럼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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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5/01/08 11:47:44   수정시간 : 2015/01/08 16: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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